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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교수의 중동 오디세이] (18) 만수르와 알-왈리드 중동 국부펀드와 투자 귀재들의 등장
입력 : 2015.06.12 15: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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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메카의 알-하람 성원 옆에 건설되고 있는 아브라즈 알-바이트
1400여 년 이슬람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최대 유적이지만 개발로 인해 모습이 망가지고 있다. 하람 성원 바로 옆에 위치한 아브라즈 알-바이트(Abraj al-Bait) 거대 쇼핑 단지가 한 예다. 약 20억달러가 투입된 이 초호화판 쇼핑 단지의 총면적은 150만㎡나 된다. 다양한 상품을 파는 쇼핑몰과 더불어 높이 485m, 76층 규모 호텔이 들어섰다. 신성한 하람 성원보다 더 메카를 상징할 수도 있다고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우려한다. 이들은 “메카가 라스베이거스화되고 있다”며 지나친 개발을 개탄한다. “메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신성한 종교적 감흥 대신 서구화한 호화판 조명과 장식을 본다면 이는 재앙이다”고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허용한 사우디 정부를 비난한다. 이 쇼핑 단지는 총 150억달러에 달하는 메카 내 여러 프로젝트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완공되거나 진행 중인 메카 내 고층건물 수만 130개에 달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파이살리야타워
지난 30년 동안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쳐 왔지만 서비스업을 제외하고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민간의 참여 저조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유국들은 자본을 이용한 국내외 투자를 향후 전략산업으로 채택하고 있다. 즉, 자본으로 이윤을 창출해 먹고살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9·11테러로 시작한 21세기부터는 투자의 다변화가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부분 중동 산유국의 오일머니는 그동안 중앙은행으로 들어가고 일부는 왕실 재산으로 관리되어 왔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주로 미국 국채에 보수적으로 투자해 왔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대부분 산유국이 국부펀드의 강화와 적극적 투자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국부펀드의 고수익 투자를 원유수출에 이어 제2의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가 고갈되면 투자 수익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될 것이라고 중동의 싱크탱크들은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최근 중동 산유국의 이 같은 국부펀드가 진출하는 해외 투자는 서방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중동을 넘어 범이슬람권 그리고 중국 등 아시아에 대한 투자도 진행 중이다. 이미 중동의 국부펀드는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수십 년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Aramco)는 한국에 투자해 현재 에쓰오일의 지분 50% 이상을 확보한 상태다. 매년 막대한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아부다비투자청이 서울 남산스테이트타워를 5300억원에 인수했다. 올해 3월에는 두바이투자청이 쌍용건설을 인수했다.
아랍의 워런 버핏, 알-왈리드 왕자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한 중동의 대외 투자에 두 큰손이 있다. 사우디의 알-왈리드 왕자와 UAE의 만수르 왕자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1997년 ‘아랍의 워런 버핏’라고 명한 알-왈리드 왕자는 현재 중동에서 가장 뛰어난 투자자로 인정받고 있다. 2008년부터 매년 타임지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오르기도 한다.
2013년 12월 두바이의 경제전문지 아라비안 비즈니스는 알-왈리드 회장이 “아랍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왕자가 창립해 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킹덤홀딩스(KHC)는 세계적 투자회사로 부상했다. 자산규모가 180억달러에 이른다. 포브스지 선정 글로벌 200에 들어가는 대기업이다. 씨티그룹의 최대 주주며 펩시콜라, 애플, 트위터, 타임워너 등 다양한 유망 다국적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알-왈리드 왕자는 사우디 왕족 출신이지만 성골 출신은 아니다. 레바논 출신 어머니는 알-왈리드가 7살 때 이혼했다. 레바논에서 주로 자랐고, 사우디에서 군사학교를 다닌 후 미국에서 유학했다. 캘리포니아 먼로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에서 사회과학 석사를 받았다. 사우디로 귀국한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건설 회사를 창업하면서 사업가의 길을 택했다. 이후 과감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자본금을 불렸다. 1991년 씨티그룹의 핵심인 씨티코프에 5억달러를 투자해 10억달러로 자산을 불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알-왈리드 왕자는 아랍은 물론 중동권에서도 최고 ‘공개된’ 부자다. 산유국 국왕들의 재산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평가된 사우디 주식시장을 고려하면 약 300억달러의 개인자산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세계 20대 부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자동차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2007년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린 ‘두바이 에어쇼 2007’ 행사장에서는 현장에서 수표를 꺼내 유럽 에어버스의 야심작인 A-380 VIP 버전을 3억1900만달러에 구입함으로써 알-왈리드 왕자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싸 ‘날아다니는 궁전’으로 불리는 ‘슈퍼 럭셔리 항공기’의 첫 고객이 됐다.
그는 현재 가족과 시가 1억달러에 달하는 궁전에 살고 있다. 317개 방은 1500톤에 달하는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다. 욕실의 수도꼭지는 순금 도금이다. 그의 궁전에는 아랍, 유럽, 아시아, 중동 그리고 디저트를 각각 담당하는 5개의 부엌이 있고, 요리사만 수십 명이다. 1시간 전에 지시가 내려오면 2000명이 동시에 그의 저택에서 식사할 수 있다.
두바이 시내 주마이라 지역 건설현장
왕실의 최고 가문에서 태어난 셰이크 만수르는 현 지도자 칼리파의 동생이다. 27세에 UAE 대통령 실장으로 임명되고 35세에는 684억달러를 운용하는 국제석유투자공사(IPIC)의 사장이 되었다. 39세에는 부총리가 되어 아부다비의 2인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가문은 실질적으로 2015년 기준 7730억달러 규모로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을 운용하고 있다. 아부다비의 다른 국부펀드까지 합치면 셰이크 만수르는 약 1조달러에 달하는 국부펀드 운용에 관여하고 있다.
석유가 고갈되는 시기를 대비해 씨티그룹, 바클레이스은행, 다임러, 페라리 등 외국 회사 지분은 물론 수익용 부동산을 대규모로 매입하고 있다. 결국 2014년 하반기부터 기준 유가가 크게 하락한 상황이지만, 그동안 축적된 중동의 오일머니는 여전히 역내외 기업과 부동산 쪽에 몰리는 경향이 지속될 것이다.
중동 미니상식 차와 커피를 즐겨라! 영어의 커피(coffee)가 아랍어의 카후와(qahwa)에서 나왔을 정도로 중동 지역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커피를 대접받는다. 차도 아랍어로 샤이(shai) 혹은 차이(chai)로 발음된다. 우리의 차의 아랍어식 발음이다. 오래전에 중국에서 들여왔다. 식사 초대를 받더라도 식탁에 앉기 전에 응접실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한동안 대화를 나눈다. 커피와 차의 대접은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No’라고 말하면 주인의 위신에 손상을 주는 태도다. 중동인은 주인으로서 행세하길 좋아한다. 주인의 위신을 높여주는 행동이 바람직하다. 중동의 전통적 커피는 작은 찻잔에 다소 쓴맛 혹은 향신료가 섞인 것이다. 중동의 대표적인 과일인 대추야자도 곁들여질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시는 것이 좋다. 환대를 거절하면 주인은 당혹해한다. 보통 두세 잔을 마신다. 오른손으로 받아서 홀짝홀짝 마시면 된다. 이때 잔을 내려놓으면 안 된다. 들고 있는 잔이 비면 또 따라줄 것이다. 빈 잔을 손가락을 이용해 흔들면 더 이상 마시지 않겠다는 신호다. 잔을 수거해 갈 것이다. 차의 경우는 홍차가 일반적이다. 설탕을 많이 넣어 먹는 편이다. 보통 작은 유리잔에 나온다. 다 마신 후에 흔들 필요는 없다. 그대로 두면 된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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