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ney]글로벌 자본 컨트롤타워 노르웨이 NBIM…700조원 ‘바이킹 머니’ 쥐락펴락

    입력 : 2013.02.04 13:56:29

  • 오슬로 중심부에 있는 노르웨이 중앙은행(NB). 이 건물 4층에 NBIM이 있다.
    오슬로 중심부에 있는 노르웨이 중앙은행(NB). 이 건물 4층에 NBIM이 있다.
    만일 당신에게 “노르웨이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연상되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수려한 ‘피오르’를 떠올릴 것이다.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먹음직스런 ‘연어’를,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뭉크의 명작 ‘절규’가 머릿속을 스쳐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여의도 증권가애서 이 질문을 던진다면 ‘노르웨이 연기금’을 꼽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거대자금이 우리나라 자본시장, 특히 채권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투자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덕분이다. 노르웨이가 갑작스레 주목 대상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노르웨이에서 흘러들어온 돈은 지난해 한국 채권시장에 순투자된 5조4460억원(11월 말 기준) 가운데 약 65%인 3조5330억원을 차지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노르웨이는 왜 머나먼 한국 자본시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나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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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1조원 중 60% 주식에 투자 기자는 노르웨이 자금의 실체를 찾아 최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를 방문했다. 노르웨이 연기금의 심장부는 센트럴오슬로 방크플라센 거리에 위치한 노르웨이 중앙은행이다. 우리로 치면 한국은행 본관에 해당하는 고즈넉한 건물 4층에 오르면 30여명의 펀드매니저와 직원들이 블룸버그 단말기를 주시하며 부지런히 무언가를 매매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조그마한 트레이딩 룸을 통해 전 세계 자본시장에 흘러가는 돈은 무려 3조7230억크로네(711조원)에 달한다. 이 중 60%가 넘는 2조2470억크로네(429조원)는 주식시장에 투자된다. 이곳이 바로 글로벌 자본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바이킹 머니의 컨트롤 타워다.

    NBIM(Norway Bank Investment Management)의 윙베 슬륑스타드 최고경영자(CEO)는 “오슬로 본사는 뉴욕 런던 싱가포르 상하이 4곳의 거점사무소를 통해 전 세계 주식의 1%를 보유 중”이라며 “우리 관심사는 세계의 부를 일정부문 소유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노르웨이 연기금을 이해하려면 독특한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노르웨이 연기금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이나 싱가포르 GIC 등 여타 큰손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연기금의 종잣돈은 노르웨이 해안에는 엄청난 양의 원유(세계 5위)와 천연가스(세계 3위)를 수출한 돈이다. 1998년 이전만 해도 노르웨이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한 돈을 채권에 묻어뒀다. 안전한 선진국 채권에 맡겨놓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투자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시도했다.

    “원유 가격 급등락에 비하면 주식은 오히려 안전한 편이다. 후대에 땅 속의 원유를 물려주는 것보다 금융자산으로 부를 키워 놓는 게 현명한 게 아니겠는가.”

    이때부터 노르웨이는 천연자원을 금융자산으로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국회는 관련법을 만들었다. 천연자원 수출대금의 소유권을 가진 재무부는 GPFG(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이라 이름 붙은 막대한 자금 관리를 노르웨이 중앙은행에 맡겼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다시 독립적인 운용사 NBIM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GPFG와 외환보유고를 합쳐 운용하도록 했다. NBIM은 CEO부터 직원까지 철저하게 민간 운용사처럼 움직인다. 재무부, 노르웨이 중앙은행, NBIM 등 3개 조직이 역할을 분명히 해 투명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거대 자금을 운용할 토대를 세워 놨다.

    NBIM이 운용하는 자금은 미래 노르웨이 국민의 노후생활을 위한 연금에 활용된다. GPFG가 사실상 국부펀드지만 연기금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바이킹의 부활? 공격적 투자로 유명 NBIM의 투자 성향은 대단히 공격적이다. 자본시장에선 그 옛날 바이킹이 부활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돈의 사용시기가 특정되지 않은 국부펀드 성격이 강한 탓도 있지만 30년 이상 장기투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정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설립 초기엔 주식 투자비중이 40%였지만 2007년엔 이 비율이 60%(주식 순시장가치 50~70% 사이 유지)까지 상향됐다. 자금의 거의 전부는 해외에 투자된다. “국내에 투자될 경우 노르웨이 경제를 과열(Overheating)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NBIM의 설명이다. NBIM의 주식투자 비중은 전 세계 국부펀드와 연기금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한 해 -23% 투자수익률로 노르웨이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손실을 입었지만 ‘주식비중 60%’라는 투자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 슬링스타드 대표는 “국내에서 큰 잡음이 있긴 했지만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NBIM은 오히려 국채비중을 더 줄이고 부동산에 5%까지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주식투자 범위도 모든 이머징 마켓과 스몰캡(중소형주)까지 확대했다.

    큰 논란에도 위험자산을 늘리는 NBIM의 논리는 단순했다. 슬링스타드 대표는 “땅속에 들어있는 원유는 배럴당 50달러, 때론 150달러를 오갈 만큼 변동이 크다”며 “원유 가격 변동에 비하면 주식시장이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높은 주식투자 비중을 유지하는 비결은 다름 아닌 장기투자 철학에서 나온다. NBIM은 자신들이 주식이 아니라 세계의 부에 투자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슬링스타드 대표는 “우리는 매일 매주 매달의 주가 움직임에 별 관심이 없다. 주가 움직임은 말 그대로 가격 움직임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대신 “우리의 관심사는 세계의 부를 일정 부문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주식 1%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생산능력 1%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 투자 철학 덕분에 NBIM의 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전 세계의 운용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국내 한 운용사 대표는 “1, 2년 동안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성과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위탁 운용사 입장에서는 시장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철학을 지켜가며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오슬로
    오슬로
    모든 정보 분기마다 공개, 투명성 세계 최고 CEO의 임기는 장기투자를 가능케 하는 또 다른 힘이다. 최고경영자(CEO)인 슬링스타드 대표는 민간 자산운용사에 근무하다 1998년 NBIM에 합류해 10년 동안 주식운용 최고책임자(CIO)를 맡았다. 2008년 1월에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이후 5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책임 투자를 하고 있다. 이전 CEO도 무려 10년 동안 근무했다. 슬링스타드 대표는 1998년 NBIM이 설립된 이후 두 번째 CEO다.

    NBIM의 투명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NBIM은 거의 모든 정보를 분기마다 공개한다. 단 한 주라도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명단은 홈페이지에서 바로 볼 수 있다. 투자된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여부도 공개돼 있다. 노르웨이 국민의 자산을 운용하는 만큼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투명성은 NBIM이 분기 단위의 투자수익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투자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최대 무기다.

    NBIM은 글로벌 상장사 7354개(2012년 3분기 기준)의 주주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회사마다 보유지분은 1%를 넘지 않는다. 광범위한 분산 투자로 사실상 인덱스 투자와 비슷한 효과를 내며 위험관리를 한다.

    1998년 이후 연 실질수익률은 2.82%. 부니 누리아니 수석 커뮤니케이션 이사는 “이는 물가상승률 세금 관리비용을 모두 제외한 실질수익률로 투자수익률(미국 달러 기준)로 보면 약 6% 정도”라고 설명했다. 목표수익률 4%(투자수익률로 보면 약 7%)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요 나라의 금리가 제로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만족할 만한 수치라는 게 NBIM의 설명이다. NBIM의 운용자산은 앞으로 10년 후면 두 배가 된다. 원유 가격이 높아지면 돈이 불어나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요즘 NBIM의 관심사는 아시아다. 그중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NBIM이 눈을 돌리고 있는 대표적인 투자처다. 지난해 한국 채권에 대한 투자는 시작에 불과하다.

    슬링스타드 대표는 “우리는 한국 경제와 기업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며 “향후 10년 동안 지금(100억달러)의 두 배 이상을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의 자본시장 움직임이 다르지만 3국을 하나로 놓고 보면 유망한 투자처”라며 동아시아 투자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슬로=황형규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9호(2013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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