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교수의 중동 오디세이] (15) 미진한 국민국가 형성(Nation-State Building) 중동은 왜 화약고인가?

    입력 : 2015.03.06 15: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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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파동이 난다면 1970년대 석유파동과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네스코 산하 ‘세계수자원평가프로그램(WWAP)’이 2010년 보고서에 언급한 내용이다. 석유와 달리 물은 보완재가 없는 자원이다. 이 때문에 수자원을 둘러싼 전쟁 발발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다.

    중동의 불안정성은 오래된 이야기다. 이 때문에 ‘화약고’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1973년까지 이스라엘과 아랍 간 4차례의 전면전이 있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면서 이를 격퇴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이슬람 전사들이 10여 년 동안 투쟁했다.

    그 부산물이 알-카에다라는 테러 조직이었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서는 125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1982년에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다. 1991년에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 연합군이 참가한 걸프전이 발생했다. 9·11테러가 발생한 2001년에는 미국 주도 다국적군이 아프간을 공격해 점령했다.

    2003년에도 미국 주도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해 후세인 정권을 축출했다. 이로 인한 불안정은 이슬람국가(IS) 테러조직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위)사담 후세인 사진이 든 신문을 짓밟는 이라크인.(아래)알레포 지역서 작전중인 터키군 탱크부대.
    (위)사담 후세인 사진이 든 신문을 짓밟는 이라크인.(아래)알레포 지역서 작전중인 터키군 탱크부대.
    분쟁의 종합세트, 중동 국가 간 혹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한 전쟁뿐만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분쟁이 발생하는 지역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등장한 중동의 새로운 국가와 정권 내부에서의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쿠데타가 빈번했다. 1952년 이집트, 1964년과 1968년 이라크, 1969년 리비아 등에서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등장했다. 시리아에는 1960년대 여러 차례 쿠데타로 정권이 계속 바뀌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발생했고, 2011년에는 ‘아랍의 봄’이라는 시민혁명으로 네 나라의 정권이 바뀌었다.

    쿠데타와 혁명으로 등장해 정통성이 약한 정부에 도전하는 내전도 많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내전이 이어졌다. 1975년부터 15년 동안의 레바논 내전, 1994년 예멘 내전, 1990년대 초부터 시작돼 20여 년 이어진 수단과 소말리아 내전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으로 25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내전을 틈타 IS 테러조직이 시리아 동부까지 진출해 장악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리고 2015년 초 북부에 거점을 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예멘의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정권을 전복하면서 중남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수니파 세력과의 충돌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과 다수 민족 집권세력과의 끊임없는 충돌, 기독교 소수 종파에 대한 박해와 이에 대한 반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갈등, 수자원 분쟁, 부족 간의 갈등 등도 이어지고 있다.

    석유 혹은 이슬람이 원인? 중동의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학계와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배경은 석유와 이슬람 종교다. 석유 등 자원 이권을 놓고 서방의 침탈이 분쟁을 가져왔다고 많은 중동학자들은 지적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3년 이란의 쿠데타다. 당시 무함마드 모사데그 총리가 석유를 국유화하자 미국과 영국이 정부 전복을 위해 쿠데타를 비밀리에 종용했다. 2014년 1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60년 만에 비밀이 해제된 중앙정보국(CIA) 문서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문서에 따르면 쿠데타 계획은 모사데그 총리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선전 활동, 국회의원 매수, 대중시위 선동 등 여러 단계로 이뤄져 있었다. 20세기 최대의 에너지 자원 석유를 둘러싼 서방의 이권다툼 그리고 산유국 내부의 갈등이 중동 불안정의 중요한 배경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시각은 석유자원이 거의 없는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의 불안정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더불어 시리아, 이집트, 예멘, 수단 등 많은 중동국가들은 유전 개발이 본격화하기 이전에 여러 쿠데타와 내전을 겪었다.

    중동의 분쟁이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이슬람 종교 때문이라는 시각도 팽배해 있다. 1400년에 등장한 이슬람 종교의 보수적인 성향이 아직도 중동 정치사회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과 충돌한다는 시각이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21세기에도 이슬람의 문명적 정체성이 국제사회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 단 한 번의 테러도 발생한 적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 중동국가의 정치체제는 이슬람체제가 아니다. 서방에서 도입한 공화정이거나 중동의 전통적인 군주제다. 이슬람의 정치시스템은 알라의 주권 하에서 선출로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이를 적용하는 이슬람국가는 현재 한 곳도 없다. 그리고 모든 중동국가가 이슬람경제가 아닌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법은 가정법원에서 이혼, 상속 등에만 적용된다. 중동 법제의 90% 이상은 서방에서 도입한 실정법이다. 따라서 이슬람 종교가 중동의 제반 분쟁의 배경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다만 일부 정치세력이 이슬람을 이념적으로 이용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위)폐허 위에 서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아래)시리아 반군들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위)폐허 위에 서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아래)시리아 반군들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초기 단계인 국민국가 형성 중동의 분쟁과 더딘 민주화를 설명하는 또 다른 시각은 국민국가(nation-state) 형성과 관련한 접근법이다. 역사적으로 현재의 중동 국가들은 대부분 신생국가다. 터키만 예외일 것이다. 7세기에 등장한 찬란한 아랍이슬람제국이 무함마드에 이어 정통 4대 칼리파(후계자)와 우마위야 왕조 그리고 압바시야 왕조까지는 이어졌다. 하지만 몽골의 침략으로 압바시야 왕조가 망하고 바그다드가 불탄 1258년 이후 중동을 아우르는 아랍이슬람제국은 없었다.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 16세기부터는 튀르크 오스만 제국이 패권을 잡았다. 19세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유럽 열강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다. 1922년 오스만제국은 공식 해체되고 터키공화국은 아나톨리아 반도만을 중심으로 한 국민국가로 나아갔다. 따라서 대부분 현재의 중동 국가들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했다. 상당수 국가의 국경은 자연적이거나 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서방의 이해에 의해 획정된 국경이었다. 위도와 경도가 국경이 된 나라들도 많다. 인위적으로 국경이 설정되면서 다양한 민족과 부족 그리고 종파가 국경 내에 포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등장한 집권세력은 국가 통합을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들 지배층은 서구열강의 권위주의적 식민통치에 익숙해 있었다. 이들이 서방으로부터 배운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식민지 통치방식이었다.

    그런데 국민국가 형성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정치과정이다. 영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1649년 청교도 혁명으로 찰스 1세의 전제정치를 종식시켰으나, 공화정을 수립한 크롬웰이 의회를 탄압하는 등 독재를 행하면서 1688년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다시 왕정으로 복귀한 것이다. 다음 해인 1689년 의회가 권리장전을 제출하고 국왕이 승인하면서 입헌군주제가 정립되었지만 18세기 초에야 내각책임제가 정착됐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경제가 부강해지면서 국가통합과 지속적인 민주화가 진행됐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현재의 국민국가 형성을 위해 경제성장을 동반하면서 100년 이상 공을 들여야 했다.

    국가보다는 부족에 대한 충성심 그러나 중동의 대부분 국가들은 아직도 중앙정부의 물리적 통제권마저도 영토전역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이 많다. 역사적 정체성 확립이나 통합의 과정 없이 1,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작스럽게 인위적으로 수립된 주권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불과 50여 년 전에 등장한 국가들이다.

    아직 국가통합 과정에 있는 것이다. 국민국가 형성에 있어서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인구가 폭증하면서 늘어난 저소득층과 기득권 세력 간의 계층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현재 테러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국가들, 즉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예멘, 수단, 소말리아, 이라크, 시리아 등이 국민국가 형성이 특히 미진한 나라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현재 정권이 ‘카불 정부’라고 불린다. 중앙정부의 권위가 수도에만 미친다는 것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국가보다는 부족에 더 충성하는 경향도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정권이 교체된 리비아와 예멘 그리고 전쟁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사실상 나라가 분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현재 준 내전 상태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등장한 북부의 쿠르드자치정부는 원유수출 대금을 예치하고 분배된 예산을 수령하라는 중앙정부의 지시에도 따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중동의 상당 국가가 아직 무암마르 카다피, 사담 후세인, 알리 압둘라 살리흐 등의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정체성이 확립되고 국가통합이 이루어져야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제대로 뒷받침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중동이 화약고인 이유의 가장 기저에는 이처럼 미진한 국민국가 형성 과정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런 배경에 대해 우리는 너무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근대에 그런 어려움을 크게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는 비교적 쉬운 국민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한마저 분리됐다. 더불어 오래전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강력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시각으로 중동을 보는 것은 아닐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4호(2015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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