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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체 M&A 나선 빅테크의 꿈 메타버스 플랫폼 선점… 그 중심은 게임
입력 : 2022.03.15 10: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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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신의 꽃이 인수합병(M&A)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게임업계에서 만개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빅테크 기업들의 이합집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혁신의 최전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게임업계 주도권을 쥐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현재 진행 중이다.
2022년, 새해를 맞은 뉴욕 증시에는 먹구름이 잔뜩 낀 반면 게임업계에서는 대형 인수합병 뉴스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며 장을 들썩이고 있다. 시작은 테이크투인터랙티브가 끊었다. 테이크투인터랙티브는 지난 1월 10일 모바일 게임업체 징가를 127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127억달러는 당시 기준 전 세계 게임업계 M&A 규모 중 최대였다.
테이크투인터랙티브는 문명, GTA 등 전 세계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콘솔 게임과 PC 게임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 개발사다. 지난 2013년 선보인 GTA V는 1억5500만 개 이상 팔린 비디오 게임 히트작이다. 그동안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했던 테이크투인터랙티브는 징가 인수를 통해 꾸준히 성장 중인 모바일 시장에서 더 이상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실제 시장조사기관 프로토콜에 따르면 전 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은 7.3% 성장한 반면 콘솔 게임 시장은 6.6% 하락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거래액 기준 게임업계 M&A 신기록을 세운 이번 합병은 일주일 만에 그 왕좌를 빼앗겼다.
콘솔 게임기면서 MS의 게임 플랫폼인 엑스박스(XBOX)를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국내 게이머라면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는 게임들을 보유한 블리자드. 게엄업계 두 공룡의 만남으로도 전 세계 게이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인수로 2가지 기록을 갈아치웠다. 첫 번째로, 인수액 687억달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추진해온 모든 인수합병 중 최대 규모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6년 링크트인을 281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번 인수액은 그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에 얼마나 큰마음을 먹고 블리자드를 인수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인 셈이다. 폴아웃 시리즈로 유명한 제니맥스 미디어 역시 2020년 81억달러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됐는데, 그 규모는 8분의 1 수준이다.
▶테이크투 역시 바로 전주 징가 15조원 들여 인수 두 번째는 바로 앞서 언급한 대로 게임업계 역대 최대 규모 M&A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테이크투는 징가 주식을 9.86달러에 인수했는데 프리미엄이 64% 정도 붙었다. 인수사들이 피인수사들의 가치를 매우 높게 인정했다는 의미다.
기존에 약했던 모바일 게임 분야의 보강을 위해 모바일 게임사 징가를 인수한 테이크투인터랙티브와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동안 한 끗이 부족했던 콘텐츠 지식재산권(IP)에 사활을 걸고 블리자드를 인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 세계 게임업체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시장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뉴주(newzoo)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기준 매출액 1위 업체는 중국의 텐센트다. 이어 플레이스테이션의 소니, 앱스토어의 최상위 포식자 애플 순, 마이크로소프트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 하나 만들어본 적 없는 애플이 3위인 사실도 놀랍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지배력이 이 정도였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7위에 액티비전블리자드가 위치하고 있다. 이번 인수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숨에 전 세계 3위 게임업체로 발돋움했다. 북미 기업 중엔 단연 1위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게임은 오늘날 가장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 분야이며,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크래프트를 필두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 등 블리자드사가 보유한 게임 IP는 애니메이션업계의 디즈니와 비교되곤 한다. 과거 디즈니가 21세기 폭스사를 약 713억달러를 주고 인수했는데, 이번 인수합병 역시 금액이나, 분위기 측면에서 곧잘 비교되는 분위기다. 특히 게임계의 IP 부자 블리자드를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 콘텐츠 IP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진 상태다.
디아블로뿐 아니라 액티비전의 콜오브듀티 시리즈와 캔디크러쉬사가 등 콘솔·모바일 게임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인기 게임을 보유한 블리자드사와의 합병은 향후 어벤저스급 컬래버가 가능하다는 기대감까지 나오게 한다. 기존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유한 폴아웃, 퀘이크, 듐 시리즈와 블리자드 IP 간의 컬래버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게이머들의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유명한 게임들을 품은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비기가 있다. 바로 ‘엑스박스 게임패스’다. 블리자드 인수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얻게 될 두 번째 이득, 바로 게임 플랫폼 구축의 완료다.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구독형 게임 플랫폼이다. 한국 기준 7900원을 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게임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쉽게 말해 게임판 넷플릭스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제공되니 이용 기기가 고사양일 필요도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바로 이 게임패스 플랫폼에 향후 디아블로 등 주요 액티비전블리자드의 게임을 모조리 올릴 예정이다. 아마 독점적으로 해당 플랫폼에만 제공할 확률도 상당하다. 현재 게임패스의 구독자 수는 무려 2500만 명. 절대적 숫자뿐 아니라 그 증가 속도도 어마어마하다. 이번에 블리자드의 합류로 이러한 구독자 수 증가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엑스박스 게임패스로 클라우딩 게임 플랫폼을 장악한다면, 그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시장 지배력이 약한 콘솔 게임 분야다. 아시다시피 콘솔 게임업계 1위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다. 시장 지배력이 70%가 넘는다. 엑스박스는 이어 약 20% 안팎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선 소니를 뛰어넘어야 하는 큰 목표가 있다. 이번 블리자드와의 시너지 역시 콘솔 게임에서도 발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C 게임 역시 블리자드가 가장 잘하는 분야 중 하나다. 이렇다 보니 이번 인수가 바로, 모든 게임 플랫폼 경쟁력 강화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는 것이다.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 기술은 하드웨어(메타, 애플)와 소프트웨어(게임, 영상)의 두 축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메타는 퀘스트 시리즈로 현재 가상현실(VR) 기기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애플은 내년 출시가 점쳐지는 애플VR(가칭) 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콘텐츠 분야에선 어떤 산업, 섹터에서 메타버스가 활성화될지를 놓고 다양한 콘텐츠들이 A/B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게임 분야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메타버스 섹터로 분류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인수를 통해 향후 더욱 차별화되는 게임 콘텐츠와, 메타버스향 기술을 확보해 해당 분야의 넘버원이 되겠단 포부를 당당하게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지 그 결과에 많은 눈이 쏠리고 있다. 결국 미래 먹거리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올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형 딜은 경쟁사 소니를 자극했다. 콘솔 게임업계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하고 있는 압도적 1위 소니는 엑스박스의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쫓아가려는 자보다 쫓기는 자의 마음이 더욱 불안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니는 이에 질세라 맞대응 M&A에 나섰다. 바로 미국 게임 개발사 번지를 36억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대표작 헤일로를 보유한 번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인수 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자회사 엑스박스를 대표하는 게임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랬던 번지가 결국 돌고 돌아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경쟁사 소니의 품에 안긴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프리미엄 구독 플랫폼 ‘엑스클라우드’.
번지는 인수 이후에도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독립 자회사로 운영된다. 소니 산하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게임 개발과 출시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날 번지 측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독립성을 지켜주면서 번지를 조건 없이 지원하고 발전을 가속화해줄 파트너를 찾았다”고 밝혔다. 소니가 4조원대 거액을 들여 번지를 인수한 것은 지난 1월 중순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7년 월 10달러의 구독료를 내면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는 구독형 서비스 ‘게임 패스’를 출시했으며, 현재 구독자가 25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700만 명의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 구독자를 보유한 소니 또한 게임사 인수로 콘텐츠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앤드루 우어크비츠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 해 동안 인재와 개발자를 위한 군비 경쟁에 빠져 있다”며 “콘솔 시장의 사이클과 거대한 구독 서비스의 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인자라는 타이틀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등 콘솔 플랫폼 회사들은 더 많은 스튜디오를 갖추길 원할 것”이라며 “애플, 메타, 알파벳도 기꺼이 게임 회사의 구매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가 발표된 18일, 흥미로운 뉴스가 하나 더 나왔다. 바로 미국 내 독과점 파괴자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합병 독점금지법안의 가이드라인을 재작성한다고 밝힌 것. 다분히 미묘한 타이밍에 발표된 해당 뉴스는 충분히 마이크로소프트를 겨냥한 뉘앙스를 물씬 풍기고 있다.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FTC는 향후 인수합병을 통해 독점 기업이 되는 선례에 대해 면밀히 따져보고 평가하겠다는 방침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 인수를 통해 게임업계 1위도 2위도 아닌 3위가 된다는 점은 다행(?)일 수 있겠단 생각마저 드는 일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룡 페이스북 역시 FTC와의 혈투 끝에 피바람이 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의 간담도 서늘해졌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아 보인다. 이번 인수와 관련해, FTC의 움직임 역시 충분히 눈여겨볼 만하다는 뜻이다.
앞으로 이러한 규제기관의 대형 M&A 태클은 보다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가 시장 지배적 독점 기업과의 전쟁에 나선 만큼 실제 총칼을 들고 전쟁에 나선 FTC 입장에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추동훈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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