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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편 가속화] Part Ⅳ INTERVIEW |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국내 투자 늘리려면 M&A 규제 풀고 노동개혁·법인세 인하 단행해야”
입력 : 2021.03.05 1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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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의 M&A와 관련해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단점도 있지만 유동성 장세에선 좋은 매물을 제대로 고를 수 있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며 “기업의 자체 역량만으로 불확실성의 파고를 넘기 힘들다면 M&A가 혁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고시 23회 출신인 이동근 부회장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등을 거쳐 2010년부터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2017년 11월부터 현대경제연구원을 이끌었다. 지난 2월 24일 한국경영자총협회 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코로나19 접종이 시작되면서 지난해보단 글로벌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지난해엔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해는 그보단 괜찮을 것 같은데, 지난 2월엔 수출도 전년 대비 30%가량 늘었지요. 생각보단 빠른 회복입니다. 우리나라가 접종은 좀 늦었지만 코로나19 피해를 크게 봤다고 할 순 없어요. 전체적으로 시장은 괜찮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기업의 화두는 역시 수출이죠. 일단 수출이 잘 풀릴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반대로 어려움도 있을 텐데요.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한데, 국내에선 아무래도 규제 정책에 기업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업 규모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는데 대기업에는 좀 더 강한 규제를 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이 대기업에 직접 규제를 가하고 주 52시간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특별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내용이지요. 여기에 탄소중립처럼 환경과 안전, 노동 규제 등 범위가 넓고 가짓수가 많아서 힘든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출기업들은 아예 국내 시장보단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출발선에 서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을 놓고 비판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국내 상장이 좋은지 해외가 좋을지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판단해야 합니다. 중국의 알리바바도 뉴욕 증시에 상장했잖아요. 쿠팡 입장에선 상장에 유리한 시장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밖에서 바라볼 때도 유연하게 봐야죠.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봅니다. 비판적인 시각은 아마도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법과 제도, 정책이 글로벌 기준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 것인데, 시대에 뒤떨어지는 면이 분명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인정이 되는데 국내에선 반기업적 정서 때문에 인정하진 않는 제도들이 그렇지요.
올해 기업 화두는 역시 수출, 산업생태계 탄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전망이 기업들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하신다면.
▷국내외 기업들의 시각이 비슷합니다. 팬데믹 상황에 비대면 산업이 성장했고, 현재 IT, 바이오, 전기차, 모빌리티, 2차전지 등의 분야를 주목하고 있어요. 우리의 강점이라면 제조업의 포트폴리오가 강하단 것이지요. 철강이나 석유화학 같은 기본적인 제조업까지 탄탄하게 산업생태계를 구축해놨기 때문에 코로나19 와중에도 비교적 선방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M&A를 통한 확장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기업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매출과 수익성을 확대하는 내적·유기적 성장이죠. 또 하나는 외부 기술과 네트워크, 인력 같은 다양한 자원을 M&A를 통한 확보하는 외적·비유기적 성장이에요. M&A 등을 통한 사업영역 확대는 사업을 준비하는 기간도 단축시키고 인력과 기술, 경험을 확보하는 데도 용이합니다.
▶단점도 있을 텐데요.
▷물론 막대한 자금이 일시에 소요되기도 하고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간에 기업문화의 이질성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또 기업의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싼 값을 치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선 기존 산업에는 일종의 구조조정 기회일 수 있어요. 파는 사람 입장에선 공급과잉 업종을 제값 받고 팔 수 있고, 사는 사람은 현재 자금의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좋은 매물을 고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M&A 성공을 위한 전략을 꼽으신다면.
▷4가지 전략으로 나눌 수 있어요. 우선 동종 산업 간에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평확장형’이 있습니다. 하나은행이 IMF 이후에 보람은행, 충청은행,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규모를 키운 게 좋은 예지요.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진 않지만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종산업결합형’은 주력산업의 성장이 정체됐을 때의 생존전략입니다. 이 경우는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요. 섬유 사업을 시작해 유공(정유), 한국이동통신, 하이닉스(반도체) 등을 인수하며 성장한 SK그룹이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핵심역량보강형’이에요. 핵심 구성요소를 인수해 경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인데, 2017년에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한 게 이러한 전략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본투자목적형’은 실패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투자와 M&A에 나서는 경우인데, 미래의 자산 가치를 보고 인수한 뒤 기업을 더 키워서 다시 매각하는 사모펀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동안엔 M&A에 나선다고 하면 재무 전문가나 변호사가 중심이 됐어요. 가격과 인수 대상만 놓고 판단해선 안 됩니다. 기업 입장에선 어떤 기업을 인수해야 기술과 인력을 보강할 수 있고, 다른 산업에 진출해 융합할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지요. 지금은 재무나 법률 전문가들이 너무 앞서서 활동하고 있어요. 기업의 미래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을 한 후 재무나 법률적 검토에 나서야 하는데 앞뒤가 바뀐 형국입니다. 쉽게 말하면 ‘얼마인가’가 더 중요한 거죠. M&A 전략을 수립하는 파트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합니다. 돈만 보고 덤비는 M&A는 언젠가 거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각에선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도 중요하지만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단 시각도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국내 투자에 대한 의견은 아마도 국내 기업들 간에 M&A가 진행되면 투자와 고용유지가 지속될 수 있다는 시각인데, 사실 대기업이 M&A에 나서면 규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국내 기업이 국내에서 기업인수에 나서면 골치 아프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요. 이젠 독과점 관련이나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 등 기업 규제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또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모두 M&A 이후 관련 세금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하지요. 감면이나 과세이연, 분할납부 등의 혜택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기업들의 M&A와 관련해 최근엔 동학개미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일단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동학개미 입장에서 바라보면 인수기업이 크고 단단해야 피인수기업도 동반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나선 대우해양조선과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성장성에 크게 문제가 없기 때문에 최소한 주가가 떨어지진 않을 겁니다. 주린이 입장에선 자본과 관련된 M&A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협업하는 넓은 의미의 M&A도 주시해야 합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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