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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테이퍼링’ 안개 걷히는 美 증시… ESG 등 미래형 투자 주목
입력 : 2021.08.27 16: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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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퍼링(Tapering)’.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가 정상화의 길로 돌아오면서 주식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온 단어다.
기자는 미국에 살며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미용사가 ‘테이퍼링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이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미용사가 주식 투자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테이퍼링이라는 단어 뜻은 끝이 갈수록 뾰족해지거나 가늘어진다는 뜻이다. 알고 보니 미용실에서 쓰인 테이퍼링은 구레나룻 끝을 어떻게 다듬을지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테이퍼링에 ‘이런 뜻도 있었구나’라고 나중에 깨달았지만 증시에서 테이퍼링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기회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팬데믹 이후 전례 없는 유동성을 시장에 퍼부어왔다.
블랙록은 기후 문제를 외면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ESG 투자방침을 맨 앞에 내걸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주식 시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이기도 하다. 이 테이퍼링이 언제 어떤 규모로 시작될지는 주식 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초미의 관심사였다.
기자가 지켜본 바로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극도로 신중한 용어를 써가며 테이퍼링이 줄 충격에 대비해왔다. 어떻게든 연착륙시키고자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던 것 같다.
그는 지난 6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 해당) 회의 후에 “테이퍼링 문제를 논의할지에 대한 의견(‘Talking about Talking about’ Meeting)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7월 FOMC 이후에는 “앞으로 열릴 회의들에서 진전 정도를 계속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우 완곡한 어법이지만 시장에 테이퍼링 시작이 머지않았음을 예고하며 ‘대비하라’는 힌트를 준 것이다. 3주 뒤에 공개된 7월 FOMC 회의 의사록에는 더 진전된 내용이 나왔다. 연준이 공개한 7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 FOMC 위원들은 “경제가 광범위하게 회복할 경우 연내 자산 매입 속도를 줄이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또 “경제가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에 다다랐고, 일자리 증가세는 거의 충족됐다”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나스닥 사이트 모습
테이퍼링은 누구나 알고 있던 악재다. 연준의 테이퍼링 계획이 더 명확해진 것은 이제 가장 큰 불확실성이 걷히는 것으로 평가한다는 의미다. 연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연준의 다음 스텝을 가늠할 수 있는 발언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마켓워치에 “내년 1분기까지 연준이 테이퍼링을 완료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예상보다 빨리 테이퍼링이 끝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 내내 뉴욕증시를 짓눌렀던 테이퍼링에 대해서 이렇게 대략의 큰 시간표가 나왔으니 이제 투자자들은 다른 지표에 더 주목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시장에선 3분기 기업 실적 주목 시장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주요 기업들의 3, 4분기 실적이다. S&P500 지수가 지속적으로 랠리를 펼치며 지난해 3월 저점 대비 2배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업들의 실적 덕분이었다. 특히 7~8월에는 2분기 어닝 시즌이 증시를 떠받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분기에 미국 경기가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있듯이 하반기에는 실적 흐름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7월에 하반기 GDP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이미 지난 2분기에 예상보다 부진한 6.5%(전기 대비, 연율환산) 성장률을 기록했고, 4분기에는 5%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무관치 않다. 5월까지만 해도 9월부터는 재택근무가 마무리되는 등 경제가 완전히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미국이 다시 팬데믹 초기와 같은 경제 봉쇄를 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높아진 기업 실적 기대치를 맞추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테이퍼링 계획이 구체화된 이후에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종목들은 이런 실적 악화를 선제적으로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뉴욕 증권거래소의 장내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이런 혼란기에도 틈새시장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월가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투자 대상 중에 하나가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다. ETF(상장지수펀드) 형태로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의 관심도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뱅가드가 운용 중인 대표적인 ESG 분야 ETF는 Vanguard ESG US Stock ETF(종목코드 ESGV)다. ESGV는 시장 등락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1년 전 대비 30% 안팎으로 올랐으며 올해 들어서는 20% 이상 올랐다. 블랙록이 운용 중인 같은 분야 ETF인 iShares ESG Aware MSCI USA ETF(종목코드 ESGU) 역시 비슷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핑크 회장은 블랙록이 주주로 참여하는 기업들의 이사회에 ESG로 ‘머니 무브’가 생기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블랙록은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의 1, 2대 주주로 올라있는데, 이 같은 ESG 드라이브가 어떤 파급력을 낳을지 주목되는 포인트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 세계 ESG 펀드 총자산은 1조3000억달러를 넘어섰다. 1년 사이에 4400억달러가 늘어났고 올해 들어서도 이런 폭발적 신장세는 계속되고 있다. 주식형 펀드 외에 채권형과 혼합형, 실물자산형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영국 경제 분석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일본 등 5개 지역의 지속가능투자(Sustainable Investment) 규모가 4년간 55% 증가했다.
글로벌 지속가능투자연합(GSIA)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5개 지역의 이 분야 투자액은 ▲2016년 22조8390억달러 ▲2018년 30조6830억달러 ▲2020년 35조3010억달러 등 큰 폭의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다. 출렁이는 시장 속에서도 강한 엔진을 달고 항해하고 있는 ESG 분야 투자는 혼란이 지속될수록 상대적으로 선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월가의 평가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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