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패권전쟁 한국은 ‘넛크래커’ 신세] 생산능력 확대하려는 미국… ‘얼마나 급했으면’ 사람이 반도체 모시는 실리콘밸리, ‘반도체 대란’ 속 압도적 경쟁력 회복하려는 바이든

    입력 : 2021.04.28 09:52:55

  • 미국도 반도체 대란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반도체를 받아오려고 공장에 사람을 직접 보내는 일까지 있을 정도다. 보통 반도체는 전문 배송회사가 비행기나 배에 선적해서 배송하는데, 그 중간 과정에서 선적·하역·통관시간 등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반도체를 구매하는 고객인 제조기업들은 그 시간도 아깝다. 여기서 소요되는 하루 이틀 때문에 공장이 가동을 멈춘다는 것은 재앙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견 나간 직원은 반도체 1000여 개가 담긴 007 가방을 신줏단지 모시듯 품에 안고 차를 타고 자신들의 공장으로 이동해 온다. 몇 십 명을 한꺼번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공장 가동 중단으로 발생하는 천문학적 비용보다 수십 명의 사람을 보내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미국 기업들의 반도체 수급은 빡빡한 상태다.

    특히 전통적인 IT 기업들은 그나마 대규모로 물량을 받아오기 때문에 나을 수 있지만, 이제 막 반도체를 대량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차량회사들은 물량확보가 어렵다. 반도체 회사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매해 가는 단골고객(IT회사)들이 아무래도 신규고객(차량회사)들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차량회사들부터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거나 감산에 돌입하는 경우들이 올해 초반 생겼다. GM, 도요타, 폭스바겐, 혼다, 테슬라, 현대차 등이 그런 경우였다. 심지어는 전 세계에서 반도체를 가장 많이 구매한다는 애플(2020년에 약 59조7000억원어치 구매)마저도 맥북 아이패드용 반도체가 부족해 생산이 지연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12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12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위협 느끼는 미국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는 이제 다른 나라의 경제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무기로 성장했다. 예를 들어 대만의 TSMC가 어느 날 미국 기업들에게 제품 공급을 줄이고 중국 기업들에 대한 매출비중을 늘리게 된다면, 애플 같은 기업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 나라의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IT 기업들의 숨통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원자재가 ‘반도체’라는 점에서 그 생산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가 됐다. 중국이 2015년 17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굴기에 나선 이유다. 당시 목표는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기술력이 부족했던 중국은 국유기업들을 앞세워 미국 유럽에 있는 반도체 회사들을 M&A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미국 대만 등 각국의 견제로 중국의 반도체 기술 흡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2015년 중국 칭화유니(淸華紫光)그룹이 세계 3위 D램회사인 마이크론을 230억달러에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에서 허가가 나지 않았다. 칭화유니그룹은 2016년 2월 미국 샌디스크도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 당국에서 정밀조사에 나서면서 무산됐다. 2016년 중국 화룬(華潤)그룹이 미국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 페어차일드를 사들이려 했지만 실패했고, 푸젠그랜드칩인베스트먼트펀드(FGCIF)가 독일 반도체 장비업체 아익스트론을 인수하려 했지만 역시 무위로 끝났다. 2017년에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던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려 했으나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인수금지 명령에 서명하면서 이 역시 결렬됐다. 사실상 중국 기업들이 미국이나 일본의 반도체 장비를 활용하거나, 관련 기술인력들을 빼오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 시절의 무역전쟁 이후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에 반도체 생산공장(파운드리)을 짓는 작업들이 더딘 상태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중국에서는 야심차게 수십조원을 투자유치했던 반도체 회사들이 문을 닫으며, 사실상 ‘반도체 굴기’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중간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받았던 칭화유니는 2020년 11월 채무불이행 상태에 들어갔다. 지난 3월에는 우한시가 만든 7나노 초미세공정 시스템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했던 우한훙신반도체(HSMC)가 문을 닫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5년 70%가 목표였던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20년 15.9%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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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 대통령의 반격 중국이 이처럼 반도체 굴기 달성에 고전하고 있다고 하여 미국이 마냥 웃고 있을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자국의 대표 제조기업들인 애플 테슬라 GM 등과 같은 기업들이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글로벌 반도체 부족 상황에서 미국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이 미국 산업계는 물론 바이든 정부의 경각심을 일깨운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2015년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시작된 이후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었다. 2017년 미국 백악관 산하 과학기술 자문위원회는 반도체 산업이 미국 국가 안보의 원동력이며,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 인력양성과 투자, 법인세법 개정 등의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책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미국 반도체 산업 장기적 우위를 위한 전략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또한 지난 2월 “미국 내 반도체 제조능력은 전 세계 생산량 대비 1990년 37%에서 오늘날 12%로 줄어들었다”며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예산 및 연구개발 지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화답하듯 바이든 대통령은 2월 24일 연방정부기관들이 100일 동안 반도체 수급을 점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사실상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행동을 취했다. 전 세계 반도체 회사 CEO들을 초청해 미국 내에 공장을 세워달라는 내용의 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그는 4월 12일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반도체 및 공급망 회복 최고경영자(CEO) 회의’를 개최하고 삼성, TSMC, 인텔, 구글 등 19개 기업 CEO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국 공산당은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공격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며 “미국도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들(중국)과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반도체 웨이퍼를 집어들면서 “반도체 칩, 웨이퍼와 배터리, 초고속 데이터 통신망, 이런 것들은 모두 인프라스트럭처”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는데, 그중 500억달러가 반도체 투자를 위해 배정되어 있다.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하는 기업들이 있으면 그 비용을 일부 보조해 주거나,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텍사스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대책들이 혜택을 줄 수도 있다. TSMC가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지을 계획인 공장도 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인텔 또한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를 들여 제조시설 2개를 만들 계획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4월 12일 CNBC에 출연해 “(현재 12%인) 미국의 반도체 생산비중을 33% 정도로 끌어올리는 것이 원대한 목표(문샷)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8호 (2021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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