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 3,500만 개 만든다” 인도 16조원 보조금 ‘통 큰 승부’

    입력 : 2025.07.02 11: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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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실업률이 17%를 넘긴 인도가 마침내 ‘돈줄’을 열었다. 모디 정부가 1조 루피, 우리 돈 약 16조 원을 들여 고용 창출에 나선다.

    정책의 이름은 ‘고용연계 인센티브(Employment-Linked Incentive, 이하 ELI)’ 제도다.

    단순한 취업 지원이 아니라, 채용과 고용 유지에 직접 보조금을 얹어주는 방식이다.

    취업 시장에선 기대와 회의가 교차하고 있지만, ‘일자리 없는 성장’의 오명을 씻기 위한 승부수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ELI 제도는 오는 2025년 8월부터 2년간 시행되며, 이 기간 동안 3,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가운데 약 1,920만 개는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신규 인력으로 예상된다.

    제도의 핵심은 취업한 근로자에게는 최대 1만 5천 루피(약 24만 원)의 첫 월급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고, 고용주에게는 해당 인력을 6개월 이상 고용할 경우 월 최대 3천 루피(약 4만 8천 원)를 2년간 보전해주는 구조다.

    제조업 분야에 한해 이 보조금은 추가로 2년 더 연장된다. 사실상 ‘정부가 급여를 나눠 내주는’ 셈이다.

    성장률 8%인데 실업률 17%…엇갈린 수치

    인도의 이번 정책은 단순히 경제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고공행진 중인 인도 경제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복잡하다. 최근 4년간 인도의 실질 GDP 성장률은 평균 8%를 넘겼다.

    그러나 고용지표는 그와 반대로 움직였다. 특히 도시 청년층의 실업률은 지난 5월 기준 17.9%에 달했고, 농촌 지역에서도 13.7%를 기록하며 전월보다 상승했다. ‘성장은 했는데,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를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라고 부른다. 인도 경제의 주도권이 IT, 금융, 서비스 등 자본집약적 산업에 집중된 탓에 대규모 노동력을 흡수하는 제조업과 건설업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더뎠다.

    여기에 인도의 노동력 중 약 45%가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도 구조적 제약 요인이다. 농업은 비교적 생산성이 낮고 임금 수준이 정체된 산업으로, 도시로 이동한 청년층에게 충분한 소득 대체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번 정책의 주요 타깃이 청년층이라는 점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총선에서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이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한 뒤, 일자리 문제는 모디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번 제도는 단순한 경기 부양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 전략으로도 해석되는 이유다.

    “채용하면 돈 준다”…넘어야 할 산도 많다

    정부는 ‘실제 고용’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보조금이 지급되려면 단기 채용이 아닌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단기 아르바이트나 허수 고용을 막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 설계가 깔끔하다고 해서 현장에서의 실행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첫 번째 관건은 도덕적 해이다. 이미 직원을 채용할 계획이 있었던 기업들이 별다른 추가 고용 없이 정부 보조금만 ‘얹어 받는’ 사례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두 번째는 공식 고용 시장의 확대 여부다. 현재 인도의 고용 구조는 여전히 비공식 부문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번 정책이 단순한 지원금에 그치지 않고, 사회보험 가입 확대나 노동시장 제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중요한 포인트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1조 루피는 인도 중앙정부 예산의 0.3%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미 재정적자 비율이 GDP의 5.1%에 달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복지 지출은 향후 경제 운용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보조금 정책이 일회성 단비로 끝나지 않으려면 중장기적인 일자리 생태계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질 좋은 일자리’다

    ELI가 불씨를 당기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3,500만 개라는 숫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진짜 중요한 건 그 일자리가 얼마나 ‘좋은’ 일자리냐는 것이다.

    단순조립이나 단기 생산직만 양산되는 구조라면, 고용 효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인도 내 일부 제조업체들은 이미 자동화·로봇 기술을 빠르게 도입 중이다. 인건비가 싸다는 이유로 인도로 몰려온 외국 제조업도 점점 더 기술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 ‘스킬 미스매치’도 심각한 문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 대졸자의 40%가 졸업 직후 실업 상태를 경험한다.

    대학 교육이 실제 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모디 정부가 별도로 추진 중인 ‘스킬 인디아 2.0’ 프로그램과의 연계가 절실한 이유다.

    여성 고용률 역시 인도 경제의 또 다른 ‘숨은 성장통’이다.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5%대에 머물고 있다.

    보육 지원, 유연근무제 같은 추가 정책 없이 보조금만으로는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이번 정책은 단순한 돈풀기가 아니다. 인도가 ‘양적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넘어갈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7년 7월, 정부가 약속한 대로 3,500만 개의 일자리가 실제로 만들어졌을지, 또 그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하고 생산적인 고용이었는지에 따라 모디 정부 3기의 성패는 물론, 인도 경제의 다음 10년도 함께 갈릴 것이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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