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IT 공룡들 산업 패러다임 바꾼다

    입력 : 2015.04.03 15: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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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정체 모를 자동차 하나가 발견됐다. 크라이슬러의 캐러밴인데 이름 모를 첨단장비로 잔뜩 무장했다. 나중에 이 차는 애플의 것으로 판명됐다. 이 차는 12대의 카메라와 레이저를 이용해 지형 정보를 얻는 고성능 측량기기 라이다(Lidar) 센서를 장착하고 있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리포트를 통해 애플이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채비를 하고 있다며 애플 워치나 애플 페이 등 다양한 신사업 덕에 조만간 시가총액이 1조달러대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글은 지난 1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본사에서 업계 안팎의 기대를 모은 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아라폰’으로 알려진 조립형 스마트폰 개발계획 ‘아라 프로젝트(ARA Project)’다. 아라 프로젝트는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운영체제(OS)를 장악한 구글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 계획됐다. 지금까지 출시된 스마트폰은 모든 부품이 미리 짜여 출시돼 왔다면 아라폰은 모든 부품을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게끔 짜여졌다. 예컨대 카메라를 비롯해 디스플레이, 배터리, 와이파이, 그래픽 장치를 선별해 끼우는 방식이다. 만약 최소 사양 부품만을 사서 쓴다면 50달러(약 5만5000원대)로도 가능하다는 게 구글 측의 설명이다.

    구글은 운영체제에 이어 하드웨어 생태계의 패러다임까지 바꾸고자 한다. 아라폰은 중남미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에서 연내 출시될 계획이다. 통신시장이 발달돼 있고 자유무역이 활발한 푸에르토리코에서 아라폰이 성공한다면 개선점을 파악해 북미시장 전역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폴 에레멘토 아라프로젝트 총책임자는 “프로젝트에서 개선해야 할 점도 있기 때문에 우선 푸에르토리코에서 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윈도우의 차세대 버전인 윈도우 10을 선보였다. 윈도우 10은 여태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였던 지난 버전과 배포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직전 버전인 윈도우 8.1까지 개인용으로 구하려면 1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윈도우 10은 윈도우 7과 8, 8.1 이용자들이 출시 이후 1년간 무료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 불법 복제가 많은 중국에서도 인증절차 없이 무료 업그레이드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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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의 가상 콘셉트카 ‘iMove’, 마이크로소프트 엠에스밴드
    애플의 가상 콘셉트카 ‘iMove’, 마이크로소프트 엠에스밴드
    과거 PC와 모바일별로 윈도우 버전이 따로 있었지만 윈도우 10부터는 통합되는 것도 특징이다. 다양한 기기가 윈도우라는 플랫폼 아래에 하나로 통합될 전망이다. 모바일 시장에서 소외됐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반격이란 평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실리콘밸리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가 적극적으로 외부 업체들과 협력하고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다. 윈도우 구성요소를 지난해 11월 공개한 것도 달라진 행보의 반영이란 평가다. 세계의 IT공룡들이 대대적인 변신에 나서고 있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의 신업 패러다임 자체를 송두리째 바꿀 태세다.

    모바일 운영체제 주도권을 쥔 IT를 넘어 생활 전반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구글카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시대에 놓쳤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제품과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올 한 해 구글의 왕좌 수성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약진이 가능할지에 따라 향후 IT업계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IT업계 화두가 모든 사물이 연결된다는 이른바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개념으로 진화하는 과도기라는 점에서 스마트폰 태동 이후 다시 격변기를 맞이한 양상이다. 구글은 더 이상 인터넷 검색 업체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무인자동차다. 구글은 무인자동차가 2~5년 내에 실제 도로에서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크리스 엄슨 구글 무인차 개발팀장은 “사람들이 무인차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으로 만들어 내놓을지를 고민 중”이라며 “무인차의 상호작용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무인차가 도로에서도 큰 문제없이 자체 주행이 가능하다면 자동차 업계 패러다임은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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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은 지난 2월 전자결제업체 미국 소프트카드 기술을 활용해 자체 서비스 ‘구글월렛’을 강화하기로 했다. 소프트카드는 대형 이동통신사 AT&T와 버라이즌 등이 연합해 만든 업체지만 페이팔 등에 밀려 부진한 점유율을 보였다. 결국 인수·합병(M&A)을 통해 IT와 금융의 결합, 이른바 ‘핀테크(Fintech)’ 비즈니스에 힘을 쏟겠다는 복안이다. 구글월렛은 특히 그동안 대형 통신사와 갈등을 빚어 이용 제한이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구글의 소프트카드와의 제휴는 점유율 확대와 통신사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애플이 지난해 하반기 애플페이로 주목받고 삼성도 삼성페이를 내놓자 구글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평가다. 구글은 구글TV와 인공지능(AI) 로봇은 물론 우버와 유사한 대중교통 사업도 준비 중이다. 통신사업도 준비 중이란 소식도 전해졌다. 최근 구글의 실적 성장세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매출은 지난해 660억달러로 2013년 기록한 550억달러보다 20% 증가했다. 순이익 역시 144억달러로 같은 기간 129억달러에서 11% 늘어났다.

    이처럼 구글이 순항중인 것으로 비치고 있음에도 사업을 다각도로 확대하는 데에는 오히려 “지금이 위기일 수 있다”라는 인식이 작용한다. 구글을 키워온 임원들이 잇따라 회사를 떠난 게 그 근거다. 지난해 말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앤디 루빈 수석부사장이 사임했다. 지난 1월 3일에는 래리 페이지 회장 다음가는 위치를 점한 앨런 유스터스 수석부사장도 퇴임했다. 유스터스는 온라인 검색과 지도 등 구글의 기초 상품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다양한 기능이 입혀진 스마트 안경 ‘구글 글라스’도 사실상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최근 판매가 중지됐고 후속작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1월 패트릭 피체트 구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구글 글라스 개발팀은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머물러 있다면 바로 뒤처지는 IT업계의 오랜 교훈은 구글을 적극 움직이게 한다는 평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안팎에 드러낸 위기의식은 구글을 뛰어넘는다. 6월 말 결산을 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6월부터 연말까지 반년간 순이익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출액 496억달러로 전년 같은 때 기록한 430억달러보다 15%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118억달러에서 104억달러로 12% 줄어들었다.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모바일 시대에 더 이상 윈도우만으로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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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절박함의 결과 때문인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는 제품은 대체로 업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건강관리용 팔찌인 ‘엠에스(MS)밴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엠에스밴드를 공개하자 시장에서는 품절사태로 화답했다. 출시된 지 2주일 만에 미국, 일본 등 온라인 매장에서 물량이 부족했고 중국에선 올 상반기까지 구입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엠에스밴드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과거 운동 경력을 비교해주며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가상 비서 역할을 하는 ‘코타나’도 사용가능하다. 이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았던 기기와 달리 모든 모바일 운영체제에서 쓸 수 있도록 했다. 가격은 다른 착용기기(웨어러블)보다 저렴한 199달러다. 불필요한 기능을 최소화하고 건강관리에 철저히 초점을 맞추는 대신 가격을 낮춘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일본 품절사태를 본 미야모토 카즈아키 IT애널리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 기고에서 “엠에스밴드가 여태까지 출시된 웨어러블 기기 가운데 가장 좋은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며 “스마트폰에서 고전해온 애플이 모바일 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습’이라고 표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3년 인수한 휴대폰 제조사 노키아에선 최근 29달러대 초저가 제품을 내놨다. 지난해 모바일 버전에 한해 워드·엑셀이 담긴 엠에스오피스를 무료로 배포했다. 컴퓨터 등에 연결할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구동되는 가상현실 기기 ‘홀로그램’도 선보였다. 더 이상 윈도우를 비싼 가격에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는 모바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들은 오롯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데 맞춰져 있다. 그동안의 부진을 한 번에 바꿔버리겠다는 듯, 출시 속도도 빠르다. 벤처1세대인 이찬진 포티스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윈도우 10의 무료 업그레이드 발표로 소비자용 운영체제 업그레이드 가격은 완전히 무료가 됐다”며 “세상은 늘 바뀌고 이제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윤재언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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