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우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美 워싱턴DC에 몰아치는 대북 ‘칼바람’

    입력 : 2015.02.06 16: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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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북한에 대한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 1월 13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북한의 위협: 핵, 미사일, 사이버’ 청문회를 열었다. 하원 외교위가 새해 첫 번째로 다뤄야 할 핵심 이슈로 북한을 지목한 것이다.

    이날 청문회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모습들을 연출했다. 3시간 동안이나 청문회가 이어졌다는 점부터가 이례적이다. 통상 의회 청문회는 1시간 남짓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외교위 소속 의원 대부분이 참석해 북한의 위협과 관련해 날카로운 비난성 질문을 던졌다.

    청문회에 출석한 행정부 관리들의 강성 발언도 화제가 됐다. 미 국무부의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이 스스로 불법행위를 포기할 것이란 환상은 버렸다”며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테러 금융 담당 차관보는 “미 재무부가 사상 처음으로 북한 노동당 관리들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며 “북한의 돈줄을 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청문회를 놓고 미국 내에서 대북 대화파의 입지가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음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 조야의 인내심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수년 동안 북한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던 미국이 갑자기 대북 강경모드로 돌아선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해 발생한 소니 픽처스에 대한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다. 미국 조야에서는 ‘허풍’으로만 여겨왔던 북한의 위협이 미국 본토에 실질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시켜준 사건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특히 북한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밀림의 원숭이’로 비유하며 비난을 퍼부은 것이 북한에 대한 거부감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후문이다.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국가원수를 상대로 인종 차별적인 조롱을 한 것이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의 공분을 샀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이번 사이버 공격의 배후라는 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미 연방수사국(FBI)의 공식 발표 이후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 마이크 로저스 국가안보국(NSA) 국장, 마이클 대니얼 백악관 사이버안보 조정관 등이 북한을 배후세력으로 재확인했다. 정보기관들은 그 특성상 상호견제와 균형감각을 중시하기 마련이다. 정보기관장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을 때에나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소니 직원 컴퓨터에 남겨진 북한 인터넷 주소 등이 구체적인 확증의 일부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 제재’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자신감도 북한에 대한 강경모드 전환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워싱턴DC의 외교가에서는 경제 제재를 대외정책의 ‘주무기’로 활용하는 오바마식 외교정책에 대한 반감이 팽배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핵 개발 문제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이란 및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 제재가 결과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 입증되면서 ‘경제 제재 무용론’은 ‘쏙’ 들어간 상태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미 중앙정보국(CIA) 차장에 데이비드 코언 재무부 테러 금융 담당 차관을 내정했다. 경제 제재를 통한 ‘돈 줄 죄기’를 더욱 중시하겠다는 워싱턴DC의 기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밖에 북한이 오랫동안 억류됐던 미국인 케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 씨가 지난해 11월 전격 석방됐다는 점 역시 미국 정부의 ‘운신 폭’을 넓혀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억류된 자국민 보호를 위해 자제해왔던 북한에 대한 강경조치를 부담 없이 실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번 ‘칼바람’이 단기간에 그칠 것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이상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한 바로 이튿날에 대북 제재안이 담긴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또 한국 국방부가 ‘2014 국방백서’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내용을 발표하자 미국 국방부가 나서 “아직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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