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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록스타다 워런 버핏
입력 : 2013.06.07 14: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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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버핏 회장이 주주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갈 때마다 주총장을 찾은 3만5000여명의 주주들은 ‘워런, 워런’을 외쳐댔다. 버핏 회장의 얼굴을 담기 위해 연신 스마트폰과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버핏 회장을 설명하는 수식어에 록스타라는 단어를 추가해야 하는 이유다. 주총장에서만큼 버핏 회장은 록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주주들이 백발의 노신사에 열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버핏 회장이 기업을 이끄는 총수가 아니라 교주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매년 5월 초 주총시즌이 돌아오면 전 세계에 퍼져있는 주주들이 미국 중서부지역에 위치한 오마하를 성지순례 하듯 찾아오는 등 버핏 회장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오마하에 모인 주주들에게 그는 거의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간 주주들에게 엄청난 주가차익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도 버크셔해서웨이 주가는 30% 이상 급등했다.
버핏 회장의 전방위적 마케팅 능력 버핏 회장은 마케팅의 귀재다. 4일 주주총회가 끝난 다음날인 5월 5일 5km 주주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주총기간 중 매년 많은 행사가 열리지만 단축마라톤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다. 버핏 회장이 직접 5km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출발 총성을 울리는 역할을 하는 한편 좋은 성적을 올린 참가자에게 직접 시상도 했다. 그런데 버핏 회장에게 단축 마라톤 행사는 단순히 재미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단축마라톤 대회를 연 배경에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소유하고 있는 신발회사 브룩스러닝(Brooks Running)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자리 잡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브룩스를 지난 2006년 사들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또 다른 버크셔해서웨이 자회사인 속옷메이커 프루트 오브 더 룸(Fruit of the Loom) 내 신발사업부문으로 있었지만 지난해 분사시켰다. 그리고 이번 주총을 맞아 주주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실시한 것. 브룩스 조깅화 안쪽에는 버핏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캐리커처 형식으로 그려져 있고 신발 옆에는 버크셔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라고 적혀 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주주총회 때 주주 할인판매 행사도 한다. 올해 주총 때 버핏 회장은 버크셔해서웨이 소유 보석회사 보셰임 매장에서 일일 판매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주주들과의 대화시간 때도 버핏 회장과 평생의 사업동지인 찰리 멍거 부회장은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코카콜라를 마시고 시스 캔디(See’s candy)를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출한다.
주총 때 신문 멀리 던지기 행사를 벌이는 것도 버핏 회장이 지방 신문사를 많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버핏 회장은 주총기간 내내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기업에 대한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쳐 주주들의 제품 충성도를 확 높인다. 대단한 마케팅 귀재다.
뉴노멀 주장 신경 쓰지 마라 올 들어 버핏 회장은 글로벌 경제에 대해 긍정론을 펼치고 있다. 일단 미국 경제에 대해 지난 2009년 경기가 바닥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올해도 이 같은 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주택가격 회복이 가계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미국 경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총장에서도 저성장·고실업률을 의미하는 뉴노멀 주장에 대해 아예 신경을 쓰지 말라고 주주들에게 조언했다. 버핏 회장은 세계 최대 채권운용펀드 핌코의 빌 그로스 창업자가 ‘미국 등 전 세계 경제가 저성장을 의미하는 뉴노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불안하다’는 주주 질문에 “어느 누구도 앞으로의 일을 자신 있게 예측할 수는 없다”며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버핏 회장은 “뉴노멀이 무엇을 의미하든지간에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강조, 그로스 창업자를 우회적으로 비꼬았다.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로존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유지했다. 유로존이나 유럽연합(EU)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유럽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지금이 오히려 유럽지역에서 저가매물을 인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지금은 주식시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회장은 최근 주식에 꽂혀 있다. 앞으로 증시가 더 높은 수준을 향해 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전망하고 있다. 다우지수가 심리적 저항선인 1만5000선을 뚫었다는 것 자체가 추가상승의 신호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시장이 쉼 없이 올랐기 때문에 조정은 올 것으로 본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시장의 단기적인 움직임에 과도한 관심을 쏟지 말라고 충고했다. 시장의 장기적인 상승흐름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주식의 시대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채권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냈다. 연준 양적완화로 채권이 인위적으로 높은 가격대에 있는 만큼 현시점에서 채권은 끔찍한(Terrible) 투자대상이라고 경고했다.
포스트 버핏 후계구도 버핏 회장은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83세다. 은퇴를 해도 한참 전에 했을 나이지만 아직도 현역이다. 실제 현장에서 지켜본 버핏 회장은 에너지가 넘쳤고 피부 나이는 6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에너지가 넘치는 버핏 회장은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당분간 버크셔해서웨이 지배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이유다.
사실 차기 CEO는 이미 결정된 상태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아직 모른다. 시장에서는 버크셔 재보험 사업을 총괄하는 애지트 제인과 철도사업을 관장하는 매튜 로즈 CEO 2파전으로 보고 있다. 또 버핏 회장은 자신이 물러난 뒤에는 장남인 하워드 버핏(58)을 비상근 회장 자리에 앉힐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하워드 버핏 자질론이 불거지고 있지만 버핏 회장의 생각은 확고하다. 주총장에서도 버핏 회장은 “하워드가 버크셔를 경영한다는 환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며 “봉급도 받지 않을 것이고 단지 버크셔해서웨이 기업문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하워드가 차기 CEO가 기업문화와 다른 방향으로 갈 때 이를 제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워드를 두둔하고 나섰다.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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