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0조원 주무르는 사나이…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입력 : 2014.01.09 10: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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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조1000억달러(약 4313조원)를 주무르는 사나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4조1000억달러는 세계15위 경제대국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2012년 기준 1조1635억달러)규모보다 4배 가까이 큰 액수다. 한국 만한 경제덩치를 가진 4개국 GDP를 합쳐놓은 만큼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굴리고 있는 셈이다.

    블랙록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인 핑크 자신도 지난 1988년 블랙록을 설립할 때만 해도 수조달러 규모의 자산을 쥐락펴락하는 세계최대자산운용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지난 1950년 평범한 구둣가게 아들로 태어난 핑크 회장의 첫 직장은 월가 투자은행 퍼스트보스턴이었다. 이곳에서 핑크 회장은 채권트레이더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부채 증권화(Debt Securitization)를 통해 새로운 채권상품 시장을 개척, 30대 초반에 임원으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차량대출채권 등 채권을 기초자산(Underlying Asset)으로 주택담보대출증권(MBS), 부채담보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등 파생상품을 새롭게 만든 뒤 이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고 유통시켜 회사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다.

    하지만 잘 나가던 핑크회장도 한 번의 리스크관리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1986년 당시 금리 인상(채권값 하락)을 내다보고 채권투자에 나섰다가 채권금리가 급등하는 바람에 1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본 것. 이후 회사를 그만둔 핑크회장은 1988년 뉴욕 맨해튼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블랙록을 설립하게 된다.

    원래는 세계 최대 부동산 사모펀드 블랙스톤 펀드형태로 출발했지만 1994년 독립한 뒤 1999년 블랙록을 상장시켰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2009년 연이어 메릴린치자산운용과 바클레이스 자산운용부분을 인수했고 자산규모를 3조달러 이상으로 늘렸다. 이후 또 4년 만에 운용자산이 1조달러 이상 늘어나 4조달러 선을 넘어서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잘나가는 월가 대표금융기관으로 우뚝 섰다.

    전 세계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을 굴리는 블랙록은 채권, 원자재, 헤지펀드,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지만 그 중에서도 주식에 가장 많은 자산을 집어넣고 있다.

    블랙록은 7000여 개의 투자포트폴리오(펀드)를 전 세계적으로 운용하고 있고 30대 글로벌 기업 중 절반정도 기업의 최대 주주로 등재돼 있다. 투자실패로 회사를 떠나야 하는 좌절을 겪었지만 오히려 투자실패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회장으로 재탄생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작용된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정부도 핑크회장에게 많이 의존했다. 부실채권이 급증하던 상황에서 부채 증권화에 일가견이 있는 핑크회장의 조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핑크회장은 워싱턴인사이더가 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기 재무장관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주가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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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기 증시랠리 지속…단기 조정 가능성 핑크 회장은 지난해부터 주식투자를 최고의 투자대상으로 삼고 주식에 100% 투자자금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주가 낙관론을 펼쳐왔다.

    실제로 핑크회장의 증시낙관론은 그대로 맞아떨어졌고 2013년 한 해 동안 다우, 나스닥, S&P 500지수가 연간기준으로 최근 수십 년래 최대 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랠리를 지속했다. 이랬던 핑크회장이 최근 의견을 다소 수정한 상태다.

    지난 12월 뉴욕 맨해튼 뉴욕타임스(NYT)본사에서 열린 뉴욕타임스딜북콘퍼런스에 참석한 핑크 회장은 “최근 증시상황이 혼란스럽다(Confusing)”고 실토했다. 2013년 한 해 동안 8~12%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던 미국 증시 상승률이 예상을 큰폭 넘어섰기 때문이다. S&P 500지수는 2013년 한 해 동안 30%가까이 폭등했다. 단기급등에 따른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자세이다. 2014년 미국증시가 10~12% 조정을 받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증시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핑크 회장은 “2013년과 같은 폭등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5~6년간 매년 미국증시가 6~9%씩 꾸준히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 핑크 회장 전망대로 증시가 상승한다면 다우지수가 6년 후인 2019년에는 2만8000선에 도달, 꿈의 3만선을 목전에 두게 된다.

    양적완화 규모 줄이고 서둘러 중단하라 핑크회장은 연준 양적완화 프로그램 최대 수혜자 중 한명이다. 양적완화로 풍부해진 유동성덕분에 증시랠리가 지속됐고 블랙록이 운용하는 펀드수익률이 좋아지면서 더 많은 돈이 블랙록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준 양적완화 조치가 펀드비즈니스에 큰 도움을 줬지만 정작 핑크 회장은 양적완화 규모를 더 빨리 축소하고 가능한 신속하게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적완화조치가 금융자산 가격을 왜곡해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진단인 것이다.

    국채가격 왜곡도 핑크회장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핑크 회장은 “2013년에 연준이 미국 국채의 80%를 사들였는데 최근 미국 재정적자가 줄면서 재무부 국채발행규모가 줄어들고 있어 양적완화를 빠르게 줄이지 않으면 연준이 미국 신규국채를 100% 사들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거대한 거품(Giant Bubble)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양적완화가 일자리 창출에도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연준 통화정책보다는 정부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재정정책이 구조적 실업 딜레마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양적완화규모가 축소되더라도 시장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게 핑크 회장의 분석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양적완화 축소로 단기조정이 있더라도 중장기적인 상승흐름은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채권금리 급등도 그렇게 겁을 낼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양적완화를 축소하더라도 상당기간 연준이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리스크가 아킬레스건 핑크 회장의 미국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상당하다. 지난 10월 초 16일간 이어진 연방정부 일부폐쇄(셧다운)와 미국정부를 부도일보직전으로 몰고 갔던 부채상한선 증액협상 등 워싱턴 정치권의 벼랑끝 대치로 인해 미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정치리스크로 인해 미국 최고경영자(CEO)들이 중장기적인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천문학적인 현금을 쌓아두고 자사주를 사들이거나 배당금을 증액하는 등 금융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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