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간 철군 후 미·중 갈등 더 격화되는 남중국해

    입력 : 2021.09.29 15:33:55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손을 뗀 이후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이 더 격화되고 있다. 그동안 미중은 남중국해에서 직접적 맞대응을 자제해왔지만, 미군의 아프간 철군이 끝난 후 상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헤게모니 구축에 나서고 있고, 중국은 자신의 앞마당으로 밀고 들어오는 미국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양국의 고조되는 갈등은 언제 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오른쪽)이 자국을 방문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만나 포즈를 취하는 모습.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오른쪽)이 자국을 방문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만나 포즈를 취하는 모습.
    ▶아프간 혼란 중 베트남 방문한 미 부통령 달라진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행보는 지난 8월 25일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것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때는 아프간에서 미군의 철수가 막바지에 달하면서 아프간 내 혼란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2인자는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3박 4일 일정으로 동남아 순방에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더 주목할 부분은 해리스 미 부통령이 방문 목적지로 삼은 곳 중 한 곳이 베트남이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미 부통령으로서는 첫 방문이다.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 미 부통령의 베트남 방문 목적은 뚜렷했다. 미국의 남중국해 행보에 베트남의 공조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남에서 이를 여과 없이 표현했다. 그는 푹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준수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한편 과도한 영유권 주장과 위협에 대처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리스 부통령은 베트남이 남중국해에서 안보상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미국이 추가로 해안경비정을 지원하는 동시에 양국 관계를 ‘포괄적’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확대하자는 당근도 제시했다.

    이 같은 미국의 적극적인 베트남 행보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베트남이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는 것이 한몫했다는 데 이론이 없다.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과 많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지만, 남중국해 문제에서만은 절대 물러섬이 없다. 아세안 분쟁 당사자 중 가장 거칠게 중국에 대응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런 베트남이 미국과 남중국해에서 적극적 공조를 한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
    미국의 움직임은 이 같은 외교적 행보뿐만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도 더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영역을 거침없이 헤집고 다닌다. 9월 8일 미사일 구축함 벤포드호를 앞세워 스프래틀리(중국명 난사) 군도의 미스치프 암초(중국명 메이지자오) 인근 해역을 항해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스치프 암초는 중국이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인공섬으로 이곳을 미 해군이 지나갔다는 것은 그 의도가 분명하다. 중국이 주장하는 영유권은 미국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직후에는 미 해군 소속 알레이버크급 유도미사일 구축함인 ‘키드’호와 해안경비대 소속 군함용 소정 ‘먼로’호가 대만해협을 통과하기도 했다. 미군은 거의 매달 대만해협을 통과하며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이 같은 미 해군의 움직임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중국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군사적 도발이 계속되자 9월 초 남중국해 유역에 진입하는 외국선박에 대한 사전신고제를 시행한다고 경고한 바 있는데, 미 해군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벤포드호의 미스치프 항해 당시도 사전 신고는 물론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에서 영국 전투기 F-35B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에서 영국 전투기 F-35B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실탄 쏘며 무력 맞대응 미국의 남중국해 행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만만치 않다. 미 해군의 움직임과 시차를 두고 실탄사격을 하는가 하면, 미 함정이 대만해협을 통과했을 당시 같은 날 함정과 전투기를 동중국해에 띄우는 등 강경 일변도다. 미국이 더 자극한다면 실제 전투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사실상 날린 셈이다.

    동시에 중국의 외교적 행보도 본격화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해리스 미 부통령이 다녀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베트남을 찾았다. 왕이 부장은 9월 10일 베트남을 찾아 “남중국해에서 어렵게 얻는 평화와 안정 국면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면서 “역외세력의 개입과 이간질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존 협력체제를 유지하면서 실무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왕 부장의 베트남 방문이 미국의 의도를 차단하기 위함임은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은 아세안에게 과감한 경제적 유인책도 제시하며 아세안이 친미로 흐르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지난 9월 13일 중국·아세안 경제장관회의 및 아세안+3(한중일) 경제장관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아세안은 중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자 일대일로 중점지역이고 양자 경제관계는 이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활력 있는 협력의 모범”이라면서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에서 양자 간 경제무역협력이 더욱 깊고 혁신적으로 발전하도록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역 경제 일체화를 언급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무역 투자, 녹색경제, 디지털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상황은 동남아 국가들에 나쁘지 않다. 미중의 적극적 아세안 사로잡기로 인해 생길 반사이익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의 르 훙 히엡 연구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난 미국이 앞으로 동남아를 포함해 자국 이익에 더 중요한 다른 지역과 자원들에 전략적 관심을 집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결국 아세안은 그 이득을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서 더 많은 고위 관리가 동남아 국가들을 찾을 것”이라며 “역내 국가들은 자국과 미국 관계,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아세안 각국이 미중 간 뚜렷한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것은 감내해야 될 부분이다. 미중의 고위급 인사가 자국을 잇달아 방문한 베트남은 벌써부터 이 같은 상황에 놓이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베트남의 하노이를 방문해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를 만나서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베트남의 하노이를 방문해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를 만나서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뚜렷해지는 강대국 간 대결 구도 한편 아프간 철군 이후 단행되고 있는 미국의 전략적 행보는 새로운 글로벌 대립 구도를 낳고 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강대국 간 편먹기’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전례 없는 밀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군이 떠나간 아프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그 빈자리를 메우면서 본격화된 밀월이 다양한 분야에서 까지 이뤄지고 있다. 양국은 최근 원전 분야에서까지 협력을 이뤄냈다. 중국 기업이 처음으로 러시아 부유식 원전 건설 계약을 따낸 것이다.

    남중국해에서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열강들의 움직임이 뚜렷하다. 9월 초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 전단이 남중국해를 지날 때에는 마치 무력시위를 하듯 F-35B 전투기를 계속 띄웠는데, 당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함이 퀸 엘리자베스와 가까운 거리에서 항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과 영국이 연합작전 훈련을 벌였다는 해석을 내놨다.

    또 미국과 영국은 호주와 오커스(AUKUS)라는 새로운 안보동맹을 발족시키며, 군사기술을 지원하기로 했다. 양국이 호주에게 지원하겠다는 군사기술은 간단치가 않다. 바로 핵추진 잠수함이다. 미영 양국이 호주에 핵 잠수함 기술을 전수키로 한 것은 의도가 분명하다. 미영이 구축하는 중국과의 동아시아 대립전선에서 호주를 한 축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의 동남아 방한이 끝난 후에는 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의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기도 했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현 갈등 국면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펼칠 것인가에 달려 있다”면서 “미국이 남중국해에 집중할수록 갈등 강도는 더 세질 것이고, 이로 인해 국제 정세는 당분간 상당히 불안해질 가능성이 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홍완석 교수는 “미국이 떠난 아프간에서 중러가 밀월관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남중국해에서 미중의 갈등이 더 심해지는 현상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밀접한 역학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미국이 탈레반 카드로 중국몽을 저지하려는 이이제이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이를 “미국이 아프간이라는 수렁을 빠져나오는 대신 중국, 러시아를 아프간이란 늪에 빠트리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들이 지정학적 요충지를 그냥 포기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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