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의 보안관…프릿 바라라 검사

    입력 : 2014.02.07 10:16:42

  • 사진설명
    세계 금융 수도라는 명성에 걸맞게 뉴욕 맨해튼에서는 연일 각종 투자콘퍼런스와 투자거물들의 강연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은 물론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뉴욕타임스 등 언론사들도 월가금융기관 회장이나 최고경영자(CEO)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경기전망과 투자전략을 듣는 콘퍼런스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금융기관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들이 진행하는 투자 세미나 등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들 투자콘퍼런스에 가면 시쳇말로 잘 나가는 유명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회장들은 물론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등 월가 금융기관 총수들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투자콘퍼런스 단골손님은 월가 금융기관, 헤지펀드, 사모펀드를 이끄는 큰손들이다. 그런데 지난 한 해 동안 대규모 월가 투자콘퍼런스에 금융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법조계 인물 한 명이 자주 모습을 보였다. 바로 맨해튼, 브롱스 등 뉴욕 주 8개 남부지역을 총괄하는 뉴욕남부연방지방검찰청을 이끌고 있는 프릿 바라라 연방 지검장이었다.

    탈불법 용서없다…그의 칼끝 초미의 관심 투자콘퍼런스에 웬 검사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바라라 지검장은 최근 월가에서 가장 ‘핫(Hot)’한 인물이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검사생활을 하다가 지난 2009년 뉴욕남부연방지방검찰청 지검장으로 중용된 바라라는 내부자거래 등 월가 금융기관 탈불법 행위에 메스를 들이대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월가 보안관, 월가의 클린트이스트우드로 불리는 바라라 지검장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가 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투자콘퍼런스에 바라라 지검장을 기조연설자로 초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라라 지검장은 검찰의 그물망에 걸려든 월가금융기관들을 결코 그냥 풀어주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월가 금융기관 내에서 자행되는 불법·탈법행위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뒤에는 범죄행위를 증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주로 마약이나 갱단 등 조직범죄집단의 강력 범죄 행위를 밝혀내는데 사용하는 감청과 도청을 월가 내부자거래 행위를 들춰내는데 전방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부자거래 사건에 감청기법을 사용한 것은 바라라 지검장이 처음이다. 관련 인물들의 이메일 내용은 물론 전화통화까지 감청, 증거를 확보한 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바라라 지검장의 월가 화이트컬러 범죄 대응책이다.

    가장 최근 바라라 지검장으로부터 철퇴를 맞은 금융기관은 자산기준으로 미국 최대은행인 JP모건. 지난 1월 JP모건은 바라라 검사장으로부터 26억달러에 달하는 벌금·배상금 폭탄을 맞았다. 미국에 큰 충격을 안겨준 희대의 금융사기꾼 버나드 메이도프의 피라미드 금융사기(폰지)를 인지하고서도 이를 금융감독당국에 알리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바라라 지검장은 “의심할만한 사유가 충분했지만 JP모건은 은행내부에서 제기된 메이도프에 대한 경고를 애써 외면하는 등 비참할 정도로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피라미드 사기를 통해 170억달러(18조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갈취한 메이도프는 150년 징역형을 살고 있다.

    JP모건과 바라라 지검장과의 악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라라 지검장이 월가금융기관들의 환율·금리조작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조사대상 금융기관 중 한 곳이 JP모건이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지난 2008년 당시 투자위험을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불완전판매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116억달러에 달하는 벌금·배상금을 내는 선에서 소송을 취하하는 것으로 바라라 지검장과 합의를 봤다. 골드만삭스, 씨티그룹도 역시 바라라 지검장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수억달러의 배상금·벌금을 납부해야 했다.

    너무 엄격한 잣대 불만도 적지 않아 지난 20여 년간 연 25%라는 대박 수익률 행진을 지속했던 대형헤지펀드 SAC캐피털어드바이저스도 바라라 지검장에게 내부자 거래혐의가 발각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11월 SAC캐피털은 내부자 거래혐의를 인정하고 18억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 내부자 거래혐의에 부과된 벌금액 중 사상최대다. 바라라 지검장은 SAC캐피털이 “지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최소 20개 상장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불법적인 이익을 남겼다”며 “SAC캐피털은 사기꾼들을 끌어들이는 자석(Magnet for market cheaters)”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SAC캐피털을 설립한 억만장자 스티브 코언회장도 좌불안석이다. 이 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코언 회장이 내부자거래에 연루됐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지속하겠다고 바라라 지검장이 천명했기 때문이다.

    월가 불법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바라라 지검장덕분에 내부자 거래 등 화이트컬러 범죄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바라라 지검장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월가금융기관에 대해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최근 바라라 지검장은 미국 월가를 넘어서 인도에서까지 화제를 몰고 있다. 미국·인도 외교갈등까지 비화된 데비아니 코브라가데 인도 뉴욕총영사관 부총영사 체포건 때문이다. 코브라가데 부총영사는 지난해 12월 가사도우미에게 미국연방정부가 규정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경찰서에서 알몸 수색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도정부가 미국 정부에 강력 항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바라라가 지검장으로 있는 뉴욕남부연방지방검찰청이 코브라가데 수사를 총괄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화살이 바라라 지검장에게 향했다.

    인도계 미국인인 바라라 지검장이 출세에 눈이 멀어 동족에게 더 모욕적인 대우를 했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인도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바라라 지검장은 인도 펀잡 주 출신으로 시크교 아버지와 힌두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미국 이민 1.5세대다. 하지만 바라라 검사는 “누구에게나 법은 평등하게 적용된다”며 “코브라가데 전 부총영사 체포는 적법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코브라가데 부총영사 알몸수색사건 이후 바라라 지검장이 감옥에 보낸 월가 인물 중 인도계와 스리랑카계 거물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바라라 지검장은 지난 2011년 월가에서 승승장구하던 헤지펀드업계 거물 라지 라자라트남을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해 유죄평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박봉권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