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격한 변화물결…기회의 땅 중동 앗쌀람 알라이쿰!

    입력 : 2014.01.09 10: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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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와 19세기에 중동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그려낸 중동의 모습은 ‘이국적 낭만’이었다. 왕궁을 방문한 유럽의 정부 관료들은 비밀스런 하렘(Harem: 왕의 여인들의 거처)의 모습을 전하기 바빴다. 반라의 하렘 여성들의 사진이나 스케치가 유럽 책자들에 자주 소개됐다. 초콜릿색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랍여성들은 유럽 남성들의 호기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차 대전 당시 아랍의 정치상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에서도 아랍은 낭만적인 곳으로 등장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신 로렌스의 눈에 비춰진 아랍의 신비감이 영화전반을 흐른다. 홀로 말을 타고 광활한 사막을 거쳐 오아시스에 도착하는 로렌스의 모습은 이미 산업사회에 들어간 유럽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신비감에서 적대감으로 아랍에 대한 낭만과 신비감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사라져버렸다. 전환점은 1948년이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해다. 이스라엘의 국가건설을 인정치 않고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키면서 아랍은 유대인들의 적이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구 국가들도 아랍을 적대시 했다. 특히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점령에 항거하는 팔레스타인인들도 모두 테러세력으로 규정했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적대감이 등장하는 사건도 있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이다. 이스라엘에 이어 중동 내 두 번째 교두보였던 이란을 잃은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소련의 남하를 막아주던 친서방 팔레비 정권이 붕괴하고 이슬람 신정국가가 등장한 것이었다.

    호메이니 정권이 이슬람혁명 수출을 선언하고, 얼마 후 친미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도 암살당했다. 미국은 ‘이슬람=테러리즘’이라는 등식을 더욱 확립해나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 등식을 적용해 미국은 군사적인 보복을 단행했다. 다국적군을 구성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고 점령했다. 이에 저항하는 아프간과 이라크 무장조직은 모두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혔다.

    1990년대 초 동구권의 몰락으로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가 등장하면서 이슬람권은 또 다시 구소련 공산주의를 대체하는 적으로 부상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담론이다.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이 21세기 주요 분쟁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첨단정보통신이 보편화하고 21세기에도 이런 시각이 팽배해 있다. 2005년 덴마크 신문이 게재한 ‘무함마드(마호메트) 풍자만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 12컷 때문에 수백 명이 사망했다. 무함마드가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모양의 터번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명백히 이슬람의 폭력성을 강조한 것이다. ‘중동 혹은 이슬람=테러리즘’ 공식을 부각시키려는 한 유럽언론사의 의도였다. 하지만 알카에다 등 국제테러네트워크가 대서방 테러를 본격화한 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였다. 미국이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에 주둔하기 시작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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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re All Khaled Said’ 테러로 인해 야만적이라고 지적당하고 있는 중동. 하지만 현지의 모습은 서구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야만적인 사회에서 페이스북에 ‘We Are All Khaled Said(우리는 모두 칼리드 사이드다)’ 페이지가 올라 올 수 있을까? 경찰에게 폭행당해 숨지면서 민주화 봉기의 불씨를 제공한 29살의 청년사업가 칼리드 사이드의 이름을 딴 페이스북 페이지다. 21세기 정보통신 발달의 결과인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시민 저널리즘이 2011년 이집트 민주화 혁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중동권의 정치 환경 변화는 이미 수년전에 시작됐다. 2005년 9월 이집트의 대통령선거에서도 휴대폰 문자메시지 선거운동이 인기를 얻었다. ‘vote4nour(누르 후보에 투표하자)’라는 메시지가 외국인 휴대폰에도 날아왔다. 야당지도자 아이만 누르(Ayman Nour)에게 표를 던지라는 선거 캠페인의 한 방법이었다.

    2011년 이후 중동은 새로운 변혁을 시작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이 본격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2011년 1월 중순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민혁명은 이집트의 30여 년 장기집권마저 무너뜨렸다. 예멘과 리비아의 정권변화도 가져왔다. 시리아 정권은 생존을 위해 무모한 진압까지 펼쳐가며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도전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 알제리, 바레인, 팔레스타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타 아랍국가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간헐적이지만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민주화 개혁 압박에도 꿈쩍 않던 중동의 정권들이 이제 현재 거리에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내부로부터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중동의 권위주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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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 2030 두바이 정부가 국가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2010년에 발표한 20년 장기계획이 바로 ‘두바이 2030’이다. 두바이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부다비, 쿠웨이트 등 대부분 아랍 정부들도 이런 장기 국가 발전계획을 언급하고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보여주던 과거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과거에는 ‘돈만 펑펑 쓰는 졸부’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석유가 고갈될 미래를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인프라를 구축해 석유 이외에 산업도 발전시키겠다는 ‘산업다변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때문에 중동은 현재 세계 건설 및 플랜트 시장으로 부상했다. 향후 10년간 약 1조달러 이상의 프로젝트가 발주될 예정이다. 2006년 이후 우리기업에게도 중동은 최대 건설 및 플랜트 시장이다. 해외 수주의 약 60% 이상이 중동에서 오고 있다. 매년 약 300억달러 전후의 수주액이다.

    중동 시장의 잠재력은 더 크다. 25개의 중동 국가를 포함한 57개국 이슬람권의 GDP는 전 세계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도 16억명에 달한다. 인구의 60% 이상이 30세 이하라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브릭스(BRICS)의 대체 시장으로 유망하다. 더욱이 2011년 일부 아랍국가의 정치변동 이후 다른 중동국가들은 국민의 불만을 완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중단기적으로도 상당한 건설 붐이 이어질 것이다.

    중동은 최근 건설 및 플랜트 시장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발과 투자에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 유가가 급상승하면서 산유국의 재정수입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1조85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전 세계 국부펀드 총액의 36.5%가 중동의 금고에 있다. 규모기준으로 세계 20대 국부펀드 중 9개가 중동에 위치해 있다. 1000억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슈퍼 세븐(Super Seven)’ 중 4개가 중동의 국부펀드다. 이 중 아랍에미리트의 ADIA는 2013년 기준 6270억달러를, 사우디의 SAMA는 5328억달러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쿠웨이트의 KIA와 카타르의 QIA도 각각 2960억, 1000억달러의 자금을 굴리고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금융위기 사태에 가장 영향을 덜 받은 지역이 바로 중동이었다. 오히려 대외투자를 늘리면서 서방 국가, 기업, 금융기관 등으로부터도 VIP 대접을 받고 있다. 범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의 2013년 11월 8일 분석보도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지난 10년간 걸프 6개국이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방송은 1조800억달러다. 미국에 5600억달러, 유럽에 2700억달러, 아랍권에 1300억달러, 그리고 아시아에 1200억달러를 투자했다. 한국 정부가 이슬람금융 도입을 한 때 검토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대 시장 이란도 열리면… 정치와 경제 환경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획기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란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돌아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2013년 11월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됐다. 6개월간의 잠정적이고 일차적 합의이지만, 1979년 이후 이어진 미국 등 서방과 이란의 긴박한 대립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평화적 원자력 발전을 위한 저농축 우라늄 생산만 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대해 서방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이 약속을 준수한다면 모든 제재를 풀고 정치 및 경제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입장이다.

    이란은 중동 내 우리의 최대 교역 국가였다. 인구 8000만명 이상의 거대 시장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에 있어 세계 2위다. 아연 매장량은 세계 1위다. 구리, 철광석 등 다른 장원도 풍부하다.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수자원이 있는 나라이고 제조업과 농업도 상대적으로 발달한 나라다. 현재는 강력한 국제사회 하에서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 시장도 열리면 중동은 정치경제적으로 크게 변모할 것이고, 이는 우리와 세계경제에 또 다른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다.

    중동 미니 상식 | 앗쌀람 알라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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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당신에게!(Assalam Alaikum)’라는 중동의 대표적 인사말이다. 인사는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에티켓이다. 예의바르게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슬림들은 먼저 인사를 할 경우 알라가 현세 및 내세에서 더 많은 축복을 준다고 믿고 있다. 쿠란도 “누가 먼저 인사를 해 오면, 더 상냥하게 답하라. 알라는 너희들이 하는 인사의 횟수도 다 세고 계시느라.”고 명시하고 있다(알-누르 장, 86절). 때문에 중동에서는 길에서 지나치는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앗쌀람 알라이쿰’이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경우 꼭 답을 하는 것이 좋다. ‘와 알라이쿰 앗쌀람’이 그 답이다. 이슬람의 종교가 규정해 놓고 있지만, 이런 인사방식은 원래 중동 유목민의 전통이다. 우물을 지키기 위해 모든 남성이 무장을 하고 1년 내내 전투태세를 유지하는 곳이 유목사회다.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은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긴장을 풀고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사표현이기도 하다. 중동에서의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인맥구축이 필수적이다. 밝게 웃으며 ‘앗쌀람 알라이쿰’이라고 말하는 것이 인맥구축의 출발점이다.

    서정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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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의 해외 생활 중 12년을 중동에서 보낸 국내 최고의 중동문제 전문가다. 카이로아메리칸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했고 옥스퍼드대에서 중동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카이로대사관 한국어 강사,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 등을 거쳐 현재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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