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우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미국의 사표 문화…사고 일으킨 최고 책임자에게 수습 기회

    입력 : 2014.06.12 13: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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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미국에선 2건의 초대형 ‘IT(정보기술) 사고’가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왔던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의 가입 웹사이트(HealthCare.gov)가 다운된 것과, 미국의 대형소매업체인 타깃에서 발생한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그것이다.

    파장이 엄청난 사고였던 만큼 이 두 사건의 책임자는 모두 현재 사임한 상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꽤 흥미롭다. 두 사건의 진행사항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국 특유의 ‘사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최고 책임자를 섣불리 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오바마케어 사이트의 접속 불량으로 세간의 여론이 악화되자 비난의 화살은 온통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부 장관에게 쏟아졌다. 오바마케어의 행정 책임자로서 충분한 사전 검증작업을 거치지 않고 사이트를 열었다는 것이 그녀의 ‘죄목’이었다. 야당인 공화당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녀의 경질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시벨리우스 장관을 교체한 것은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올해 4월 10일이었다.

    이튿날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공식 발표를 겸해 함께 만난 오바마 대통령과 시벨리우스 장관, 후임자인 매튜스 버웰 백악관 예산관리 국장의 표정은 모두 밝았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케어 신청 마감시한이었던 3월 말 가입자가 당초 목표치였던 700만명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캔자스 주지사 출신으로 2009년부터 보건부 수장을 맡았던 시벨리우스 장관은 ‘명예 회복’을 훌륭하게 한 셈이 됐고,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에게 미칠 정치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후임자인 버웰 지명자 역시 전임자로부터 ‘골칫덩이’를 떠안지 않게 됐으니 모두가 행복하게 된 셈이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숫자가 모든 걸 말해준다”며 시벨리우스 장관을 치하했다.

     캐슬린 시벨리우스 전 장관
    캐슬린 시벨리우스 전 장관
    이런 패턴은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고를 당한 타깃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됐다. 추수감사절 쇼핑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말 타깃 전산망에 침투한 정체불명의 해커가 4000만명의 신용 및 직불카드 정보를 빼내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지난 1월에는 7000만명에 달하는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일부 중복된 고객정보를 포함해 총 1억1000만 건의 신용 및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사상초유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을 맞아 타깃의 그렉 스타인하펠 CEO(최고경영자)는 시종일관 ‘정공법’으로 승부했다. 고객 유출사건과 관련해 확인된 모든 사실을 발표하고, 고객에게 깊이 사과하는 한편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그렇게 5개월여를 보낸 스타인하펠 CEO는 지난 5월 5일 고객정보 유출 사태의 책임을 지고 CEO와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타깃의 성실한 노력 덕분에 사고 수습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책임자에게 사고를 수습할 기회와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배려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특유의 실용적인 사고방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사고의 발생 경위와 기존 시스템에 밝은 기존 책임자야말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사고 수습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 시행을 발표하는 상하원 민주당 대표
    오바마케어 시행을 발표하는 상하원 민주당 대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사고가 수습될 때까지 인사 조치를 마냥 미뤄놓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도덕적 상징성이 있는 최고 책임자는 일정 기간 유임시키더라도 업무상 과오를 저지른 실무자는 상황 파악이 끝나는 대로 갈아치운다. 타깃이 그랬다. 타깃은 지난 3월 베스 제이컵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의 교체 계획을 발표했다.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가 대충 마무리되자 문책 인사를 단행한 셈이다. 이어 타깃은 스타인하펠 CEO의 사임을 발표한 같은 날, 건자재 전문 소매점인 홈디포에서 명성을 쌓은 밥 드로드스를 후임 CIO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기존 인력이 미덥지 못하면 검증된 전문가를 영입해 ‘구원 투수’로 투입하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오바마케어 가입 웹사이트의 총괄 책임자로 커트 델빈 전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 사업부 사장을 임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년간 근무한 베테랑 엔지니어를 실무 총책임자로 앉혀 사고 수습를 하도록 한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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