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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혁명·해외사례| 글로벌 9746개 빅데이터 스타트업 활동, 94조원 넘는 자본 몰려… 미래 산업 투자
입력 : 2019.12.27 14: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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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트럭 브랜드 트리톤그룹은 실시간 물류 정보를 1만5000개 화물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트리톤그룹이 생산하는 만(MAN) 트럭과 폭스바겐 버스·트럭에 20㎝ 크기 수신기를 부착해 실시간 물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화물업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만으로 트럭 위치는 물론 주행 시간과 운행 기록, 연료 사용 현황, 연비 등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운행 효율을 높인다.
빅데이터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인류는 매일 하루에 250경(京)인 2.5퀸틸리언(quintillion)바이트에 달하는 흔적을 남기며 산다. 통계학자인 네이트 실버가 말한 대로 이 가운데는 쓸모없는 데이터인 소음이나 미래의 단초인 신호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인류는 이 같은 빅데이터라는 발자취를 추적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빅데이터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면서 동시에 국제 정치다. 자금이 몰리면서 산업이 커져가고 있는 반면에, 강대국 간 경쟁이 치열한 산업이기도 하다. 빅데이터 기반 스타트업 분석 플랫폼 ‘크런치베이스’를 전수 조사한 결과 2019년 10월 기준 전 세계에 있는 빅데이터 스타트업은 9746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가운데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5035곳(51.7%)이나 됐다. 이어 영국 907개, 인도 583개, 캐나다 385개, 독일 307개, 프랑스 302개 순이었다. 한국은 117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빅데이터 산업에는 자본이 몰리고 있다. 미국은 투자 유치 총액 부문에서도 1위를 달렸다. 빅데이터 기업 9746곳은 지금껏 총 805억7953만달러(약 94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는데, 미국 기업이 65%인 627억달러를 차지했다. 이어 중국이 51억4000만달러, 영국이 32억2000만달러, 독일이 15억6000만달러 순이었다. 한국은 2억8000만달러로 13위 수준이었다. 다만 중국은 기업당 투자 유치액에서 1위를 차지했다. 중국 기업의 기업당 투자 유치액은 2663만달러로, 미국 1246만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이 빅데이터 산업의 최강대국이라면, 중국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한국도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에 있는 54개 미디어가 생성한 뉴스 5824만 건(1990년 1월 1일~2019년 10월 29일)을 분석해 보니, 4차 산업혁명 관련 16개 키워드(특허청 신특허분류체계) 중 빅데이터는 바이오 18만8721건에 이어 11만842건으로 두 번째로 많이 보도됐다.
▶물류를 혁신시키다…
주문부터 배송까지 24분 37초
빅데이터는 물류를 탈바꿈시키는 주역이다. 특히 배송 라이더들의 효율과 임금을 함께 높이고 있다. 배달을 해주는 라이더들은 오토바이를 몰면서 주문인 콜 잡기를 동시에 수행하는 존재다. 그러지 못하면 좋은 주문을 눈 뜨고 놓친다. 좋은 주문은 먼저 클릭하는 라이더의 몫이다. 배송 대행 스타트업인 메쉬코리아(대표 유정범)가 운영하는 ‘부릉’은 이 같은 문제점을 빅데이터로 개선하고 있다. 부릉이 배송을 관리하는 버거킹·맥도날드·미스터피자·KFC·CJ푸드빌·롯데리아·이마트·신세계 등 각 상점에서는 주문이 매달 420만 건 이상 생성된다. 하지만 배달 기사들에게 최적화된 동선을 안내해 주문부터 배송 완료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은 24분 37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라이더(월 260~300시간 풀타임 근무자)의 평균 월 소득은 2017년 대비 2019년 40% 이상으로 오히려 상승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핵심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비숙련자에게 최적의 주문과 경로를 추천하는 것이다. 물류라는 불충분한 시간과 정보에서 합리적 판단을 도출하는 ‘메타-휴리스틱 알고리즘 병렬 연산’, 배송 기사의 노하우를 학습한 뒤 데이터화해 경로에 반영하는 ‘패턴 마이닝’을 동원해 최적 경로를 안내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회사 트라톤그룹이 개발한 화물 운송 관리 플랫폼 리오는 트럭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하고 있다. 트라톤은 폭스바겐그룹 자회사로 화물 트럭, 대형 버스를 제조하고 있다. 트럭 브랜드인 만(MAN)과 폭스바겐 트럭·버스가 트라톤의 브랜드다. 트라톤은 2016년 물류 디지털화를 위해 리오라는 회사를 만들고 동명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트럭에 20㎝ 크기의 리오박스라는 수신기를 부착하면 그만이다. 이 수신기를 통해 트럭 내 정보가 실시간으로 플랫폼에 쌓인다. 트레일러, 화물칸, 차체, 운전자, 화물 운송 주문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교통, 기후, 내비게이션 데이터 등이 실시간 전송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 정보는 고객사에 제공되고, 고객사는 PC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리오 모든 정보를 확인하면서 트럭 운송 효율을 높이고 있다.
중국 선전 화웨이 본사에 있는 스마트시티 대시보드를 한 직원이 살펴보고 있다.
빅데이터는 법률·금융 산업의 업무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옥스퍼드대 출신 연구진이 2014년 설립한 런던에 있는 에이겐테크놀로지는 금융 계약·분석 AI 프로그램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특히 텍스트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분석하는 컴퓨터과학의 한 분야인 자연어처리(NLP) 기술에 특화돼 있다. 사용자가 질문을 남기면 학습한 문서를 토대로 분석하고 문서를 작성한다. 골드만삭스·ING·히스콕스 등 글로벌 금융사가 고객사들이다. 루이스 리우 에이겐테크놀로지 대표는 “에이겐테크가 개발한 AI는 금융 보험 분야 주요 계약 형태를 모두 학습했다”며 “문서 50종을 학습한 결과 문서를 이해하는 정확도가 98%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에이겐테크의 기술은 지표금리인 리보(LIBOR)의 2021년 퇴출을 앞두고 곳곳에 적용 중이다. 영국 A은행은 임직원 100여 명이 달려들어 두 달 넘게 작업해야 할 분량을 에이겐테크 AI를 동원해 매니저 8명으로 해결했다.
트라톤그룹이 개발한 화물 운송 관리 플랫폼 ‘리오’의 차량용 수신기
스마트 시티의 중심에도 빅데이터가 존재한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위치한 화웨이 ‘뉴 정보통신기술(ICT) 전시관’에 가면 빅데이터가 어떻게 스마트 시티의 핵심인지를 알 수 있다. LED 모니터 24개를 이어 붙인 거대한 단일 스크린에 중국 선전시 룽강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스마트 시티 센터라고 이름 붙인 대시보드는 룽강구에서 생성된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만든 스마트 시티 컨트롤타워다.
화웨이 관계자는 “이것이 바로 스마트 시티의 대뇌”라면서 “그동안 사람 감각에 의존했던 도시 행정을 이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첨단 센서 등을 활용해 분석적으로 실시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대시보드는 크게 전체 현황·결정사항 지원·모니터링과 경고·긴급 상황 통제 4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현황을 누르면 다시 차량 흐름, 쓰레기 흐름, 사건·사고 발생, 신호등·폐쇄회로(CC)TV 현황 등이 세부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클릭하면 해당 안건을 볼 수 있다. 갑자기 서북쪽에 ‘오일탱크 전복 사고’라는 알림이 떴다. 담당자가 이를 클릭하니 도로 현황이 입체 화면으로 전환되고 오일탱크 7t 트럭이 어떤 경위로 사고가 났는지 화면에 영상으로 나타난다. 도로에 있는 CCTV에 포착된 오일탱크를 추적해 입체화한 것이다.
화웨이 관계자는 “사건·사고나 테러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그동안 신고에 의존해야 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도시 곳곳에서 생성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신고 없이도 실시간 확인과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이 대시보드는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주민만족지수, 생활지수, 정부활동지수 등을 생성해 룽강구 공무원들이 얼마만큼 주민을 위해 뛰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화웨이 전시관에 있는 스마트시티 대시보드는 단순히 전시용이 아니다. 똑같은 제품이 이미 2018년 11월 룽강 스마트 파크에 있는 룽강 스마트 센터에 구축돼 작동 중이다.
중국이 스마트 시티에 빅데이터를 접목하고 있다면 에스토니아는 국가적 차원에서 빅데이터를 활용 중이다. 국가 단위로 유전체를 빅데이터화한 다음 이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바로 에스토니아 바이오뱅크의 비전이다.
에스토니아는 국민들의 DNA, 혈장, 백혈구를 빅데이터화하고 있다. 인간의 DNA는 33억 개에 달하는 분자인 뉴클레오타이드와 빌딩 블록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저장하는 것 자체가 방대한 작업이다. 2000년 관련 법안을 제정한 후 지금껏 전 인구의 15%가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트누 에스코 에스토니아 바이오뱅크 부소장은 “전체 인구가 130만 명 남짓인데 20만 명에 달하는 DNA를 저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성인 인구의 약 20%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화된 유전자는 질병 가능성을 예측하고 맞춤형 진료를 위해 쓰인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경쟁력은 스마트 ID와 연동해서 나타난다. 환자들이 신분증만 제출하면 어떤 의료진이든 유전 질환 유무, 알레르기 유무, 진료 내역 등을 살펴보고 대응할 수 있다. 또 유방암 발생 가능성 지수가 상위 5%인 여성을 상대로 가족력과 무관하게 촬영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목표는 예방 의료를 통해 치명적 질환이 발병할 수 있는 국민들의 수명을 40년 가까이 연장시키는 것이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이상덕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그래픽 사진 매경DB]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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