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턴어라운드 Part Ⅲ AI 반도체 | 인간두뇌 모방한 차세대 칩 ‘지능형 반도체’ 시대 성큼
입력 : 2020.01.30 10:48:51
-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고도화 및 요구되는 데이터가 지속 증가함에 따라 신속한 데이터 연산 처리를 위한 반도체 기술 역시 발전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기존 반도체 구조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인간의 두뇌(뉴런-시냅스 구조)를 모방하여 구현하는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이 등장하면서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의 새로운 변화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AI 반도체가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칩’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속칭 AI 반도체를 지능형 반도체라 부르는 등 두뇌와 관련된 용어가 활용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AI 반도체의 특징은 두뇌 속에서 셀 수 없는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신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칩 안에서 수만 개 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기기의 두뇌역할을 중앙처리장치(CPU)가 담당했다. CPU는 입력 순서에 따라 연산을 처리하는 ‘직렬’ 컴퓨팅 구조로 만들어졌다. 컴퓨팅 시스템 전체를 통제하거나 어려운 연산을 할 때에는 유리하지만, 일정한 규칙 없는 수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AI 환경에서는 비효율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AI 반도체는 ‘병렬’ 컴퓨팅 구조로 돼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사물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인식하면서, 한꺼번에 데이터를 쌓는 영역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현재 AI 기술이 탑재된 시스템 온칩(SoC) 시장 규모가 2018년 43억달러에서 2023년 343억달러(약 40조원)로 연평균 52%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는 시장 선두 기업으로 꼽힌다.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등 특화된 분야에서 인공지능 반도체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2016년 데이터센터에 최적화된 ‘테슬라(Tesla) P100’ GPU를 발표했고 2017년에는 GPU 컴퓨팅 아키텍처인 ‘볼타 (Volta)’에 기반한 최초의 프로세서 ‘테슬라(Tesla) V100’ GPU를 시장에 공개하기도 했다. 같은 해 자율 주행차를 위한 사비에르(AI Supercomputer chip, Xavier)를 발표하면서 에지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반도체 기술을 선보였다. 이 칩은 자율주행 차량에서 수행해야 하는 주변 환경 감지, 차량 스스로의 위치 파악, 주변 사물의 행동과 위치 예측 등의 연산 등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이후 엔비디아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DRIVE PX2를 개발하고, 2018년에는 자율주행차 전용 플랫폼인 드라이브 자비에(DRIVE Xavier)를 발표하기도 했다.
퀄컴도 인공지능과 기계 학습을 위해 만들어진 스냅드래곤 845를 개발했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플래그십 AP 스냅드래곤865은 동시통역과 언어 변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AI 기능을 강조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용 AP와 통신칩 부문에서 세계 최고 지위를 누리고 있는 퀄컴은 CES 2020을 통해 스마트폰, 노트북(레노버 5G Yoga), 클라우드(A100, 7㎚), 자율주행(LV 2+ 솔루션) 및 자동차(텔레매틱스 및 블루투스)용 칩을 발표하며 기존 스마트폰용 칩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시장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5G로 구현하는 세상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선도기업인 인텔은 소비자 기기용 AI 반도체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DNN 가속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을 집중적으로 인수 합병하거나 협력하고 있다.
인텔 역시 CES를 통해 올 하반기 출시할 차세대 코어 프로세서 ‘타이거레이크’를 공개했다. 이는 10㎚ 공정이 적용되며 AI 가속 기능과 내장 그래픽 칩셋 성능을 크게 끌어 올렸다고 발표했다. 또한 인텔은 지난해 발표한 아테나 프로젝트에 폴더블 PC를 위한 사양을 추가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 선도 기업들의 연구개발도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LSI사업부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NPU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자체 NPU 기술을 개발해 ‘엑시노스9820’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탑재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AI(인공지능) 시대를 선도할 핵심 기술로 NPU(Neural Processing Unit·신경망처리장치)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삼성전자가 인공지능의 핵심인 딥러닝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서 NPU의 독자 기술 육성에 주력해 SoC(System on Chip)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NPU 기술 역량 강화를 위해 시스템 LSI사업부와 종합기술원에서 선행 연구와 제품 개발을 지속하며 첫 결과물로 모바일 SoC 안에 독자 NPU를 탑재한 ‘엑시노스 9(9820)’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칩은 기존에 클라우드 서버와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수행하던 인공지능 연산 작업을 모바일 기기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온 디바이스 AI’를 구현했다. 빠른 응답속도, 개인정보 보호, 저전력 등의 강점을 갖췄다.
SK하이닉스 역시 시스템 반도체의 일종인 CIS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일본에 CIS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했다. CIS는 각종 IT 기기에서 전자 필름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이며, 시스템 반도체임에도 생산 공정이 메모리 반도체 기술과 연관이 가장 많은 제품이다. 또한 SK하이닉스는 전하 유입 여부를 통해 0과 1을 구분하는 기존의 반도체 입력 방법 대신 전압 크기에 따라 다양한 신호를 저장할 수 있는 유기물질 강유전체를 사용해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지능형 반도체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
AI 반도체 출현으로 사업 간 영역도 모호해지고 있다. 이 칩을 개발하는 회사는 반도체 소자업체뿐만이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IT 공룡들에 이어 중국과 한국의 인터넷 기업들도 기존 반도체 기업들의 영역이었던 지능형 반도체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기존의 시제품으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초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솔루션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AI 서비스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를 직접 투자·개발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구글은 폭증하는 데이터 수요에 대응하려면 무한대로 데이터센터를 늘려야 한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프로세서를 혁신해 데이터센터의 성능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딥러닝 신경망 네트워크의 추론 능력을 가속화할 수 있는 텐서프로세서유닛(TPU)을 개발했다. 이는 TPU는 이세돌 기사와의 대국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의 핵심 하드웨어이기도 하다.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의 일종인 TPU는 특정 작업에 맞춰 만들어졌으며 명령어 세트도 칩 자체에 하드코딩돼 있다. AI 솔루션 구동을 위해 맞춤으로 제작된 반도체인 셈이다.
네이버나 바이두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들도 최근 들어 AI에 특화된 ASIC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바이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14나노 공정 기반 AI 칩을 생산하기로 해 주목을 끌었다. ASIC은 일반적인 집적회로와 달리 특정한 용도에 맞도록 제작된 주문형 반도체를 말한다. 이전까지 AI 전용 ASIC은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투자비용이 필요해 주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대형 글로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개발이 추진돼왔다.
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 역시 대응에 나섰다. 네이버는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에 최근 두 번째 투자를 단행했다. 퓨리오사AI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데이터센터와 자율주행자동차 등의 서버에서 AI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퓨리오사AI는 구글과 마찬가지로 ASIC 형태의 AI 전용 반도체를 개발 중에 있으며 내년에는 ASIC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중국이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해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양강에 비해 투자는 물론 AI 반도체 인력 양성 인프라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향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AI 반도체 연구를 위해 최고급 인력 양성은 물론 폭넓은 인력 시장이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관계자는 “AI 반도체는 소재, ICT, 생산시스템 등의 특허와 기술 자본 등이 종합적으로 요구되는 융합기술”이라며 “국가적 차원에서 부처·연구소 간 연계·협업을 강화하는 한편 민간기업들의 기초·원천 연구 및 산업저변 확대를 위한 중장기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