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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전환시대 ESG 경영] 포스트 코로나 시대 新생존 키워드 ‘ESG’ 존경받는 기업, 환경·사회·지배구조에 달렸다
입력 : 2020.12.28 17: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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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친환경 사업, 사회적 가치, 신뢰 받는 지배구조 등을 추구하는 ESG 경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 나가야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미국 행동주의 투자기업 엔진넘버원은 지난 12월 초 엑슨모빌 이사회에 “풍력기업 출신의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 등 신규 이사 네 명을 선임하라”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10명으로 구성된 엑슨모빌 이사진 중 40%를 교체하라는 요구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을 위해 더 나은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며 새 에너지 트렌드에 맞춰 신재생에너지에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낡은 경영전략으로 실적이 연일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사실 그동안에도 기업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가 강조돼 왔다. 하지만 최근 ‘ESG’ 강조 흐름은 이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바로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주행동주의가 강해지면서 사회적책임투자(SRI)가 요구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주요국이 ESG를 기업 평가의 척도로 삼으면서 관련 규제가 무역과 투자장벽이 되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은 새해부터 모든 금융회사에 ESG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상반기 중 ‘유럽 그린딜 법안’을 마련하고 오는 2023년부터 시행에 돌입한다.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량 제로 달성을 위해 탄소국경세 부과,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등 다양한 규제에 나설 방침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주요 대기업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국민연금 등 기관들도 ESG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주력 사업을 잘 키우면서 사회적 책임까지 다하는 기업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추세다.
기업이 돈을 벌어도 ESG 관리에 실패하면 자본 이탈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게 됐다. 2019년 미국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하는 주주 결의에 반발했다가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다팔면서 주가가 1년 새 반토막이 났다.
‘지구의 에너지 문제 해결’을 기업 목표로 내걸고 전기차, 태양광 발전 사업 등을 하는 미국 테슬라는 글로벌 1위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덴마크의 대표 석유회사 올스테드는 해상풍력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30%가 넘는 친환경에너지 회사로 탈바꿈해 1년 새 주가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여기에 친환경 정책을 앞세운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관련 산업이 급부상한 것도 ESG 열기를 부추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파리 기후 협약 재가입,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0) 달성, 청정에너지 2조달러(약 2200조원) 투자 등 친환경 정책에 역점을 둔 공약들을 내세운 바 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각종 ESG 펀드를 출시하며 투자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다. 소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트렌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골드만삭스 블랙록 등은 이미 ESG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에 글로벌 ESG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40조5000억달러(약 4경6500조원)에 달했다. ESG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과 사회적 압력은 기업에 위기인 동시에 좋은 기회인 셈이다.
독일 자동차업체 BMW는 연내 필요 전력의 3분의 2 이상을 재생에너지에서 공급받겠다고 했고 스웨덴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H&M은 10년 안에 산업 폐기물로 만든 나일론 등 재활용 소재만 쓰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 8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메리 배라 GM 회장 등 미국 주요 기업 CEO 181명은 성명서를 통해 기업이 더 이상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역량을 집중해서는 안 되고 소비자와 직원, 납품업체 등 사회 구성원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도 ESG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그룹의 행보가 가장 눈에 띈다. 최태원 회장이 주도해 온 사회적 가치 추구 경영에 발맞춰 최근 4년간 배터리, 순환경제 등 ESG 영역에 6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SK㈜는 지난 4월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의 ESG 지수 평가에서 한국 기업으로는 최고 등급인 AA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사업장 평가에 ESG 기준을 도입했다. 국내 금융기관들도 최근 ESG 채권을 발행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 등에 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EU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 정부와 기업의 ESG 대응은 더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상장사 중 이사회 산하에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도입을 한 기업도 ESG 관련 전문가도 드물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100대 상장사(자산 규모 기준) 중 이사회 내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도입한 기업은 12개로 집계됐다. 2019년보다 11개보다 1개만 늘어난 것이다.
이는 글로벌 유수의 기업과 비교하면 다소 초라한 성적이다. 포천 100대 기업 중 이사회 내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둔 기업은 63곳이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는 5분의 1 미만에 불과한 상황이다. 현재 설치된 기업들의 위원회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 국내 100대 상장사의 위원회 인원은 2020년 3.75명으로 집계됐지만, 포천 100대 기업은 4.37명이다. 또한 탄소 배출 관리, 친환경 제품 개발, 근로환경·인권 개선, 안전관리 등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역할도 강조된다. 정부가 ESG를 국가적 의제로 삼아 기업의 ESG 경영과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게 법적·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해 주고, 제각각인 ESG 정보 공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투자자들이 쉽게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4호 (2021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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