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미국 챗GPT 돌풍에 중국도 반격 나섰지만… 美 제재와 공산당 검열이 ‘AI굴기’ 발목
입력 : 2023.03.03 15:41:05
-
최근 AI 챗봇 ‘챗GPT’가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최대 기술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국이 이를 가만히 지켜볼 리 없다. 중국판 ‘챗GPT’로 미국과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각오다. 중국의 선두주자는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바이두다. 바이두는 3월 자체 AI 챗봇인 ‘어니봇(Ernie Bot)’을 출시할 계획이다. ‘Ernie’는 ‘지식 통합을 통한 향상된 표현(Enhanced Representation through Knowledge Integration)’의 약자다.
바이두는 어니봇의 기반인 AI 어니를 2019년 개발했으며 그동안 언어 이해와 언어·이미지 생성 등 작업 수행 능력을 점차 높여왔다고 설명했다. 챗GPT처럼 질문에 답을 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이미지도 인식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바이두가 어니봇을 일단 독립형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출시한 뒤 점진적으로 기존의 바이두 검색 엔진과 통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도 AI 챗봇 경쟁에 뛰어들었다. 아직 구체적인 출시일과 챗봇 이름 등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챗GPT’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AI 챗봇을 내부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바바는 막대한 고객 데이터와 쇼핑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AI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왔다.
이 외에도 동영상 플랫폼 ‘틱톡’ 운영사인 바이트댄스, 유명 게임사 넷이즈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과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들도 향후 다양한 AI 챗봇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중국 내에서는 AI 챗봇을 활용한 비즈니스 영역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영역이 관광이다. 중국 유명 관광지인 소림사는 최근 바이두와 기술 제휴를 맺고 사찰 운영과 관광 콘텐츠 제공에 ‘어니봇’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관광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AI와의 협업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 최대 투자은행인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CITIC·中信)가 어니봇을 경영 및 투자 활동에 활용하겠다고 밝혔고 전기차 회사인 ‘지두’도 어니봇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 같은 중국의 발 빠른 행보는 중국 당국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추진한 AI 발전 계획이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당국은 2017년 5월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030년까지 중국이 인공지능 분야 선도국으로 자리 잡겠다는 청사진이 담겼다. 5개월 뒤에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힘을 실어줬다. 그해 10월 열린 19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중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킬 핵심 기술로 인공지능을 꼽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주문했다. 이후 중국은 수도 베이징 등 핵심 지역에 대규모 AI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AI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지속적으로 단행해왔다. AI를 활용한 스마트시티 등 연관 산업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중국의 ‘AI굴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외부 변수로는 미국의 견제가 꼽힌다. 세계 최대 AI 강국인 미국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중국을 주저앉히려 하고 있다. 실제 많은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세계 각국의 AI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기술과 인재, 연구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은 데이터 처리 등에서 미국을 앞서면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는 모양새다. 인공지능 관련 논문 수에서는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서기도 했다.
미국이 반도체와 슈퍼컴퓨터에 대한 대중국 제재를 내놓은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 등에 필수적인 반도체와 슈퍼컴퓨터 분야에 타격을 가해 중국의 AI 기술 발전 속도를 크게 늦추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자국 최대 검색엔진업체 바이두가 AI 챗봇 ‘어니봇’을 다음 달 공개한다고 밝히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사진 연합뉴스> 바이두 이어 알리바바 대항마 곧 출시중국 내부적으로는 중국 정치 시스템이 AI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AI 스타트업 위안위(元語)가 공개한 대화형 서비스 ‘챗위안’의 사례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챗위안’은 2월 초 ‘중국판 챗GPT’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출시 사흘 만에 서비스가 중단됐다. 중국 당국이 ‘챗위안’ 서비스가 자국 법률과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왜 자국의 촉망받는 AI 서비스를 바로 문 닫게 했을까. ‘챗위안’이 출시되자 많은 중국인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개혁·개방·혁신을 중시하고 중국의 발전을 새로운 시대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라며 “그의 탁월한 리더십은 중국에 큰 발전을 가져왔고 국제사회의 찬사도 이끌었다”라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돌발 상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된 질문에서 나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규정해 달라’는 물음에 ‘챗위안’은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나토의 동진을 막기 위한 군사작전’이라는 러시아 측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데 챗위안이 이와 정반대의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중국 온라인을 통해 널리 확산되자 중국 당국은 규정 위반을 이유로 챗위안 서비스를 차단했고 앱스토어에서의 내려 받기도 바로 중단시켰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 공산당이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안 되는 답변을 하는 AI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중국 AI 기업들은 미국 제재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사상 검증까지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일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0호 (2023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