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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폐 빅뱅] 페이스북이 내놓는 스테이블 코인 ‘디엠’, ‘돈’ 대신에 ‘디엠’을 사용할 날이 올까? 전자상거래 확장 위한 포석… 규제가 변수
입력 : 2021.03.30 14: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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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실리콘밸리에 세상을 뒤집어 놓을 만한 신제품 발표가 조금 뜸했다. 애플이 내놓은 신형 아이폰도 아주 높은 잣대로 보면 그다지 새롭지 않았고, 테슬라도 완제품 기준으로는 2019년 사이버트럭을 발표한 이후 별다른 업데이트가 없는 상황. 코로나19로 인해 신제품 개발이 더디게 진행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혁신의 심장인 실리콘밸리가 멈춰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중에서도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돈’의 혁신이다. 특히 페이스북이 “매우 조만간” ‘디엠’이라는 암호화폐를 시장에 내놓아 세상에 새로움을 선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디엠’의 정체는 뭐야? ‘디엠’은 페이스북이 올해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지금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돈’에는 불편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통해 기존의 돈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 화폐는 거래되는 지역이 제한되어 있어서 국경을 넘으면 환전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암호화폐가 나왔지만, 이 역시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은 기존의 명목화폐와 암호화폐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개념을 택했다. 가치를 달러화 유로화 등 주요 국가 통화에 연동시킨 암호화폐를 만들겠다고 계획한 것이다.
페이스북 입장에서 이는 매우 큰 비즈니스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페이스북과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한 거래가 이뤄지면 그야말로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거래 플랫폼으로 급격히 변화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제품사진을 찍어서 올린 뒤 친구들에게 홍보를 하고, ‘디엠’으로 돈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페이스북이 가진 사용자 네트워크가 장점을 발휘한다. 페이스북은 미국 전체 인구 정도가 되는 가상의 화폐국가 위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 산업 입장에서도 이는 큰 사건이 된다. 2019년 기준 약 3000만 명가량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지만, 페이스북이 뛰어들게 되면 사용자 인구 자체가 엄청나게 확장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디엠은 언제 나오는 거야? 페이스북은 2021년 이내에 디엠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올해 1분기 안에 디엠이 나온다는 보도들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정부(미국과 스위스)의 허가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서 그렇다. 디엠이 출시되기 위해서는 스위스의 금융감독당국(FINMA)에서 암호화폐를 활용한 결제시스템 운영사 자격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디엠의 암호화폐 지갑인 ‘노비(Novi)’의 자금송금 자격허가 또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 측은 G8 국가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설득작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은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에서 자체적인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발행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 반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중국이다. 중국의 국민메신저 앱이자 결제수단인 ‘위챗’과 결제도구 ‘알리페이’를 통해 화폐가 자꾸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정을 목격한 중국 금융당국은 위안화 디지털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마침 미국 기업인 페이스북이 디지털 암호화폐를 2019년부터 추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페이스북은 2020년 4월 원래 추진하고 있던 암호화폐의 이름을 ‘디엠’으로 바꾸고 달러화 등에 가치를 연동시키겠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디엠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디지털 혁신을 통해 재탄생한 위안화에 비해 달러화 또한 경쟁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설득논리를 펼치게 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디엠을 허락해 줬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은 상태다.
지난 2019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개최한 페이스북 가상화폐에 대한 청문회 모습.
자국인 미국 내로 가면 사정은 더 꼬인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민주당의 경우 페이스북과 같은 IT 기업들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소셜미디어 영역에서 최강자로 올라선 상태인 페이스북에게 ‘디엠’이라는 화폐까지 겹쳐질 경우 그 파워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2019년 7월 16일 열린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는 페이스북의 ‘디엠’ 프로젝트(당시 이름은 ‘리브라’)가 ▲돈세탁에 활용될 수 있고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관리능력이 의심스러우며 ▲미국과 같은 국가의 통화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디엠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페이스북 파이낸셜(F2)의 데이비드 마커스 대표는 “페이스북에는 무죄추정의 원칙(Benefit of Doubt)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내놓을 암호화폐에 대한 걱정이 크겠지만 끝까지 미국 규제당국에 완벽하게 내용을 설명하고 적절한 승인을 받을 때까지는 내놓지 않을 생각”이라며 “금융산업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며 조심스러운 규제를 받겠다”고 말했다.
▶‘디엠’은 과연 성공할까? 결론적으로 디엠이 무사히 발행될 수 있을지 여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2019년 6월 리브라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된 이후 미국와 유럽 정부는 일관되게 이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나오고 있는 인플레이션 걱정 때문에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들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와 무관하게 큰 힘을 가진 페이스북에게 또 하나의 힘을 부여하느냐 마느냐의 결정 앞에 각국 정부는 손쉬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디엠의 개발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도 불안요인이다. 페이스북 경영진 중 한 명으로 디엠 프로젝트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케빈 웨일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회사를 떠난다고 밝혔다. 케빈 웨일에 앞서 디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던 모건 벨러도 지난해 9월 회사를 떠났다. 이런 사정이 이어지면서 디엠 프로젝트 내에서도 ‘과연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페이스북은 기존에 언론사들이 만들고 있었던 여론 형성의 공간(공론장)을 파괴적으로 혁신하면서 오늘날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만들고 있었던 통화의 공간을 파괴적으로 혁신하려 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9년 6월 시작했던 ‘리브라’ 프로젝트의 이름을 ‘디엠’으로 바꾼다. ‘디엠’은 ‘하루(Day)’라는 뜻인데, 이는 날이 차오르듯 이 프로젝트가 만개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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