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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원 특파원의 百市爭名 중국 도시 이야기] (2) 항저우 ‘중국스럽지 않은’ 중국의 미래 인터넷 친환경 관광 등 ‘청정산업’이 성장 견인
입력 : 2015.06.12 15: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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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때 항저우 태수를 지낸 시인 소동파는 서호(西湖)를 사랑해 이런 시를 남겼다. 서호의 물결만큼 아름답고 한적한 도시 항저우가 첨단산업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덕분이다. 지난 1999년 마윈이 항저우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한 지 16년. 사람들은 이제 항저우를 중국의 ‘인터넷 수도’라 부른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중국내 처음으로 항저우에 해외 전자상거래 시범구 설립을 승인했다. 국가정보화 시범도시, 전자정부 시범도시 등에 이어 항저우가 또 하나의 인터넷 관련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
전자상거래 시범구란 중국 중앙정부가 해외 수입을 장려하면서 통관 및 검사 간소화, 관세감면 등 혜택을 주는 지역을 말한다. 중국은 내수 확대와 자국산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해외직구’를 장려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급행창구가 바로 전자상거래 시범구다. 쉽게 말하면 ‘인터넷자유무역구’가 들어선 셈이다.
전자상거래 산업 폭풍성장 전기 마련
중국 전자상거래 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3분의 1이 항저우에 자리 잡은 것도 알리바바의 영향이 컸다. 중국 최대 B2C 수출 플랫폼 수마이퉁과 중국 최대 온라인 결제 플랫폼 즈푸바오, 중국 최초 B2C 수입쇼핑몰 티몰궈지 등이 대표적인 항저우 전자상거래 기업들이다. 항저우 시정부도 매년 전자상거래 분야에 5000만위안(약 90억원)을 쏟아부어 기업들의 투자를 유인하고 있다.
항저우의 이웃들도 알리바바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항저우에 인접한 우전은 지난해 11월 ‘세계인터넷대회(World Internet Conference)’를 개최했다. 전 세계 인터넷통신, 콘텐츠, 보안, 인터넷쇼핑 등 분야 최고 전문가 수천명이 참석한 이 대회가 우전에서 열린 것은 순전히 마윈 알리바바 회장의 고향과 알리바바 본사에서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올해 초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대표적 명소 시후(西湖) 부근에 문을 연 아시아 최대 애플 직영매장 1층 전경
올 1분기에도 항저우는 8.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 전체적으로 6년 만에 최저인 7%까지 성장률이 떨어져 ‘쇼크’에 빠졌지만 항저우는 알리바바를 필두로 한 전자상거래, 물류 분야 성장세에 힘입어 무풍지대로 남았다.
다른 도시들보다 앞선 산업 고도화도 항저우의 미래를 밝혀준다. 항저우는 현재 3차 산업 비중이 50%를 넘는다. 3차 산업 성장률이 1, 2차 산업보다 훨씬 높아 연간 평균 10%에 달한다. 과도한 제조업 비중을 낮추고 IT, 금융, 무역 등 3차 산업 비중을 높이면 소득수준도 높아지고 환경도 개선되는 선진국형 경제로 변모할 수 있다. 개인 소득도 중국에서 최고 상위 수준이다. 항저우의 1인당 GDP는 2010년 처음 1만달러를 넘어선 뒤 지난해 1만6000달러를 돌파했다. 2017년에는 2만달러를 달성할 전망이다. GDP만 놓고 보면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셈이다. 여기에도 알리바바의 직간접 기여가 컸다. 특히 3만명이 넘는 알리바바 직원들은 중국에서 가장 월급이 많은 샐러리맨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가진 두둑한 지갑은 항저우 내수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애플이 올해 초 항저우에 아시아 최대 애플매장을 연 것도 항저우 시민들의 높은 소비성향을 고려한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올해 초 항저우 소재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 마윈 알리바바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주요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황해에서 건져 올린 풍부한 해산물로 산해진미를 차려먹고 녹차 중에서도 최고 품질로 유명한 항저우 룽징차를 마신 뒤 소동파가 노래한 서호를 거니는 게 바로 항저우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시인구 900만명, 유동인구를 합치면 1000만명이 넘지만 항저우는 상하이나 광저우 같은 대도시에서 느끼는 번잡함과 조급함이 한결 덜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저우는 중국에서 삶의 질이 높기로 유명하다. 매년 평가하는 ‘삶의 질 평가’에서 항저우는 항상 1등 아니면 2등이다.
도시 역사가 2000년이 넘고 남송 시대 수도였던 항저우는 중국 최대 관광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해 항저우를 찾은 내국인 여행객만 1억명이 넘는다. 여행 비수기인 올 1분기에도 항저우 내국인 여행객은 2400만명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5% 증가했다. 이에 따른 여행업 수입은 무력 342억위안(약 6조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최근 2~3년간 급격히 증가한 고속철도망은 항저우와 다른 대도시들의 접근성을 대폭 개선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항저우로 가볍게 주말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각각 인구 1000만명이 넘는 광저우와 하얼빈도 최근 몇 달 새 항저우행 고속철 노선이 개통됐다.
천연가스 사용 친환경 청정 도시 ‘친환경’ 정책도 청정 도시, 첨단도시로서 항저우의 이미지를 심고 있다. 베이징을 비롯한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항저우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환경, 특히 대기질이다. 항저우 시는 최근 오염원 감축을 위해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한 데 이어 석탄발전소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이산화항을 비롯해 스모그 원인물질을 배출하는 석탄 화력을 없애는 대신 천연가스를 연료로 하는 ‘깨끗한 화력발전소’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환경감독이 가장 엄격한 도시’를 추구하는 항저우는 인터넷의 수도답게 환경관리에도 IT시스템을 개발했다. ‘스마트 환경보호’ 시스템이다. 어느 지역에서 먼지농도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지, 어느 기업이 강물에 오염수를 배출하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다.
오염원 관리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오염 수준이 기준을 초과하면, 바로 경고등이 울리고 감독부서에 정보가 제공된다. 현재 항저우 시내 개발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스마트 환경보호 시스템은 수년 안에 도시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속도만큼 빠르게 성장해온 항저우는 내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16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된 것이다. G20 회의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의장국, 우리나라와 브릭스(BRICS) 4개국을 포함한 신흥시장 12개국 등 총 20개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회의체다. 세계를 대표하는 20개국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를 계기로 청정도시, 인터넷도시 항저우의 이미지가 세계에 각인될 전망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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