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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美 선거판에서 경제이슈가 사라진 까닭은
입력 : 2014.12.19 17: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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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은 5.8%를 기록해 전달보다 0.1%포인트 떨어지면서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신규 일자리 창출 건수도 9개월째 20만 개 이상을 이어갔다. 지난 1년 동안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 수는 무려 260만 개로, 이 가운데 200만 개가 민간 부문에서 만들어졌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 선거판에서는 경제 문제가 선거 승리의 최대 관건으로 다뤄져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백악관에 입성한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지난 6년여 동안 미국 경제 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고, 나름대로 긍정적인 성과도 거뒀다.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강대국은 미국이 유일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경제적 업적을 철저히 모른 척했다. 왜 그랬을까.
일단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선거 전략가인 스탠 그린버그는 “핵심적인 경제이슈를 말하는 데 있어서 오바마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저 먼 곳의 ‘음치(Tone Deaf)’였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경제이슈가 선거판에서 밀려난 데는 뭔가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는 지적이다.
밝은 모습의 공화당 의원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유명 칼럼니스트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브루킹스연구소에 합류한 데이비드 위셀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네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 번째 이유는 지표로 나타나는 경제상황과 사람들의 체감경기 사이에 발생하는 시차 문제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짤막한 구호에 밀려 재선에 실패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도 이런 시차의 피해자였다.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욕을 먹어가며 밀어붙였던 ‘레이거노믹스’의 과실은 같은 공화당의 후계자인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대통령이 누렸다. 시차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의 골이 너무 깊었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이 많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에서는 700만명 이상이 정규직 풀타임 일자리를 얻지 못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지난 10월 기준으로 핵심 근로계층인 25~54세 미국 남성 가운데 16.1%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6명 중 1명꼴이다.
세 번째 이유는 미국 국민들의 소득 증가율이 여전히 저조하다는 점이다.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평균 시간당 임금은 1.9%, 평균 주간 소득은 2.5%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개인과 가계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았으니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이유는 미국 사회 전반에 퍼진 염세주의(Pessimism)다. 지난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6%가 다음 세대가 지금 세대보다 더 잘살 것이라는 물음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데이비드 위셀은 “미국 경제가 심각한 심장마비에서 회복되면서 사람들이 소득 정체와 양극화 등 만성질환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1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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