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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美 헤지펀드가 비트코인 투자 나선 까닭은
입력 : 2021.09.29 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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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콘퍼런스인가? 가상화폐 콘퍼런스인가?’
지난 9월 13일부터 3일간 뉴욕 맨해튼에서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투자 콘퍼런스가 열렸다. 대체투자 분야에 주력해온 헤지펀드인 스카이브리지캐피털이 주최한 SALT(SkyBridge Alternatives Conference)라는 행사다. 헤지펀드 업계 세계 최대 콘퍼런스로 꼽히는 이 행사는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출장과 이동이 어려워지자 처음으로 뉴욕에서 개최됐다.
과거에도 이 행사에 참석해본 기자는 달라진 콘텐츠에 깜짝 놀랐다.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이 모두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관련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코엑스에 해당하는 재비츠(Javits)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창업자 겸 회장,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업자 겸 CEO 등 월가의 대가들과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CEO 등 스타급 CEO, 개인 재산이 수십억달러 이상인 창업가·투자자, 헤지펀드·사모펀드 매니저, 기관투자자 등 2000여 명이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행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뉴욕에서 숱하게 열렸지만 이번 행사는 특별했다. 약 20개월 만에 열린 첫 대규모 투자 콘퍼런스이다보니 참석자들은 마치 이산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서로를 반겼다. 300여 명이 들어가는 오찬장에는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팬데믹 이후 뉴욕에서 처음으로 열린 헤지펀드 콘퍼런스인 SALT 오찬 행사장 모습. 300개의 좌석이 꽉 차서 식사를 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20개월간의 ‘만남의 공백’ 끝에 이들이 들고 나온 화두는 가상화폐, 블록체인이었다. ‘줌’에 의존한 세월을 보내며 디지털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절절하게 경험을 하고 나온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스카이브리지캐피털 창업자인 앤서니 스카라무치 CEO는 매년 SALT 행사를 주최하며 정·관계, 투자업계에 막강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 공보실장을 짧게 지낸 바 있는 스카라무치 CEO는 뼛속까지 공화당원이지만, 놀랍게도 이날 행사의 첫 손님은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로 선발된 에릭 애덤스였다. 뉴욕의 부활을 알리는 행사였기 때문에 차기 뉴욕시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에릭 애덤스까지 나선 것이다.
이번 행사가 열린 뉴욕 재비츠 컨벤션센터는 한국으로 치면 코엑스 같은 대규모 컨벤션 시설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 임시 병상으로, 올해는 백신 집단 접종소가 됐던 곳이다. 이런 아픔을 딛고 일어선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몰린 곳은 가상화폐·블록체인 관련 투자 세션이었다. 헤지펀드 콘퍼런스가 아니라 가상화폐 콘퍼런스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월가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행사였다.
▶팬데믹 시대 가상화폐 생태계 확산에 주목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더 주목도가 높아진 가상화폐 시장에 미국 헤지펀드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는 분위기다.
이번 행사 주최자인 스카이브리지캐피털은 가상화폐 투자 플랫폼인 NAX와 함께 2억5000만달러(약 2조9400억원) 규모 펀드(UNLOX)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펀드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운용자산이 93억달러(약 10조9300억원)인 스카이브리지캐피털은 헤지펀드 중에 가장 빨리 비트코인 투자에 나섰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비트코인 투자에 나섰으며, 지난해에 1억달러를 투자해 1억7500만달러 수익을 냈다.
스카이브리지캐피털은 올해 들어 투자를 계속 늘려 비트코인을 약 7억달러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더리움에도 상당한 투자를 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SALT 콘퍼런스에 참석해 토론 중인 갤럭시 디지털 창업자 마이클 노보그라츠
브리거 CEO는 “비트코인과 경쟁하고 있는 3만 개의 자산 중에 99.85%는 0으로 갈 것으로 본다”며 “비트코인은 놀라울 정도의 복원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투자 대상에 ‘적응’ 중이며, 비트코인만이 탈중앙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동부(월가)가 서부(블록체인)의 혁신에 ‘적응(adaptation)’해 나가고 있는 시기라고 평가했다.
‘돈나무 언니’로 불리는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CEO도 이번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우드 CEO는 비트코인뿐 아니라 투자 대상 선정에서 5년 후를 기약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은 5년 내 현재보다 10배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드 CEO는 “기업과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비중을 5%로 늘릴 경우 비트코인 가격은 최소 10배 이상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 당시 비트코인이 개당 4만5000달러 선에서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45만~50만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드 CEO는 “가상자산은 NFT(대체불가토큰)와 디파이(탈중앙화금융) 등으로 기존 금융산업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특히 “NFT를 처음 접하고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며 “NFT의 폭발적인 성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보관 지갑인 XAPO를 창업해 조단위 부자가 된 웬스 카사레스
가상화폐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에 우드 CEO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6:4 비율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으로 ‘억만장자’ 가상화폐 투자자이며 가상화폐 투자회사 갤럭시 디지털(Galaxy Digital)의 창업자인 마이클 노보그라츠(Michael Novogratz)는 가는 곳마다 인파 속에 휩싸였다. 노보그라츠 CEO는 개인 재산만 72억5000만달러(약 8조5200억원)로 평가받는 거부다. 그는 ‘디지털 자산과 금융혁신의 미래’ 세션에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언젠가 금의 시가총액과 비슷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의 현재 시가총액은 9000억달러로 금 시가총액의 9% 수준이지만 점점 더 가격이 오르면서 금 시총 대비 16%, 25% 이렇게 오르다가 100%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노보그라츠 CEO는 “4년, 5년, 6년 후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50만달러로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의 시가총액이 현재 수준에서 머무르고, 비트코인 가격이 이 정도로 오를 경우 두 투자자산의 시가총액은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캐시 우드 CEO가 전망한 시세와 같은 수준이다. 그는 “수개월 전부터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다. 그런 에너지가 있다”며 “가상화폐 혁명은 젊은이들로부터 일어났고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신용카드 회사가 이 시장에 뛰어드는 등 가상화폐 시장 생태계의 참여자들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SALT 콘퍼런스에 직접 참석해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 중인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CEO
카사레스 CEO는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20년이 넘은 지금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는 답이 나와 있다”고 강조했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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