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금융 투자도 AI 돌풍…펀드매니저 위협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입력 : 2016.05.02 17:41:59

  • 금융업은 인공지능이 적용될 다음 행선지로 유력하게 꼽히는 분야 중 한 곳이다. 투자금액, 수익률 등 숫자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정착하기가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최근 금융업계에서는 로봇이 펀드매니저·자산관리사(PB) 역할을 수행하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선을 보여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적은 인건비로 사람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요즘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유망한 투자수단으로 부상 중이다.

    전 세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서 가장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운용자산만 약 53조원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2020년에는 2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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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보어드바이저 美선 운용자산 53조

    국내에서는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과 현대증권이 이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우리은행·신한은행·한국투자증권 등 10여 개 금융사가 관련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들에게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지난해 7월 ‘에임(AIM)’이 최초로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 선을 보인 뒤 5개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가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활약 중인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의 정보(빅데이터)와 알고리즘(연산규칙)에 기반을 둔 투자가 대부분이다. 투자자가 연령대, 예상 수입, 투자 기간, 투자 경험 등 8가지의 투자조건을 입력하면 9단계의 위험 성향 중 투자자에게 적합한 등급과 포트폴리오를 알려준다.

    로보어드바이저의 가장 큰 장점은 자산 규모가 적더라도 투자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사의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투자자문을 받으려면 일반적으로 300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하면 250만원부터도 가능하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저 0.15%의 수수료와 24시간 시스템화된 운용 방식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 벤처기업인 웰스프런트(Wealthfront)·베터먼트(Betterment)가 각각 20억달러·14억달러의 자산을 운용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미국 등에서 시행되는 방식과 다르다. 현행법상 창구에서 얼굴을 마주한 채 투자 계약을 하도록 돼 있다. 은행과 증권사 입장에서 창구를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 같은 부담은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아직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들에 개별 고객들과 온라인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중간에 끼어서 상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과도기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수료도 생각보다 높다. KB국민은행이 판매 중인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선·후취 수수료가 연간 2%에 달한다. 현재 판매 중인 주식펀드 평균 수수료(1.25%)보다 높다. 미국에선 수수료가 저렴한 ETF 위주로 종목 추천부터 투자까지 이뤄지는데 한국에선 주식·펀드 등 투자 상품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증권업계, 인공지능 HTS도 등장

    증권업계에서는 지난해 10월 대우증권이 로보어드바이저사와 첫 업무협약을 맺은 이후 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증권은 로보어드바이저 자체 개발을 마쳐 올해 상반기 중에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된 플랫폼은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선물 등 다양한 상품에 대한 포트폴리오 구성과 자산 재조정, 매매 등에 이르는 과정을 알아서 처리해준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코덱스200 등 ETF에 투자하는 로보어드바이저 ‘QV 로보 어카운트’를 출시했다. 향후 일반 펀트에 투자하는 인공지능 시스템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운용사 중에서는 대신자산운용이 지난 2월 조직 내에 별도의 로보어드바이저 부문을 신설했다. 길재욱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목표 수익률 3~4%인 상황에서 수수료 1%포인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며 “5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퇴직연금 등이 발달하면서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들고 나온 로보어드바이저가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내놓은 증권사도 있다. ‘티레이더 2.0’으로 이름 붙여진 유안타증권의 HTS는 주식투자의 3대 출발점인 기업가치(실적), 수급, 기술적 지표(차트) 등을 모두 고려해 상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유망 종목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추천하는 것이 특징이다. 티레이더는 이 같은 독창성을 인정받아 지난 3월 특허권(특허번호 10-1599576) 취득에 성공했다. 지난 2013년 특허 출원한 것이 3년 만에 결실을 보인 것이다. 유안타증권의 전진호 온라인전략본부장은 “티레이더는 시장 심리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 시장 판단으로 상승·하락장에 관계없이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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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익률 펀드매니저 평균보다 웃돌아

    작년 하반기 증권사들이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들과 협업 계약을 하고 이 시장에 진출을 선언한 이후 은행들도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도입을 속속 추진 중이다. 창구를 방문한 고객들에게 투자 목적·기간·목표 수익률 등을 물어 투자 성향을 분석한 뒤 이에 걸맞은 최적의 상품 배분 및 추천 상품, 예상 수익률 등을 제시해주는 식이다.

    지난 1월 KB국민은행은 은행권 처음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인 ‘쿼터백 R-1’을 내놨다.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인 쿼터백투자자문이 만든 쿼터백 R-1은 ETF(상장지수펀드)에 주로 투자하는 신탁 상품이다. 현재 운용 규모는 20억원 정도다.

    쿼터백 R-1은 국내 상장된 ETF 중 8~12개를 선별해 투자한다.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여러 개의 ETF가 수익률을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금·원유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채권형 ETF 등 수익률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ETF들을 조합해 하락장에서도 일정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시장 상황에 따라 ETF별 투자 포지션을 얼마나 늘려가고 줄여갈지에 대해 자동으로 시그널을 보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수익률 성적은 준수한 편이다. 쿼터백 R-1이 출시일부터 지난 2월 25일까지 올린 수익률은 약 2%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동안 여타 펀드들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기 때문에 쿼터백 R-1의 성적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조홍래 쿼터백투자자문 이사는 “쿼터백 R-1이 수익률 상위 20% 안에 드는 펀드매니저의 실적을 넘어서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하위 80%에 속하는 펀드매니저보다는 더 나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및 하나금융투자와의 협업을 통해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인 ‘사이버 PB’를 오픈했다. 사이버 PB는 PB의 자산관리 노하우와 로보어드바이저가 접목된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로 ▲설문지 분석 ▲투자 목적 분석 ▲시뮬레이션 ▲모델포트폴리오 제안 ▲포트폴리오 제안 총 5단계로 진행된다. KEB하나은행 측은 “손님이 직접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자의 성향을 진단해 투자 목적을 분석한 후 1:1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함으로써 여타 서비스와 차별화를 뒀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도 로보어드바이저 회사인 파운트·DNA와 각각 손을 잡고 올해 안에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투자자문 고용불안 초래하나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껏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을 운용한 기간이 1~2달에 불과해 충분한 검증을 받지 못한 만큼 최소 6개월가량은 수익률 추이를 살핀 후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확산되면 금융업종 종사자들의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영국 은행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는 대신 투자자문 부문에서 550명의 인력을 줄이기로 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좀 더 창의적인 부문으로 재배치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알파고가 좀 더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구글 딥마인드 직원들의 노력이 필요했듯이 로보어드바이저가 더 나은 성과를 내려면 현장 직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HTS인 ‘티레이더’를 개발한 유안타증권도 티레이더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주식 경험이 풍부한 우수 영업직원들과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 등의 노하우를 집대성시키는 한편, 고객 자문단을 운영하며 현장의 요구사항을 전폭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금융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투자자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로봇과 기존 전문가 간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용어 설명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 전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 컴퓨터 알고리즘(연산 방식)을 활용해 개인의 자산 운용을 자문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용환진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7호(2016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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