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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불꺼진 공장, 치솟는 원자재… 중국에 무슨 일이?
입력 : 2021.10.26 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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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가 ‘세계의 공장’이다. 세계로 수출되는 물건을 생산하는 중국 전역의 공장들은 중국 경제를 든든하게 받치는 기둥이다. 중국의 서비스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제조업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해도 중국 제조업의 GDP 대비 비중은 여전히 30%에 육박한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런 중국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 폭등, 수출 둔화 가능성 등 악재가 계속 쌓이는 가운데 사상 최악의 전력난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외신들은 “헝다발 유동성 위기보다 중국의 전력난이 더 큰 위기”라며 전력난이 장기화되면 중국 제조업은 물론 중국 경제 전체가 휘청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중국 제조업의 위기를 근거로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의 전력난이 어떤 상황이기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9월 중순부터 광둥성, 저장성, 장쑤성,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 등 최소 중국의 20개 성(省)급 행정구역에서 산업용 전기 공급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제철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일부 산업은 공장 문을 아예 닫게 하거나 공장을 가동하더라도 야간에만 허용하는 등 사실상 전기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난으로 중국 내 상당수 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애플과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들도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테슬라에 부품을 공급하는 이성정밀과 아이폰에 스피커를 공급하는 콘크래프트의 중국 공장이 전력난으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
중국 장쑤성 난닝에 있는 한 석탄 화력 발전소에서 연기가 배출되고 있는 모습.
▶정부 통제로 판매가엔 높아진 비용 반영 못 해 중국 9월 제조업 PMI도 경기 위축으로 전환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해외에서 베이징을 찾는 선수단과 관람객에게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숨기기 위해 베이징 인근에 있는 모든 공장 문을 닫게 하는 파격 조치를 취했다.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2008년과 유사한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 공기 질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력난이라는 악재까지 터지면서 중국 당국이 베이징 인근 공장 셧다운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전력난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 제조업은 물론 중국 경제는 큰 내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용 전기 공급 제한이 이뤄지고 있는 20개 지역은 생산 공장들이 밀집돼 있어 중국 전체 GDP의 66%를 담당하고 있다. 이 지역들 공장의 불이 꺼지면 중국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구조인 셈이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도 중국 제조업을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 석탄,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국의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작년 동월 대비 10.7%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률은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6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중국의 생산자물가가 급등하면서 제조기업들의 원가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오른 비용을 제품 가격에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이날 PPI와 함께 발표된 9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7%에 그쳤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데다 정부의 통제로 인해 소비자 가격은 상승곡선을 그리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PPI와 CPI의 격차는 10%포인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맥쿼리그룹의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래리 후는 “생산자물가지수와 소비자물가지수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으면 제조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한 남성이 정전으로 캄캄해진 식당에서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하며 식사를 하고 있다. 최근 중국 21개 성에서 전력 공급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연장선에서 중국 제조업 경기도 지난해 초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위축 국면에 진입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달의 50.1보다 낮은 49.6을 기록했다. 기업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제조업 PMI는 관련 분야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50을 기준선으로 해 이보다 위에 있으면 경기 확장을, 이보다 밑에 있으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중국의 제조업 PMI가 50 밑으로 떨어져 경기 위축 구간으로 밀린 것은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극심했던 작년 2월(35.7) 이후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제조업 PMI를 구성하는 생산지수와 신규수주지수, 원자재재고지수, 종업원지수, 물류배송지수 모두 임계점인 50 이하를 기록했다.
왕즈강 중국재정과학원 연구원은 “연간 경제성장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은 4분기에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며 “재정 지원 정책과 투자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손일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4호 (2021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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