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봉권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버핏과 찰떡궁합 사모펀드 3G캐피털 레만 회장 | 월가에 뜬 브라질 사모펀드의 힘

    입력 : 2015.05.15 17:17:57

  • 사진설명
    지난 3월 말 월가에 급박한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최대 케첩회사 하인즈와 맥스웰 하우스커피 등으로 유명한 미국 대형 식품업체 크래프트푸드그룹이 합병한다는 내용이었다. 2013년 2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의 호르헤 파울로 레만(Jorge Paulo Lemann) 회장과 함께 하인즈를 사들인 바 있다. 하인즈 인수 2년 만에 추가 인수합병(M&A)을 통해 글로벌 5위 식료품업체 크래프트하인즈를 탄생시킨 것. 올해 최대 규모인 500억달러에 육박하는 M&A 딜이라는 점 때문에 월가도 들썩거렸다.

    그런데 정작 월가 대형금융기관들은 전격적인 초대형 M&A 소식에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다. 이 정도 규모 메가딜이면 인수가격 산정, 자금조달 등 원스톱 재무서비스를 제공하고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건이었다. 하지만 대형 M&A건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월가 대형투자은행(IB)들은 크래프트하인즈 메가딜에 대한 정보조차 없었다. 월가 금융기관들을 배제한 채 버크셔 해서웨이, 3G캐피털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라자드와 센터뷰 파트너스라는 2개의 소규모 금융자문기관에 실무를 맡겼다. 그리고 크래프트하인즈 M&A는 아무런 문제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월가 대형 금융기관들이 충격 속에 빠져든 것은 이 때문이다.

    크래프트하인즈 M&A가 월가 대형 금융기관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을 공동 설립한 레만 회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만 회장은 기업인수라면 이골이 난 인물이다. 특히 식품업체 인수 부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미국계 펀드들이 아성을 쌓고 있는 월가에서도 레만 회장의 자금동원, 네트워킹 역량에 토를 달지 않는다. 스위스계 브라질인인 레만 회장 이력을 한번 살펴보자. 레만 회장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브라질 최대 거부이자 국제 금융시장 큰손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레만 회장의 개인자산은 257억달러(약 28조원)로 세계 26위 거부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난 레만 회장은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한때 레만 회장은 브라질 테니스 선수권에서 5차례나 우승하는 등 프로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고, 프로 테니스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윔블던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프로 테니스 선수 꿈을 접고 하버드대 졸업 후 레만 회장은 제노바 소재 크레디트스위스에서 근무하며 금융경력을 쌓았다. 크레디트스위스에서 퇴사한 뒤 1971년 브라질의 골드만삭스라고 불렸던 방쿠 가란티아(Banco Garantia)를 설립, 브라질에서 가장 혁신적인 금융기관으로 키워냈다.

    1998년 크레디트스위스에 가란티아를 매각한 뒤 확보한 6억7500만달러의 종잣돈으로 사모펀드 3G캐피털을 설립, 본격적으로 기업사냥에 나섰다. M&A는 식품업종에 집중했다. 3G캐피털은 1999년 브라질 맥주업체 암베브 최대 지분을 확보해 중남미 맥주시장을 장악했다. 2004년 암베브를 벨기에 맥주회사 인터브루와 합병, 세계 2위 맥주회사 인베브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2008년에는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세계 3위 맥주회사 미국 안호이저부시(AB)와 합병,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를 만들어냈다. 현재도 3G캐피털은 AB인베브 최대 주주다. 2010년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햄버거 체인 버거킹을 사들였다.

    지난해 말에는 캐나다 도넛 체인 팀홀튼을 인수, 버거킹과 합병시켰다. 2013년에는 버핏 회장과 함께 하인즈를 인수, 3G캐피털 존재를 월가에 각인시켰다. 이처럼 M&A 전문가인 레만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월가 금융기관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M&A를 진행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레만 회장은 앞으로 버핏 회장과 대규모 M&A에 잇따라 나설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현금 실탄을 배경으로 코끼리(대형 M&A) 사냥에 나선 버핏 회장이 레만 회장의 M&A 역량을 100%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핏 회장은 틈이 날 때마다 레만 회장이 이끄는 3G캐피털과의 협업이 만족스럽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3G캐피털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말 3G캐피털이 대주주로 있는 버거킹이 팀 호튼을 인수할 때 버핏 회장이 상당액의 자금을 지원해준 것도 레만 회장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찰떡궁합은 다소 의외다. 레만 회장과 버핏 회장의 투자스타일이 180도 정반대기 때문이다. 버핏 회장은 지난 50여 년간 수많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버크셔 해서웨이를 애플에 이은 미국 시가총액 2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아무리 탐이 나는 기업이 있더라도 기업 펀더멘털 대비 비싼 값을 주지 않는 게 버핏 회장의 투자철학이다. 그동안 M&A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보인 것은 이 같은 철칙 하에 저렴한 가격에 기업들을 사들인 덕분이다. 대신 버핏 회장은 포트폴리오 투자자처럼 투자이익에만 신경을 쓸 뿐 피인수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심각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피인수 기업 경영진을 유임시켜 자율경영권을 보장했고 구조조정을 통한 직원 감축도 하지 않았다.

    하인즈 케첩, 크래프트 마카로니&치즈
    하인즈 케첩, 크래프트 마카로니&치즈
    반면 레만 회장은 기업을 사들인 뒤에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투자 철학을 고수해왔다. AB인베브를 탄생시켰을 때나 버거킹을 인수한 뒤에는 어김없이 경영진을 모두 내보내는 한편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직원들을 대거 해고했다. 버핏 회장과 함께 지난 2013년 하인즈를 인수한 뒤에는 보름 만에 경영진 11명의 옷을 벗겼다. 3G캐피털은 마른 수건을 짜내듯 비용 절감을 위해 제로 베이스 예산제도도 도입했다. 모든 비용구조를 처음부터 철저하게 조사해 낭비요인을 줄이고 기업수익성을 올리겠다는 복안에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직원이 직장을 잃었고 공장 일부도 폐쇄했다. 하인즈와 크래프트푸드그룹의 합병으로 탄생하는 크래프트하인즈가 정식 출범할 때쯤 되면 수천명의 직원들이 직장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과거 버핏 회장 같으면 아무리 투자파트너더라도 레만 회장의 이처럼 살벌한 구조조정을 반대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예상외로 버핏 회장은 이 같은 구조조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버핏 회장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레만 회장의 3G캐피털을 통해 구조조정 작업을 아웃소싱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버핏 회장이 3G캐피털의 과감한 구조조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구조조정이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인즈 기업 가치는 장부상으로 2년 전에 비해 두 배로 증가했다. 아무리 사람 자르기 좋아하지 않는 버핏 회장이지만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가 입장에서 실적이 뒷받침되는 구조조정을 마다할 수는 없다.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것이다. 레만 회장과 버핏 회장 밀월 관계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월가 호사가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6호(2015년 0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