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호황 속 국내 미술도 상승세

    입력 : 2015.06.05 14:17:48

  •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경매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경매
    세계 미술시장 최대 이슈는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이다. 20세기 입체파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55년에 그린 유화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114×146.4㎝)>은 지난 5월 11일 밤(현지시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7936만5000달러(약 1968억원·수수료 포함)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면서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를 새로 썼다. 종전 최고가 작품은 2013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4240만달러(약 1562억원)에 팔린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가지 연구>였다. 크리스티는 이날 경매에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클로드 모네, 피터 도이그,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등 대가들의 작품이 고가에 팔리면서 총 7억달러(약 76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글로벌 아트마켓은 금융위기 이후 잠시 주춤한 듯하더니 오히려 미술품이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왔다. 특히, 중국이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홍콩서 열리는 바젤페어와 크고 작은 경매행사를 통해 미술계 훈풍이 아시아지역으로 확산돼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로 인한 미술시장 침체가 회복되지 않고 답보 상태였다.

    최근 국내 미술시장은 확연히 상승세를 타는 분위기다. 2년 전부터 서서히 화기가 돌더니 올 들어서는 불꽃이 일고 있는 양상이다. 유명작가 작품들이 1~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몇 배씩 치솟았고, 국내 최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는 추세다.

    국내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게 된 데는 해외서 한국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다. K-팝, K-패션 등으로 이어지는 한류 열풍이 미술계로 확대돼 이른바 K-아트가 등장한 것이다.

    ‘단색화’는 세계 미술계 큰손들이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한 첨병이다. 여기에는 30년 경력의 국내 최대 규모 화상인 국제갤러리의 숨은 공로가 있다. 이현숙 회장이 이끄는 국제갤러리는 그동안 스위스 바젤, 영국 런던의 프리즈 등 해외 유명 아트페어를 수십년간 꾸준히 참가해온 글로벌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해외에 ‘단색화’ 알리기에 노력해왔다. 지난해 9~10월 국내서 먼저 선보인 ‘단색화의 예술’전을 시작으로, 같은 해 9~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블럼&포갤러리의 한국 단색화 대표작가 6인전에 이어, 10월 영국 런던의 프리즈 마스터스에 출품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출품작을 완전 판매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해외에서 불어온 단색화 열풍을 타고 국내에서 거래되는 작품가격도 급등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매년 초에 발표하는 ‘작품 가격’ 책자를 보면, 2년 전에 비해 거래량과 가격이 급증했다.

    박서보 화백의 경우 2012년 국내 옥션에서 거래된 작품이 9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46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초기작인 <묘법 No. 211-85>(162×130㎝, 1985년 작)는 지난해 12월 K옥션에서 2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올초 열린 서울옥션의 첫 경매에서도 박서보·정상화·윤형근 등 단색화 17점이 모두 낙찰되는 등 인기가 이어졌다. 서울옥션은 5월 말 홍콩에서 단색화 중심으로 80여 점의 미술품 경매를 실시했다. 최윤석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이사는 “이번 홍콩경매는 단색화 물량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며 “예전에는 해외 컬렉터들이 이우환 등 개별 작가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최근에는 단색화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으로 확대되는 경향”이라고 전했다. 국내 미술시장이 단색화에 쏠리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데 따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상업적 부분만 부각돼 모처럼 해외미술계의 관심이 반짝하고 그칠 수 있어서다. 단색화 대중화를 주도한 국제갤러리는 작품가보다는 작가들의 궤적에 대한 미술사적 가치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진설명
    전민경 국제갤러리 대외협력담당 디렉터는 “한국 안에서만 읽혀졌던 근현대 작가들이 해외에선 또 다른 시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발전 가능성을 타진한 게 가장 큰 성과다. 단순히 작품이 얼마나 오르고 얼마에 팔렸나를 따지다보면 작가와 작품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현대 미술은 워낙 다양해서 겉만 보고 예쁘고 좋은 작품이냐를 판단하지 않는다. 단색화의 경우도 그 작품들이 나왔던 한국의 60~70년대 역사와 사회상을 담고 있는데 소장가치를 두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알리는 게 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미술계의 한국 ‘단색화’ 열풍을 국내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는 “해외 미술계서 국내 근현대 작가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라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동시대를 표현하는 젊은 작가들로 확산되도록 미술계 전체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과거 박수근과 백남준 등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국내 미술계에서 재평가받은 작가들의 경우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젊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주체적으로 발굴해 해외에 알리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 김 대표는 “자국 컬렉터들이 자기 나라 작가들 작품을 사고 지원해야 작품에 대한 가치나 상업적 부분까지 올라가 국제적으로도 알아주는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했다.

    ‘201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미술 우뚝 서다 임흥순 작가 ‘은사자상’ 수상 세계 최고 권위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미술이 약진했다. 영화감독 겸 미술가인 임흥순(46)이 지난달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5월 9일~11월 22일)에서 은사자상을 깜짝 수상했다. 은사자상은 황금사자상에 이은 2위 상으로 역대 한국 작가가 받은 가장 높은 상이다. 수상작은 95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으로 한국과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 현장을 밀도 있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흥순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급속 성장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21세기라는 시간에서 <위로공단>은 노동현장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의미를 시적으로 통찰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홀수 해마다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서 한국 작가는 전수천(1995), 강익중(1997), 이불(1999) 작가가 참여한 한국관이 특별상을 받은 적이 있다. 국가관이 아니라 총감독의 기획 아래 열리는 본(本)전시에 초청받은 국내 작가가 은사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흥순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막식 전경
    임흥순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막식 전경
    한국 ‘단색화’전에 해외 유명 컬렉터 발길 베니스 시내에서는 한국 소장 작가들의 특별전에 해외 유명 컬렉터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국 단색화 운동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가장 특별하고도 중요한 궤적을 남긴 단색화 태동기와 중기, 그리고 현재를 아우르는 주요작품 70여 점이 소개됐다.

    이번 전시가 열린 팔라초 콘타리니는 유서 깊은 부호의 옛 저택을 개조한 특설전시장이었다. 한국 작가의 해외전시 사상 가장 고급스럽다는 평가 속에 해외 유수 컬렉터와 미술관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최근 국제적 관심을 모은 단색조 회화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번 ‘단색화’ 전은 최근 3년간 국제 미술계에서 동시대적인 관점을 통해 다각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단색화에 대한 전시를 비롯, 연구, 출판, 세미나, 퍼포먼스 등을 총괄하는 입체적인 토론의 장이자 그 동력을 촉진하는 라운드테이블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한국관 전시 ‘축지법과 비행술’ 관심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미술전의 한국관 전시에도 현지인들 관심이 뜨거웠다. 설립 20주년 맞은 한국관의 건축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영상 ‘축지법과 비행술’을 선보였다.

    문경원·전준호 작가는 한국관 건물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완전히 다른 기능과 외형으로 탈바꿈한 한국관 공간을 영상 언어를 통해 구현해냈다. 한국관의 건물 내부와 외부를 총체적으로 재해석한 신작은 외부에서 관람하는 두 개의 고화질 LED 스크린과 내부에 설치된 프로젝터 및 모니터를 이용한 총 7개의 영상 채널이 제각기 구별되면서도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서로 교차되는 설치작품이다.

    문명이 사라진 미래에 홍수에서 남은 한국관 건물을 배경으로 기억이 소거된 소녀(배우 임수정)가 과거 인류문명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다시 기억하고 깨닫는 과정을 담아낸 영상은 이미지 연출의 판타지적 성격과 첨단 기술력이 관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았다.

    단색화 국내에서 1970년대 큰 흐름을 이뤘던 현대 미술 사조다. ‘한국의 모노크롬회화’로 소개돼온 단색화는 요즘 외국에서도 한글 용어 그대로 ‘단색화(Dansaekhwa)’로 표기된다. 그리지 않은 듯 단색 위주의 화풍이 특징이다. 서구 모더니즘, 미니멀아트 같은 해외 사조와 궤를 같이하면서 국내 화가들은 백색을 중심으로 색을 넘어 정신성을 추구하며 독자적 양식을 창출했다.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정창섭 등이 대표적 작가들이다. ‘단색화’ 용어는 윤진섭 미술평론가가 2000년 광주비엔날레 기간 중 ‘한일현대미술의 단면’전을 통해 처음 사용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