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의법치국(依法治國)의 창, 어디로 향하나?

    입력 : 2015.01.08 15: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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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초 중국 공산당 최고 감찰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는 7월 말부터 부패혐의로 조사를 받아오던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을 긴급 체포했다. 중국 최고 지도부의 일원이 부패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은 중국 공산당 역사상 처음이다. 저우융캉은 중국 권부의 핵심 인맥 가운데 하나인 ‘석유방’의 좌장 역할을 해오면서 가족과 측근 등을 통해 국가의 석유 부문을 장악하고 엄청난 축재를 해온 혐의를 받아왔다. 그렇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로 지난 7월 말부터 조사를 받는 등 권력에선 이미 실질적으로 밀려난 인물이었다.

    중국 정부는 그럼에도 그의 영향력이나 그를 따르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저우융캉을 공식적으로 체포하기 이전에 이미 인민재판 형식으로 단죄를 해버렸다.

    중국 언론이 이미 오래전부터 저우융캉이 16조원 상당의 뇌물을 챙겼다거나 전 부인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연루됐으며 치정을 일삼았다고 비판해온 게 단적인 사례다.

    중국을 대표하는 국영방송인 CCTV의 여성 언론인 다수가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설도 수없이 나왔다. 지난 6월엔 실제로 이 방송국의 여자 앵커 한 사람이 공안당국에 소환됐는데 혐의는 저우융캉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저우융캉은 오래전 조강지처를 버리고 스물여덟 살이나 어린 CCTV 수습앵커 출신과 재혼한 바 있는데 이후로도 여러 여성 언론인과의 추문이 이어졌다.

    어쨌든 저우융캉 체포는 시진핑 주석이 2013년 1월 22일 제18기 제2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연설을 통해 “호랑이와 파리를 계속해서 함께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로 부패척결을 강조한 뒤 나온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일각에선 중국 당국이 저우융캉의 측근이던 보시라이 전 충칭 시 서기를 처형한 뒤 저우까지 기소하자 저우가 쿠데타를 모의했다거나 시 주석이 권력을 다지기 위해 반대세력을 제거한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쏟아냈지만 중국 내부에선 시 주석이 실질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시 주석이 과거 어느 지도자도 갖지 못했던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만큼 파워게임이라기보다는 중국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이미 ‘시황제’로 불릴 정도의 절대 권력을 쥐었고 탄탄한 인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그에게 도전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이는 저우융캉 체포 직후 저우의 지지세력으로 꼽히던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이 “지도부의 결정을 옹호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점이나 상하이 시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이 일제히 시 주석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나선 데서도 확인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부패척결로 새로운 발판 만들어 이런 점에서 저우의 체포와 기소는 시 주석 취임 직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온 부패척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미 지난 10월 하순 열린 중국 공산당 18차 중앙위원회 4중전회를 통해 ‘당 지도 하의 의법치국(依法治國·법에 따른 통치)’을 국정운영 방침으로 천명한 바 있다. 법, 다시 말해 법에 의한 통치를 중국의 새로운 기치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4중전회를 전후해 나온 중국 언론의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중국의 한 유력 언론은 4중전회 일정이 진행되는 것에 맞춰 발표한 사설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고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법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반드시 법률에 의한 통치를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당시 4중전회에서 중국 지도부는 의법치국을 내세우면서 특히 ‘권력남용 방지’와 ‘부패 척결’ 부분을 이야기했다. 당정 간부의 초법적인 월권을 제한하면서 영(令)이 서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결의였다.

    그동안 외국인들은 중국 당국의 일관성 부족이나 정책의 불투명성을 중국투자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꼽아왔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중국 정부의 새로운 국정운영 방침이 단기적으로는 중국 내부의 변혁을 일으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 정부가 내세운 ‘의법치국’이 과거 잣대로는 국가 또는 국민을 통치하는 기준으로 해석되는 게 관례였다. 그렇지만 이번 4중전회 회의 과정이나 시 주석의 일관된 의지를 감안한 때 이 방침은 그보다는 중국 관리들을 다스리는 기준이란 게 설득력이 높다.

    부패한 관리들을 엄단하며 월권을 방지한다는 점에서만 본다면 이는 외국기업들의 대중국 영업이 훨씬 투명해질 수 있기에 반가운 정책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이미 미국식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개혁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수뢰와 착복 혐의로 기소 직전 미국으로 도주했던 전 인민은행 간부를 소환하면서 사형을 시킨다거나 고문을 하지는 않겠다고 미국 측과 약속한 게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서양식 기준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점은 ‘관시’를 중시하던 기존의 대중국 영업에도 일정부분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언론이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탈법적인 뇌물수수 등의 비합법적 수단에 의존했다가는 향후 기업에 훨씬 큰 폐해를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가 국가개조 차원에서 부패척결에 엄청난 공력을 쏟고 있는 것도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에선 시 주석 취임 이후 부패 혐의로 처벌된 공직자만 8만여 명에 달하며 특히 속칭 ‘호랑이’ 급으로 불리는 고위공직자만도 56명이 처벌됐다.

    왕치산 중국 기율위 서기
    왕치산 중국 기율위 서기
    좀팽이 부패사범들을 처벌하는 여우사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해외로 도주한 부패사범을 악착같이 추적해 잡아들이는 것으로 미래에 일어날 부패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주력하는 것도 돋보인다. 중국 언론은 이와 관련 중국 정부에 대해 외국 정부와 협력해 부패를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선진국 수준의 부패방지 규범을 도입할 것을 요구해 바람을 잡기도 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와 관련해 지난 1990년대 이후 1만6000~1만8000여 명의 부패 공직자나 공기업 고위직들이 8000억위안(약 144조원)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로 도피한 부패 사범을 잡는 소위 ‘여우사냥’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자체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까지 추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을 회유하는 방식으로 귀국을 종용하고 있다는 보도도 수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초 왕치산 중국 중앙기율위원회 서기가 “앞으론 부패 관리가 바깥에서 놀지 못하게 하겠다”며 해외도피 관료 체포 의지를 밝힌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국력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인 인도협약을 새로 체결하거나 협약에 관계없이 범죄인 인도를 요구하기도 한다.

    중국은 자국 범죄인의 최대 도피처로 꼽히던 캐나다와 최근 해외 도피범의 불법 취득 재산 반환협정을 맺기로 했다고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가 지난 12월 15일에 보도했다. 또 미국에 대해서는 100여 명의 범죄인 인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캐나다 등은 그동안 중국이 범죄인을 가혹하게 처벌한다는 이유로 범죄인 인도협약 체결을 미뤄왔다.

    어쨌든 중국 정부는 이 같은 노력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 중앙기율위는 지난 2014년 7월부터 시작한 ‘여우사냥 2014’ 작전을 통해 60개국에서 428명을 검거했다고 공표한 바 있다. 기율위는 또 해외도피 부패사범 색출을 위해 홈페이지에 ‘반(反)부패 외국 도피범 추적·재산 환수 코너’까지 개설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부패척결 움직임이 향후 외국 기업을 향할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자국인 범죄인을 수사하며 확보한 자료는 필요 시 외국인을 겨냥해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의 부패척결 움직임을 가볍게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권대식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4중전회서 발표한 의법치국 이렇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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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중국 법조계 인사들은 의법치국을 정부의 지도원리로 삼겠다는 4중전회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결정문의 내용을 보면, ‘중국특색 사회주의 법치’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엄격한 삼권분립 수준에까지 이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번 4중전회의 발표만 가지고 실질적이고 실체적인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기는 다소 시기상조인 것 같다. 일단 긍정적인 신호인 것만은 분명한데, 외국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획기적인 개선과 보완이 있어야 의법치국 개념이 명실상부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입법기관 및 행정기관과의 관계에서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입법 규정과 행정기관의 재량권 남용 관행에 대한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권에 대한 사법심사 제도(예: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등)를 갖춰야 할 것이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같은 행정권에 대한 사법심사 제도 역시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난 10월 23일 당의 결정은 과학입법과 민주입법을 주창하고는 있으나, 이는 기본적으로 입법기관 내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서, 국민에 의한 사법심사까지 고려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일부 있으나, 아직도 외자기업들은 행정기관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는 데에 주저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법기관과의 관계에서 사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인 민사소송이나 중국 기업이나 개인의 범죄행위의 처벌을 구하는 형사소송에 있어서, 공정한 재판부가 구성이 되고 신속하고 적절한 절차적 권리 및 법률과 증거에 기초한 판단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북경, 상해, 광주와 같은 대도시의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은 점차 규범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방의 사법기관은 재판부와의 친소에 따라 법률적 근거가 부족한 내용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산동성의 모 법원은 중재합의가 있는 계약 분쟁 건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근거 없이 중재합의를 배제하고 당해 지방 소재기업에게 유리한 관할권을 인정했다. 한국 기업이 기밀이 유출되어 피해를 입은 사례에서도 하남성의 모 공안국은 고소 자체를 접수하지 않았다. 중국에선 고소를 접수하여야 비로소 입안이 되며 수사가 시작된다.

    4중전회의 상기 발표 이후 한국 기업이 주의해야 할 점 기본적으로 관시는 중국의 오랜 관행이자 일종의 문화다. 그리고 이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고 따라서 단기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법률 준수 없이도 관시만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기업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관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법률 준수가 전제되어야 하며 그 기초 하에서 약간의 ‘플러스 알파’의 효과를 누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근 중국 대형 국유기업들까지 많은 행정 규제와 사법 처벌을 당하는 것이 이를 시사하고 있다.

    관시와 관련한 문제의 핵심은 사실 관시의 보유 여부보다는 부당한 관시로 희생을 당하더라도 이를 적절하게 해소하고 시정할 수 있는 효율적 사법 구제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입법, 행정, 사법 통제 수단의 효율화, 실질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법치국의 방향성 정립은 이를 해소하는 하나의 시발점이 될 것임은 분명하나, 앞으로 실질적이고 실체적인 변화와 개혁이 있을지는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은 당장 의법치국의 혜택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규제 강화의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예를 들어 종래 지방정부가 외자 유치 과정에서 법적 근거 없이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그러한 관행이 점차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경우 한국 기업은 중국 지방정부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과거 불법적인 인센티브를 부당하게 향유한 것이 중단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또한 최근 반독점법 집행이 엄격해지고 있는데, 종래 담합 행위나 남용행위에 대하여도 법적 제재가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경우 집행기관이나 사법기관과 관시가 있다면 여전히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나, 사실 관시가 비용 대비 큰 효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우선 이러한 관시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브로커들이 관시가 해결할 수 있다며 터무니없는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실 효과는 미미하다. 실제 결과에 기여하였는지 여부를 검증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피해 사례가 더 많다. 적절한 법적 대응을 선행 또는 병행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기회를 놓쳐 더 과중한 법적 제재를 받고 브로커에게 기밀을 누설하고 과다한 비용을 청구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제 한국 기업도 중국 법률을 면밀히 검토하고 내부 준법감시 시스템을 정비하고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부당하게 권익을 침해받았다면 중한(中韓)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적법하면서도 효율적인 구제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발개위나 공상국에 의한 카르텔 조사 등에 있어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정당한 권익을 보호받는 경우가 점차 늘어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2호(2015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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