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교수의 중동 오디세이] (3) 페르시아만, 아라비아만, 걸프만…우리가 모르는 개념의 혼란들

    입력 : 2014.03.10 14: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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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5월 3일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국왕은 이란 공식방문 마지막 날 당혹스런 경험을 했다. 환송식에서 국왕은 “아라비아만 지역의 영광과 화합을 위해 이란 축구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칼리파 국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어렸을 적 국왕도 페르시아만으로 불렀을 텐데 영국에서 학교를 다녀 잘 몰랐나”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칼리파 국왕은 얼굴이 붉어졌다. “어쨌든 이 바다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라고 받아치고는 앉아버렸다. 이란과 걸프 국가들을 가르는 바다의 명칭에는 양측 간 오래된 갈등이 담겨 있다. 이란은 이 바다를 페르시아만, 아랍권은 아라비아만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는 여러 섬들을 놓고 양측 간 소유권분쟁이 벌어지는 중이기도 하다. 우리의 독도와 동해 이름을 놓고 일본이 제기하는 명칭, 소유권 논쟁과 유사하다.

    최근에는 이란이 핵개발로 지역 패권을 노리면서 아랍권은 이 바다의 명칭과 영토분쟁에서 열세에 놓일까 우려하고 있다. 중동 지역을 언급하는 용어 혹은 개념 사용에 있어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영국의 권위 있는 지도제작사인 콜린스(Collins)는 이 바다를 그냥 ‘만(灣, The Gulf)’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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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고기 금지는 이슬람 전통? 중동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특히 무슬림들은 더욱 그렇다. 이런 생활이 아랍전통, 중동전통, 혹은 이슬람전통 중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슬람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람 문화라고 하면 맞을 수 있다. 현재 이슬람권에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슬람 전통으로 분류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 최소한 이슬람 종교가 시작한 율법이나 관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 이전에도 중동 지역의 유목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슬람보다 약 2000년 이전에 등장한 유대교도 돼지고기의 섭취를 금하고 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이슬람 전통이라기보다는 중동의 전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동의 환경 및 기후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거나 금하게 된 것이다. 한 여름에는 체감온도가 아닌 수은주 온도가 50도를 넘어가는 곳이 많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이런 기후에서 돼지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공동체의 보건 상 많은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때문에 공동체의 보건과 복리를 위해 종교적으로도 규정해 놓은 것이다. 사막의 유목 환경도 돼지고기 금지의 배경이 되었다. 유목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는다. 즉 자신들이 먹을 식량도 부족하다. 인간이 음식을 주어야 하는 돼지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또 계속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돼지를 몰고 다니기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슬람 이전에도 중동의 사막 지역에서는 돼지를 키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처럼 우리가 잘 아는 부분에도 용어의 혼란이 있다. 용어의 혼선은 단순히 인식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실제 비즈니스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잘못된 용어의 선택은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현지인들에게 안겨 줄 수 있다. 이미지를 망치고 협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랍과 이스라엘은 앙숙관계에 있다. 이스라엘 바이어에게 아랍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게 되면 불만을 표시할 것이다. ‘중동은 왜 폭력적이고 이상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더 화를 낼 것이다. 중동이라는 용어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혹시나 하게 된다면 아랍 혹은 이슬람권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이란과 아랍도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경쟁 혹은 라이벌 관계에 있다. 최근에는 시아파와 수니파 갈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란 바이어에게 ‘아랍의 경제상황이 어떤가?’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면 아마 짐을 싸들고 가버릴 것이다. 터키도 아랍 국가가 아니다, 반면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고자 하고 있고, 과거에는 중동의 일부였다.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의 정확한 사용은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민족적 개념, 아랍 아랍은 아랍 민족을 의미한다. 그런데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적 개념이 아니다. 언어·문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적 개념이다.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혹은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혈연이 아니라는 이유는 아랍 국가들 중에 완전히 다른 인종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단, 이집트 남부, 지부티, 소말리아 등 아랍 국가들에는 주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거주한다.

    북부아프리카 국가들에는 베르베르족이 상당수 살고 있다.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등에는 거의 백인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아라비아반도에는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혼혈 인종들이 발견된다. 터키인, 이스라엘인, 그리고 이란인들도 상당히 아랍인들과 유사한 외형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 나라 사람들은 아랍인이 아니다. 즉, 인종이나 혈연 그리고 생김새로 아랍인을 구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가장 쉽게 아랍 국가를 구분하는 방법은 언어다. 아랍어가 공식어로 사용되는 나라는 아랍국가다. 아라비아반도, 이라크에서 레바논까지의 북부아라비아,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 해안지역 국가들을 포함한다. 아랍세계에 속하는 국가들은 아랍 연맹(1945년 결성)에 속해 있는 22개 국가들이다. 모두 아랍어가 사용되는 국가들이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예멘(남북예멘 1991년 통합), 이집트, 수단, 지부티, 소말리아,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모리타니, 그리고 코모로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국제사회에서는 정식국가가 아니지만 아랍연맹에서는 회원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터키,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은 아랍에 포함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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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적 개념, 중동 중동은 지리적 혹은 지정학적 개념이다. 상당히 논란의 대상이 되는 개념이다. 현재까지도 이 개념에 포함되는 나라들에 대한 일치된 의견이 없다. 어쨌든 가장 많이 쓰이는 중동의 개념은 ‘협의의 중동’이다. 현재의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그리고 이스라엘만이 이 개념에 포함된다. 과거와는 달리 터키는 터키 정부와 국민의 유럽연합 가입 의지가 있어 때로는 중동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학자들이 이러한 좁은 의미의 중동 개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중동의 개념이 가진 유럽중심주의 시각이다. 즉 중동은 서방이 만들어낸 개념. 중요한 점은 아랍인들이 중동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방과 아랍의 불편한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이 담긴 개념을 불편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 지역을 남서아시아(Southwest Asia)로 칭하기도 한다. 중동의 개념에 대한 아랍인들의 불편함은 중동이라는 용어가 이스라엘이 퍼뜨린 담론이라는 시각에 의한 것이다.

    일부 아랍인들은 유럽과 미국이 정착시킨 중동의 개념을 유대인들이 널리 확산시켰다고 믿는다. 나름대로 근거는 있다.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들에게는 이 지역이 아랍이라고 불려서는 안 됐다. 아랍이라는 용어가 확산될 경우 ‘아랍’이 아닌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속하지 않는 이물질 같은 인상을 주게 된다. 상당히 심각한 심리적 안보위협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리적 개념인 중동이 널리 사용될 경우 이스라엘도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 포함된다.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은 언론, 학계, 그리고 재계를 장악하고 있어서 이런 담론의 확산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종교적 개념, 이슬람권 이슬람권 혹은 이슬람세계는 종교적 개념이다.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와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집합을 의미한다. 이슬람회의기구(Organiz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 소속 57개 국가들이다. 이슬람 세계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 및 모든 아랍국가들 중심으로 동남아 지역, 중앙아시아, 동유럽 일부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이슬람권의 개념은 향후 더욱 많이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를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눈다면 이슬람은 이미 세계 최대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무슬림의 수는 16억명이다. 전 세계 사람들로 보면 4명 중 1명이 무슬림이라는 얘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배경은 인구폭증이다. 사우디, 이집트 등 이슬람국가의 인구가 급증했다. 이슬람에서는 낙태가 절대 불가하다. 태아는 알라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손댈 수 없다는 것이다. 오일 머니를 통해 보건을 포함한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도 이슬람권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종교다. 특히 아프리카대륙에서는 이슬람권이 1km씩 남쪽으로 확대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다.

    중동 미니 상식 | 침묵은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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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은 금이다’라는 금언이 있다. 그러나 아랍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즐겁게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예의다. 체면을 중시하는 아랍에서는 손님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노심초사한다. ‘자신의 대접에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에 사는 유목민들은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를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디완(diwan)’이라는 사랑방 문화가 아랍 성인들의 여가 이용 방법이다. 해가 지면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친목을 도모한다. ‘밤새 이야기하다’라는 표현이 한 단어인 ‘사마라(samara)’로 존재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샤흐라자드 왕비는 천 하루 밤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목숨을 구하고 왕의 사랑을 얻게 된다. 식사하면서 대화를 잘 하지 않는 한국 드라마의 장면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아랍인들은 말한다. 침묵보다는 수다가 아랍에서는 더 잘 통한다. 가벼운 대화에 적극 참여하면서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사업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겁고, 딱딱하고, 공식적인 협상에서는 ‘외교적인’ 결과가 자주 도출된다. [서정민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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