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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권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스타 헤지펀드 시타델 창업자…초저금리 장기화에 베팅
입력 : 2014.09.12 14: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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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전환사채(CB)를 사고팔았는데 트레이딩 때문에 강의를 빼먹은 횟수가 적지 않았고 수업시간 중에도 거래를 할 정도로 집중했다. 이처럼 대학생 때부터 전문 트레이더 길로 접어든 그리핀 CEO는 1989년 학교졸업 후 헤지펀드 회사에 취직, 1년여간 잠시 펀드를 운용했다. 이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수익을 거두면서 뭉칫돈을 든 투자자들이 그리핀 CEO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돈을 싸들고 그를 찾아온 투자자들이 맡긴 종잣돈 420만달러를 가지고 1990년 11월 시카고에 헤지펀드 시타델을 설립했다. 사명을 시타델(Citadel, 피신을 위한 성채·요새)로 지은 것은 시장 변동성이 커지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겠다는 그리핀 CEO의 의지를 담고 있다.
대학생 때 만든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그리핀 CEO가 기록적인 수익률 행진을 계속하면서 투자자금이 봇물 터지듯 유입됐고, 헤지펀드 덩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2008~2009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조원대의 돈을 날리면서 펀드를 폐쇄해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리핀 CEO는 당시를 매우 어두운 순간(very dark moment)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만 제외하면 매년 두 자릿수 수익을 올리면서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자리에 올라섰다.
펀드 설립 24년 만에 시타델은 전 세계 주요 금융센터인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런던, 홍콩 등지에 진출하는 한편 운용자산규모만 200억달러로 급증,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가 됐다. 이처럼 헤지펀드 업계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그리핀 CEO는 자기 주장이 강한 인물이다.
단순히 헤지펀드 매니저로 성공한 데에 만족하지 않고 막대한 재산을 배경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교육과 정치다. 교육과 정치가 개선돼야 미국 경제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정치 선진화를 위해 기부금과 정치헌금이라는 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리핀 CEO는 시카고공공교육기금 이사회 부회장 역할을 맡는 한편 그의 아내와 함께 2009년 케네스앤그리핀재단을 설립, 사회적 가치를 키울 수 있는 곳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거액 기부를 했다. 하버드 개교 400년 이래 최대인 1억5000만달러(약 1550억원)를 하버드대에 선뜻 괘척한 것. 학교 수업을 밥 먹듯 빼먹던 그리핀 CEO였지만 자신이 제공한 기부금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하버드에서 수학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치적 입장도 확실하다. 지난 2012년 그리핀 CEO는 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공화당)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작은 정부론을 신봉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반면 민주당은 시장 정책 실패로 인해 경제가 침체에 빠질 때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고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큰정부론을 지지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과도한 금융규제 완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고 초강력 금융규제감독 강화조치를 담고 있는 도드 프랭크 법안을 법제화한 바 있다. 반면 공화당은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정부 역할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작은 정부론을 주장한다.
그리핀 CEO는 오바마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금융산업 창의성을 억압,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한발 더 나아가 미국 경제성장에도 좋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규제 덜한 공화당 지지
미국경제가 1분기 역성장 쇼크에서 벗어나 2분기에 4%나 될 정도의 큰 폭으로 상승한 데다 3분기 성장률도 3%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내년 초 기준금리 조기인상설이 힘을 받고 있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망이다. 그리핀 CEO는 일단 재닛 옐런 연준의장이 장기간 저금리기조를 시장에 약속한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또 인플레이션 압력이 미미한 데다 고용시장 개선 여지가 더 남아 있다는 점도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미루는 배경이 될 것으로 봤다.
특히 굵직굵직한 지정학적 위기가 잇따르고 유로존, 신흥국 등 글로벌 경제회복세가 여전히 취약하고, 미국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굳이 조기 출구전략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그리핀 CEO는 “미국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점을 확인할 때까지 연준이 최대한 금리인상을 늦출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핀 CEO는 “미국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커져 연준이 금리인상에 나서면 그 속도는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가파를 것”이라며 투자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저금리 기조 속에 증시 랠리가 이어지는 것은 즐기되, 하반기로 갈수록 연준 출구전략 불확실성을 감안해 투자위험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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