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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권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넬슨 펠츠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 회장 | 여성 CEO 킬러로 명성 자자한 투자의 귀재
입력 : 2015.03.06 15: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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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탁월한 능력의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깨고 CEO 자리까지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여전히 대기업 여성 CEO 숫자는 많지 않다. S&P500지수 산정에 포함되는 상장기업 중 여성이 CEO인 곳은 500개 기업 중 5%에도 못 미치는 23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 23개 기업 중 25%인 6개 기업이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펩시코, 듀폰, 몬델레즈인터내셔널 외에 야후(마리사 메이어), HP(맥 휘트먼), GM(메리 바라)이 그 대상이다. 여성이 CEO인 4개 기업 중 1곳이 남성들이 이끄는 행동주의 투자펀드의 공격대상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들 6개 기업 중 절반이 펠츠 회장의 칼날을 받고 있으니 펠츠 회장이 여성 CEO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펠츠 회장은 글로벌 식음료업체 펩시코를 이끌고 있는 여성 CEO 인디라 누이에게 음료사업 분사를 강력 요구해 왔다. 펩시코는 펩시를 필두로 한 탄산음료사업부와 도리토스, 치토스 등 식품사업부 2개 바퀴로 굴러간다. 그런데 웰빙이 화두가 되면서 탄산음료 판매량이 급감해 음료사업부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반면 식품사업부는 호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2012년부터 식품사업부 매출이 음료사업부를 앞지른 상태다. 이 때문에 펠츠 회장은 펩시코 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음료사업부를 분사하면 펩시코 밸류에이션이 확 올라가 주주들에게 이익이 된다며 분사를 요구하고 있다. 분사 후 구조조정을 통해 음료사업부 경쟁력을 높이거나 정 안 되면 높은 가격을 받고 매각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음료사업부분이 분사되면 버드와이저 브랜드로 유명한 세계 맥주 1위 기업 안호이저부시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누이 CEO는 식품·음료사업부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펠츠 회장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대신 비용절감 등 구조개혁을 통해 펩시코 가치를 높이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그러자 펠츠 회장은 누이 CEO를 압박하기 위해 펩시코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위임장(proxy fight)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펩시코 분사 여부를 의제로 삼아 주총에서 표대결을 하겠다는 것. 이에 누이 CEO는 극단적인 대결을 피하기 위해 일단 냉각기를 갖자는 제안을 내놨다. 이를 위해 3월 주총 때 펠츠 회장이 요구한 대로 케첩 전문업체 하인즈 회장을 지낸 윌리엄 존슨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 고문을 펩시코 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대신 음료·식품사업부 분리는 시간을 두고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펩시코 듀폰 등 공격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더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음에도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주주환원 정책이 미흡한 기업을 사냥감으로 삼는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공격대상으로 찍은 기업 지분을 사들여 일정규모 의결권을 확보한 뒤 자기 사람을 이사회에 집어넣고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를 원한다. 이를 통해 사업부분 분사, 자사주 매입, 배당금 확대처럼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조치를 경영진에 요구한다. 공격대상이 된 경영진들은 처음에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요구에 거부감을 갖고 맞대결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어느 정도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위험회피 성향이 더 강하고 모성본능 때문에 싸우기보다는 양보·소통·합의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펠츠 회장 등 일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경영진과의 다툼에서 더 쉽게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여성 CEO를 타깃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배달 트럭 운전하며 경영수업 여성 CEO를 들들 볶는다는 구설수에 오른 억만장자 투자자 펠츠 회장은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 학부생으로 입학했다가 자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자퇴 이유가 재미있다. 오리건 주에서 스키강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사업을 맡기려는 부친에게 이끌려 펠츠 회장은 할아버지가 세운 회사인 펠츠&손스(Peltz & Sons)에서 배달 트럭을 운전하며 경영수업을 받게 된다. 펠츠&손스는 뉴욕 식당에 신선한 야채·채소와 냉동식품을 배달하는 업체였다. 그는 회사를 맡은 지 15년 만에 매출액을 250만달러에서 1억5000만달러로 확 키워내는 경영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펠츠 회장은 단순히 기업을 경영하는 것보다는 실제가치보다 저평가된 업체를 인수한 뒤 턴어라운드시켜 되팔아 목돈을 만드는 데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젊을 때부터 기업사냥꾼적인 DNA가 강했던 셈이다.
펠츠 회장은 1980년대 초 자판기·전선을 만드는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스를 인수, 포춘 100대기업 중 하나로 키운 뒤 1980년대 말 큰돈을 받고 매각했다. 기업 인수 후 매각에 재미를 붙인 펠츠 회장은 1997년 어려움을 겪던 음료업체 스내플을 사들인 뒤 3년 뒤인 2000년 캐드베리 슈웹스에 팔아 또 거금을 챙겼다. 스내플을 회생시킨 뒤 큰 차익을 남기고 되판 이야기는 하버드대 케이스 스터디로 사용될 정도다. 이후 펠츠 회장은 지난 2005년 아예 행동주의 투자를 표방한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를 창업, 2015년 2월 말 현재 운용자산 규모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 대형헤지펀드로 키워냈다. 매년 두 자릿수 수익률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줬고 펠츠 회장 자신도 2월 말 현재 19억3000만달러의 개인자산을 가진 거부가 됐다. 지난 2013년에는 자신이 인수했던 케첩회사 하인즈를 투자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에게 매각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4호(2015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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