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식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탈탄소 시대’ 국제사회 눈총에도 일본이 석탄발전 포기 않는 이유

    입력 : 2021.12.28 16:07:39

  • ‘아시아에서 화력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석탄과 암모니아를 섞어 쓰는 방식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술을 아시아에 적극 제공하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1년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이 같은 뜻을 표명했다. 이 입장을 분석해 보면, 탈(脫)탄소를 위해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석탄발전 폐지’ 계획에 일단은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실제 일본은 COP26에서 영국·캐나다·폴란드 등 40여 개국이 지지한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지안에 일본은 미국·중국 등과 함께 동참하지 않았다. 물론 일본의 이런 태도에 대해 국제사회의 시선은 따갑다. 비정부기구(NGO)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탈탄소 대책에서 불명예의 의미인 ‘화석상’에 일본을 2년 연속 선정하기도 했다.

    일본 히로시마 오사키카미지마의 ‘오사키쿨젠 프로젝트 실증단지’.
    일본 히로시마 오사키카미지마의 ‘오사키쿨젠 프로젝트 실증단지’.
    일본은 최근 수립한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3년에 비해 46%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2030년 전력원을 ▲재생에너지 36~38% ▲원자력 20~22% ▲액화천연가스(LNG) 20% ▲석탄 19% ▲수소·암모니아 1% 등으로 가져가겠다는 계획표를 내놓았다. 2019년 석탄화력 의존도가 32%였던 것을 감안하면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히 주요 전력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력원에서 석탄화력 비중은 영국이 2%, 프랑스가 1%다. 프랑스는 2022년께, 영국은 2024년께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할 계획이다. 한국은 석탄화력 비중을 2030년 21.8%까지 줄이고 2050년 폐지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일본은 2050년 탄소중립(탄소 실질배출 제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지만 아직 석탄발전 폐지에 대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COP26에서 귀국한 후에도 ‘2030년 전력원에서 석탄화력의 비중을 19%로 가져가는 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진행해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석탄화력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일본의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석탄’을 평가한 것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석탄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지만 조달에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고 가격이 낮으며 보관도 쉽다. 공급안정성이나 경제성에서 뛰어나다. 재생에너지를 도입하는 중에 조정 전력원으로 역할이 기대된다’라고 평가했다. 최근 석탄값이 오르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경제성이 높고 중동 등에 치우친 석유 등에 비해 ‘경제안보’ 차원에서도 리스크가 적다는 게 일본의 판단인 셈이다. 또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과 제조업 중심인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도 안정적 전력공급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자민당 총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자민당 총재
    빠르게 늘지 않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도 일본이 석탄화력발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로 거론된다. 전력원에서 원전을 비중 있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동되는 원전 숫자가 기대에 못 미치다보니 석탄화력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이 보유 중인 원전 33기 중 10기가 가동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원전이 전력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에 그친다. 일본은 2021년 작성한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전력원에서 원전 비중을 20~22%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서는 원전 27기 정도가 가동돼야 한다는 추산이 나오는데 현재 10기가 작동되는 것을 감안하면 갈 길이 멀다.

    일본의 원전 고민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출발한다. 2011년까지 일본에서 가동되던 원전은 54기로 전력의 30%가량을 책임졌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점차적으로 가동을 멈춰 2012년 5월 ‘가동 원전 제로(0)’를 맞게 된다. 원전 재가동을 위해서는 안전대책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고 이런 추가 대책에 원전 1기당 수천억엔이 소요되는 등 비용 부담이 커졌다. 이에 따라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폐로하고 현재 33기가 남아 있다. 이 중 재가동되고 있는 건 10기다. 일본 정부로선 원전 비중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멈춰 선 원전 재가동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지만, 그 과도기에서는 석탄화력발전을 포기하기 쉽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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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분간 석탄화력을 계속 활용하겠다는 입장인 일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 석탄화력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술이다. 석탄화력을 계속 활용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도록 업그레이드해야 탈탄소 목표에 접근할 수 있고 국제적 비판도 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석탄화력을 개선해 보겠다는 대표적 실증실험 중 하나가 히로시마 앞바다인 세토나이카이에 위치한 섬 오사키카미지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오사키 쿨젠 프로젝트’다. 이 실증실험은 일본 경제산업성과 국립연구법인인 신에너지·산업종합기술개발기구(NEDO)의 지원을 받고 있다. J파워와 주고쿠전력이 설립한 회사인 오사키 쿨젠이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이 프로젝트는 ▲1단계 석탄 가스화 복합발전(IGCC) ▲2단계 IGCC와 이산화탄소 분리·회수 ▲3단계 연료전지를 활용한 발전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오사키 쿨젠의 IGCC는 석탄을 직접 연소시키는 일반 화력발전과 달리 고온과 소량의 산소로 석탄을 쪄내 일산화탄소·수소 등이 주성분인 연료가스(석탄가스)를 만드는 방식이 적용된다. 이 연료가스의 열은 보일러를 통해 회수돼 발전에 활용된다. 또 연료가스에서 불순물과 유황분 등을 제거한 후 이를 연소시켜 가스터빈을 돌리는 방식으로도 발전이 이뤄진다. 열·가스를 모두 발전에 활용해 발전 효율을 높인 셈이다. IGCC로 발전 효율을 높이는 것을 통해 결과적으로 일반 석탄화력발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15% 정도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9년부터 IGCC와 이산화탄소를 분리·회수·재활용하는 2단계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IGCC를 진행하면서 연료가스의 일부를 ‘이산화탄소 분리·회수 설비’를 통해 이산화탄소와 수소 농도가 높은 가스로 분리해낸다. 이때 수소 농도가 높은 가스는 발전에 활용하게 되고 이산화탄소는 일부 회수해 콘크리트·시멘트, 화학제품, 농업 등에 재활용하는 방식의 실험이 진행된다. 3단계 실증실험은 IGCC에 더해 연료전지까지 발전에 활용해 효율을 더욱 높이는 것으로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IGCC와 연료전지를 조합해 발전 효율을 높여 기존 석탄화력발전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3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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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연구하는 또 하나의 분야가 석탄과 암모니아를 혼합해 화력발전에 쓰는 방식이다. 암모니아는 연소 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석탄화력발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도쿄전력과 추부발전이 절반씩 출자해 만든 JERA는 NEDO 등의 지원으로 2021년 6월 아이치현 헤키난화력발전소 5호기에서 석탄에 암모니아를 소량 혼합해 발전에 사용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2025년 3월까지 4년 여간 진행되는데 2024년에는 암모니아의 비중을 20%까지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석탄화력을 고집하는 정부에 대해 ‘세계적인 흐름에서 뒤처져 산업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럽연합이 탈탄소 대책이 미진한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국경탄소세’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게 도입되면 일본의 자동차나 철강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럽에 비해 석탄화력 등의 비중이 높다보니 발전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도 상대적으로 많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에 따르면 1㎾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일본이 0.45㎏으로 영국의 2.1배에 달한다.

    [김규식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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