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서 IRS 사칭한 사기전화 ‘극성’ 인도서 개인정보 해킹한 듯

    입력 : 2015.04.03 15: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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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세청(IRS)입니다. 전화 드린 용건은 매우 긴박한 것으로, 당신의 주소로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전화는 IRS에서 보내는 최종 통보입니다. IRS가 당신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세부적인 사항을 알고 싶으면 다음 번호로 전화해주십시오.”

    미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정부 기관을 꼽으라면 단연 국세청(IRS·Internal Revenue Service)이다. 지난해 IRS로부터 세금 감사를 받은 개인은 124만명. 전체 개인 납세자의 0.86%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IRS를 두려워하는 것은 ‘한 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IRS는 한번 조사를 시작하면 먼지 털듯 철저하게 탈세 여부를 점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IRS로부터 갑자기 ‘지금 당장 수천 달러를 입금하지 않으면, 집을 압수하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평소 세금 납부를 게을리 했거나, 불법이민 등 신분상 약점이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보이스 피싱을 의심할 수도 없다. 걸려온 전화번호가 IRS 본부가 있는 워싱턴DC의 지역번호인 데다 개인 재무기록을 센트 단위까지 정확하게 거론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사회보장번호(SSN)는 기본이다. 심지어 IRS 직원임을 나타내는 고유번호(배지 번호)와 함께 인근 경찰서에서 발부된 영장내용을 전화로 불러주기도 한다.

    지난 2년 동안 이렇게 사기를 당한 사람이 미국 내에서만 3000명이 넘는다. 피해금액은 1500만달러(약 165억원)에 달한다. 적게는 5000달러에서 많게는 50만달러까지 사기를 당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IRS를 사칭하는 사기 전화 신고건수는 매주 1만~1만2000건에 이르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전화 사기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IRS 사기전화를 포함한 보이스 피싱은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와 재무부가 각각 예방업무와 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IRS 사기전화가 워낙 유행하다보니 FTC와 재무부 직원들에게 사기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FTC에서 소비자교육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존 모간 씨는 “이곳 FTC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소비자 사기를 사전 차단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며 “하지만 다른 미국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FTC 직원도 사기전화의 예외가 아니며, 나 역시 지난주 국세청 직원을 사칭한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FTC에 따르면 어떠한 경우에도 IRS가 전화를 걸어 납세자에게 돈의 지급을 요구하는 일은 없다. 이메일도 활용되지 않는다. 100% 우편으로만 통보한다.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IRS 사기전화는 암울한 ‘인류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우선 기술의 발달로 가장 은밀한 개인정보인 재무정보까지 손쉽게 해킹돼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IRS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개인정보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진짜 IRS구나’, ‘정말 감옥에 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정보 해킹이 2차, 3차 범죄로 파생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IRS 사기전화는 ‘정부가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다’고 믿는 대중의 허점을 파고든 범죄이기도 하다. 한 국가의 정부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은 ‘범죄의 국제화’다. 미 재무부는 IRS 사기전화의 발원지가 인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사법당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인도에서, 국제전화를 통해 미국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인도가 자랑하는 IT 기술은 사기 전화의 발신지 표시를 워싱턴DC로 바꿔놓는 데 활용된다. 주요국가와는 사법공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하지만 국경 너머 범죄조직을 적발해 처벌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IRS 사기전화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범인 검거 실적은 없는 형편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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