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40대 그룹 장수 CEO…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신임

    입력 : 2015.02.06 16:43:15

  • ‘22년 & 3.4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숫자의 나열은 사실 월급쟁이들의 꿈이자 바람이다. 22년은 대기업에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고, 3.4년은 40대 그룹 CEO의 평균 재임기간이다.

    다시 말해 대학을 졸업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대기업 사원이 된 후 22년이 지나야 별을 달 수 있고, 별 중의 별이라는 대표이사(CEO)가 되면 3.4년 후에 짐 싸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평균은 평균일 뿐,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10년 이상 장수(長壽)하는 CEO들도 여럿이다.

    <LUXMEN>이 그들을 주목했다. 과연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성과와 노력이 그들의 직업을 CEO로 규정했을까. 국내 40대 그룹 장수 CEO와 진정 직업이 CEO인 주요 기업인의 명단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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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회사에서만 10년째 CEO ‘29명’ 22년 1개월!

    지난해 10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흥미로운 조사에 나섰다. 전국 219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4년 승진·승급관리 실태’를 분석한 것. 그 결과 대기업에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 1000명 중 임원까지 승진한 이는 단 7.4명에 불과하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22년 1개월에 달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난해 8월 CEO스코어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임원을 꿈꿔왔던 직장인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상장사 CEO의 평균 재임기간이 2.6년에 불과하며, 3분의 2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임원은 임시직원’이라는 재계의 농담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단명 CEO들 사이에서도 10년 이상 계열사를 맡으며 승승장구하는 소수의 CEO들이 있다. 바로 장수 CEO들이다.

    이에 매일경제 <LUXMEN>은 재계를 대표하는 40대 그룹 대표이사(상장사 및 비상장사 포함)들의 등기이사 취임일을 기준으로 장수 CEO들을 선별했다. 그 결과 29명(외국인 1명 포함)의 장수 CEO들이 등장했다. 한 회사에서만 10년 넘게 대표이사직을 맡으며, ‘직업이 CEO’라는 말처럼 오랜 기간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장수 CEO들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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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이상 장수 CEO, 효성이 가장 많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 20일 기준 10년 이상 한 회사에서 대표이사로 근무한 장수 CEO는 모두 29명으로 조사됐다. 효성그룹과 GS그룹이 각각 3명씩 조사돼 장수 CEO가 가장 많았으며, 대성그룹과 롯데그룹, 삼성그룹, 현대중공업그룹, CJ그룹, 한솔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이 각각 2명의 장수 CEO가 있었다. 반면 10대 그룹 중에서 장수 CEO가 단 한 명도 없는 곳은 SK그룹과 한화그룹, 한진그룹이었다.

    40대 그룹 중 가장 오랜 기간 CEO로 근무한 이는 대성그룹 계열 한국물류용역의 이상오 대표였다. 대성산업의 고문을 겸하고 있는 이 대표는 1988년 6월 10일 한국물류용역 대표로 취임한 후 현재까지 약 27년간 이곳의 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또 이유성 에스필 대표 역시 대성그룹 소속의 장수 CEO다. 삼성생명 출신인 이 대표는 독특하게 금융이 아닌 건설사 대표를 맡고 있다. 에스필은 지난해 5월 대성산업의 토목, 건축 부문을 양수받아 토목전문회사로 거듭났다.

    장수 CEO 중 두 번째로 오랜 근속기간을 자랑하는 이는 이인원 롯데쇼핑 대표다. 1994년 3월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려 총 21년 동안 임원으로 근무 중이다. 그는 1997년부터 롯데쇼핑의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또한 롯데그룹은 4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외국인 장수 CEO가 있다. 롯데캐피탈의 고바야시 마사모토 대표다. UFJ은행 출신인 그는 2004년 12월 대표로 취임해 현재 11년째 롯데캐피탈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가장 많은 장수 CEO를 배출한 곳은 효성그룹이다. 효성그룹은 이상운 ㈜효성 부회장과 이세주 공덕개발 대표, 최현태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대표 등 3명의 장수 CEO가 일하고 있다. 이중 경기고,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이상운 부회장은 1976년 효성그룹 입사 이후 2002년 ㈜효성 사장에 임명됐다. 코엑스에서 일하다 효성그룹에 합류한 이세주 공덕개발 대표는 효성그룹 내 부동산 관련 부문을 맡고 있다.

    눈에 띄는 이는 최현태 대표다. 그는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를 독자적으로 경영하다 효성그룹에 합류했다. 현재 두미종합개발과 플로섬, 신동진의 임원을 겸하고 있으며, 오너 일가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2명의 장수 CEO를 보유한 GS그룹은 삼양인터내셔널을 맡고 있는 차광중 대표가 옥산유통 대표를 겸직해 눈길을 끈다. 특히 차광중 대표는 두 계열사 모두에서 10년 이상 대표로 근무했다. LG화학 본부장을 지낸 차 대표는 GS아이티엠과 켐텍인터내셔널, 보헌개발 등 다른 계열사에도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 전기부문 사업을 영위하는 GS네오텍의 최성진 대표도 2005년 1월부터 등기이사로 일하며 장수 CEO로 이름을 올렸다.

    재계 서열 1위의 삼성그룹은 이상철 레이 대표와 김종현 누리솔루션 대표가 장수 CEO에 이름을 올렸다. 김종현 대표는 2000년 1월부터, 이상철 대표는 2004년 10월부터 각각 임원으로 등재됐다.

    범삼성가인 CJ와 한솔도 각각 2명의 장수 CEO가 있다. CJ그룹의 경우 넷마블몬스터를 맡고 있는 김건 대표와 우영환 메조미디어 대표가, 한솔그룹은 선우영석 부회장 한솔홀딩스 대표와 박원환 한솔케미칼 대표가 10년 넘게 임원생활을 했다.

    임직원의 근속연수가 가장 긴 기업으로 손꼽히는 현대중공업그룹에서는 김재근 현대기업금융대부 대표와 김광남 현대선물 대표가 장수 CEO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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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너 지분 높은 비상장 계열사 대표 영풍그룹을 비롯한 12개 그룹에서는 10년 이상의 장수 CEO가 1명씩 배출됐다. 먼저 영풍그룹은 김현태 코리아니켈 사장이 20년째 대표로 일하고 있다. 동부그룹에서는 김하중 동부저축은행 부회장이 18년째 대표로 일하며 장수 CEO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부영그룹의 경우 공직자 경력의 독특한 이력을 가진 김재홍 대화도시가스 사장이 15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또 현대백화점그룹은 강대관 현대HCN서초방송 대표가, 코오롱그룹은 산업자원부 고위공직자 출신의 이우석 대표가 코리아이플랫폼을 맡아 10년 넘게 장수 CEO로 활약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대차그룹의 김재선 삼우㈜ 대표, 태광그룹 이상윤 티브로드낙동방송 대표(티브로드홀딩스 대표 겸임), 세아그룹 이승휘 세아베스틸 대표, 태영그룹은 박종영 태영건설 대표, LG그룹은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두산그룹은 고영섭 오리콤 대표, 신세계그룹에서는 신달순 센트럴시티 대표 등이 10년 넘게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대표이사직을 맡아온 장수 CEO들의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비상장 계열사라는 점이다. 29명의 CEO 중 20명이 비상장 계열사 대표이사다. 또한 이들 비상장 계열사들은 대부분 오너 일가의 지분이 상당히 높은 구조를 갖고 있다.

    가장 많은 장수 CEO를 배출한 효성그룹이 대표적이다. 이세주 대표의 공덕개발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이 지분 100%를 모두 소유하고 있다. 또 최현태 대표의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역시 조현준 사장을 비롯한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다. 두 회사는 모두 부동산임대 및 매매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란 점도 특징이다.

    GS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삼양인터내셔널 차광중 대표가 겸임하고 있는 옥산유통은 허서홍 및 GS일가 4세들이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대기업 계열사지만, 담배 도매업을 주사업을 하고 있다.

    반대로 그룹의 간판 주력사의 맡아 장수 CEO로 일하는 사례도 있다. 롯데쇼핑의 이인원 대표와 효성그룹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또 선우영석 부회장의 한솔홀딩스와 박종영 대표의 태영건설 등은 모두 그룹을 대표하는 주력 계열사로 대부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상장사의 대표 CEO들의 경우 막강한 경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인원 대표는 1997년 롯데쇼핑 대표 직을 맡아 롯데그룹 성장에 기여했으며, 이상운 ㈜효성 부회장 역시 섬유분야에서 굵직한 경영능력을 보여왔다. 선우영석 부회장은 팬아시아 시절부터 탁월한 경영감각을 선보이며, 한솔그룹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금융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10년 넘게 한 회사에서 대표직을 맡아온 장수 CEO들이 비상장 계열사에 집중된 것은 대부분 오너 일가의 자금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그룹은 물론 오너 일가의 부동산 및 동산을 관리하며 재산을 불리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대표이사직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상장사를 맡고 있는 장수 CEO에 대해서는 “탁월한 경영감각과 글로벌 명성을 얻고 있는 전문경영인”이라며 “회사의 퀀텀점프를 이룩한 기업가정신을 가진 전문경영인들”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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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한진·한화, 10년 넘는 장수 CEO 없어 반면 장수 CEO가 단 한 명도 없는 그룹도 있다. 10대 그룹 중에서는 SK그룹과 한진그룹, 한화그룹이 10년 넘은 장수 CEO가 없다. 3곳의 공통점은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진행됐거나 개선 예정이라는 것이다.

    먼저 SK그룹의 경우 2000년대 ㈜SK에서 SKC&C로 지주회사를 변경했고,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의 통폐합이 이뤄졌다. 또 최태원 회장이 2004년 이후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나서면서 세대교체도 진행됐다. 아직 장수 CEO가 탄생하기에는 시간이 짧았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한화그룹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2002년 대한생명 인수 이후 그룹의 주력사업이 제조·건설, 금융, 서비스·레저 등 3개 분야로 집중되면서 계열사 간 통폐합 작업이 진행됐다. 또 2006년 이후 태양광 분야를 차세대 먹거리로 정한 후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 상태다. 보수적 성향의 장수 CEO를 배출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반면 한진그룹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양호 회장 체제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한진해운 인수에도 나서면서 지배구조 자체가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에는 유동성 위기까지 겹쳐 계열사 구조조정에 나선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 법인에서 10년 넘게 대표이사로 근무한다는 것은 오너일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단순히 경영실적만이 아니라 사내 평판, 성격 등이 모두 포함된 신뢰관계가 없으면 한 법인에서 10년 넘게 일하는 장수 CEO는 탄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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