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中 대도시 봉쇄 후폭풍 시 주석 3연임 최대 변수로
입력 : 2022.05.31 16:03:02
-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된 지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전 세계 팬데믹은 큰 변화를 겪었다. 많은 국가들이 이제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모습은 다른 국가들과 사뭇 다르다. 코로나19 초기 우한 사태 당시 중국 정부가 꺼내들었던 제로코로나(칭링·淸零) 정책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식 방역은 한때 중국의 자랑이었다. 우한을 73일 동안 봉쇄한 끝에 코로나 청정 지역으로 만들었고 이후 서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할 때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경제도 코로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V자 반등에 성공했다. 우한 사태로 촉발된 코로나19 충격에 2020년 1분기 성장률은 -6.8%로 곤두박질쳤지만 이후 2분기 3.2%, 3분기 4.9%를 거쳐 4분기 6.5% 성장까지 가파른 오름세를 보여줬다. 이때부터 중국식 제로코로나 정책은 시진핑 주석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로코로나는 중국의 정치 시스템이 서방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제로코로나가 중국의 최대 딜레마이자 리스크로 전락한 것이다. 실제 제로코로나는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외신들도 “도시 봉쇄로 대표되는 무관용 제로코로나 정책이 올가을 장기집권 확정을 앞두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일단 밑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공산당의 제로코로나 정책을 묵묵히 따라왔던 시민들의 저항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제로코로나라는 명분으로 통제와 억압이 계속되자 누적된 분노가 서서히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5월 중순 발생했던 베이징대 학생들의 시위 사건은 성난 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봉쇄 조치가 정상적인 생활을 완전히 파괴했다”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대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중국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개인보호장비를 갖춘 방역 요원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봉쇄 조처가 내려진 주거지역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무관용 제로코로나 정책에 질린 많은 중국인들이 이민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4월 중국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이민’이라는 검색어의 조회 수는 전달보다 400배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호주 이민에 관심을 보이는 중국인들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 전문직 종사자는 “사람들의 자유와 안정을 침해하는 방역 정책의 가혹함으로 인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해외 이주를 검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고급인력들도 상하이 도시 봉쇄 사태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기를 망설이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중국인 엔지니어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졸업 후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기회를 찾으려고 한다”며 “중국에서는 국가 기구 아래 개인들이 너무나 무력하고 개인의 권리는 존중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중국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국 국민들은 일자리가 있고 발을 뻗고 누울 집이 있다면 공산당의 무소불위 권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공산당이 중국 중산층에 번영을 안겨주는 대가로 권력을 유지하는 구조인 셈이다. 공산당 지도부가 성장률, 실업률, 물가 등 경제 성적표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그런데 상하이 봉쇄 등이 본격화된 4월 이후부터 중국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추락했다. 중국 경제 3대 성장 엔진인 수출, 소비, 투자 지표가 모두 고꾸라지면서 2020년 초 우한 사태 당시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쉬젠궈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교수는 “올해 코로나19 확산 사태의 심각성은 (우한 사태 때인) 2020년의 10배 이상이다.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은 2020년 경제 성장률인 2.3% 달성하기도 어려워졌다”고 전망했다. 특히 공산당 지도부가 가장 중시하는 지표 중 하나인 실업률이 크게 치솟았다. 4월 도시 실업률은 6.1%를 기록해 중국 정부가 정한 관리 목표 상단(5.5%)을 크게 넘어섰다. 청년 실업률은 18.2%로 높아져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는데 경제 충격이 예상보다 크자 공산당 지도부도 당황한 모습”이라며 “시진핑 장기집권 확정을 앞둔 축제 분위기에 경제가 찬물을 끼얹은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중국 내에서도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을 계속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제로코로나로 인한 경제의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경제 충격 여파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경제와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시 주석 3연임 확정이라는 최대 정치 이벤트를 무사히 치러낼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일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1호 (2022년 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