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블 이코노미] 요동치는 부동산·주식·암호화폐 가격… 인플레이션 위험 고조, 거품 붕괴 큰 걱정

    입력 : 2021.05.26 10:26:54

  • “지금처럼 다양한 자산 가격의 동반 상승은 100년 전 ‘광란의 20년대(Roaring ‘20�칢)’와 비슷하다.” 지난 4월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건축 자재부터 농산물, 주식, 암호화폐 등 모든 자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글로벌 시장 버블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며 내놓은 총평이다. ‘광란의 20년대’는 1929년 뉴욕 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 발생 직전의 상황을 말한다.

    실제 미국의 목재 등 건축 자재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민간주택 건설 붐과 부동산 가격 급등을 목재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는다. 최근 미국의 주택 매매 건수는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6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바로 직전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와 금융권이 공급한 유동성이 부동산, 주식 등으로 쏠리는 가운데 자산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최근까지 유례없는 돈 풀기를 계속해 왔다. 그로 인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등 각국에서는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가 하면, 가상화폐 광풍까지 거세게 부는 등 유동성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 주요국 증시는 현재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프랑스·호주 등의 대표 주가지수는 올해 사상 최고치 기록을 새로 썼다.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와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각각 23차례, 21차례 최고점을 갈아치웠다. 한국도 올 초 KOSPI가 사상 처음 30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5월 들어서는 3250선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암호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도 최근 급락 직전에 사상 첫 6만달러(약 6705만원) 고지를 돌파했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장난삼아 만든 도지코인까지 폭등해 세계 각국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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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주택 매매 건수는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기 전인 지난 2006년과 유사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7개 회원국 주택가격은 지난해 3분기 역대 최고 수준을 찍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도 거의 5%로 근 20년간 최대 폭이다.

    한국의 경우 부동산은 광풍 수준이다.

    사상 최저 금리 기조로 불어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간 데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에만 골몰하는 사이 공급 부족으로 인한 수급불균형이 부동산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한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1123만원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11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9월 10억원대로 올라선 지 7개월 만에 1억원 넘게 오른 것이다.

    문제는 자칫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 연준 등이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유동성 회수에 나설 경우 증시 등 자산시장에 끼어있는 거품이 빠르게 꺼질 수 있다. 실제 인플레이션 신호가 나타날 때마다 주요국 국채 금리가 뛰고 글로벌 주가가 요동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경제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시장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이 대거 풀린 반면 반도체 원자재 등 공급망 복구 지연과 병목 현상이 반도체 등 부품과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는 게 원인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지난 10여 년간 위축됐던 수요가 갑자기 폭발하며 심각한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현 상황을 ‘병목경제(The Bottleneck Ecomomy)’라고 정의했다.

    ▶글로벌 경제, 원자재 등 물가상승 경고등 미국의 경우 지난해 코로나19로 각국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풀면서 저축액이 크게 늘어나 민간의 소비여력이 쌓였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영국 등을 중심으로 백신 보급이 속도를 내자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민간에서 억눌렸던 소비까지 폭발하는 조짐을 보이자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올해 소비 지출은 1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4조달러(약 4500조원)가량의 물적·인적 투자 법안까지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며 매달 1200억달러(약 125조원)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가는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미국 4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시장 전망치를 크게 뛰어넘으며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을 기록했다. 13년 만에 최고치다. 3.6%였던 시장의 예상도 크게 뛰어넘었다.

    중국에도 인플레 공포가 덮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4월 생산자 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6.8% 급등, 2017년 10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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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들어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주요국의 경기 부양책에 따른 경제회복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1.5%로 상승했고, 2월에는 1.7%로 좀 더 상승하더니 3월 들어 2.4%로 상승폭이 더 가팔라졌다. 특히 주요 20개국(G20)의 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2.2%, 2월 2.4%, 3월 3.1%로 올라섰다.

    반도체부터 철강, 구리, 목재 등 모든 원자재 가격도 상승세다. 특히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선박 부족으로 해운 운임이 급등하는 현상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해상 운송 항로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5월 둘째 주 기준 3095.16을 기록했다. 사상 최초로 3000선을 넘은 5월 첫째 주(3100.74) 이후 2주 연속이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중국에서 유럽·미주로 가는 운임을 지수로 나타낸 것으로 1998년 1월 1000을 기준으로 한다. 배를 구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비행기로 몰리면서 항공 운임도 치솟고 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과 자산시장 버블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미국 당국에서도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미 연준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대놓고 자산시장 버블 붕괴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코로나 탈출전략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그동안 “물가상승은 일시적일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잠재워 왔지만,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는 “일부 자산에 거품이 낀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연준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에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하고 본격적인 긴축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방향을 바꾸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도 자산시장 과열이 금융시장의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쏠림으로 인한 금융 불균형 심화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와 같은 신흥국에 투자된 달러가 빠져나가고, 이를 막으려면 우리 역시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우리 경제의 최대 골칫거리인 가계부채 상환 어려움이 가중된다. 특히 한국은 가계부채 규모가 1700조원을 넘고 2030세대가 경쟁적으로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으로 뛰어든 상황이라, 거품이 꺼지면 언제든지 패닉 상황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인플레이션 우려→앞당겨지는 유동성 축소→자산시장 충격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급증한 가계 빚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거품과 연관돼 있다. 정부의 공급대책 등으로 집값이 내려갈 경우 가계 부채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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