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누구인가Ⅱ | 장수 CEO의 삼위일체 DNA

    입력 : 2015.02.06 16: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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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이 어려운가, 수성이 어려운가. 이는 역사상 오래된 논쟁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평가받는 당태종은 이 같은 이슈를 공개적으로 논쟁에 부친 바 있다. 개국공신 방현령은 “강한 적을 상대로 어려운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니 창업이 당연히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자 위징은 “제왕(帝王)의 자리를 얻고 나면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만과 방자에 빠지기 쉽습니다. 백성들은 안정을 꾀하지만 늘 성곽공사 등 부역을 시킵니다. 나라가 쇠퇴해져 멸망의 길을 걷는 이유는 언제나 이곳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살펴본다면, 이미 이룩한 창업(創業) 이후 나라를 지키는 수성(守成)이 더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라고 반박하며 논쟁의 날을 세운다. 이에 대해 당태종은 “방현령은 죽을 고비 넘어가며 전쟁 통을 겪어낸 개국공신이고, 위징은 안정기에 신임을 등용한 관리형 신하이다. 각각 자신들의 입장에 따른 차이”라고 정리한다. 이는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창업, 즉 정상에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못지않게 어렵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전국 219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승진·승급관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졸 사무직 신입사원 1000명 가운데 7.4명 정도만 기업의 별인 임원이 되며, 입사 후 임원 승진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2년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원도 이런데 최고경영자에 오르는 것은 어떻겠는가. 실력, 체력, 노력은 기본이고 천운(天運)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빈말은 아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도 있지만 요즘 국내 전문경영인들은 10년은 언감생심이고 잘해야 권불삼년도 힘들다. 한마디로 추풍낙엽, 풍전등화, 좌불안석! 요즘 전문경영자들의 명운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다시 당태종 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당태종은 수성을 위해 어떤 결론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을까. 신하들의 갑론을박 끝에 내린 그의 결론 멘트는 오늘날에도 시사적이다.

    “창업(創業)의 고통과 어려움은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수성(守成)의 어려움은 마땅히 그대들과 함께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현재의 일”이라며 수성의 관건인 자기관리를 위해 직언하는 신하를 가까이 두고, 그들의 말을 기꺼이 수용하며 자기혁신을 꾀했다. 즉 직언시스템을 가동해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한 것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성공DNA는 앞서 말했듯이 실력, 노력, 체력이다. 하지만 수성의 DNA는 다르다. 그것은 자기관리력이다. 수성의 관건은 교만, 욕심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통제하는 힘이다. 정상을 오르는 과정에서 액셀러레이터로 작용한 실력, 노력, 체력을 잘못 가동하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상에 오르는 단계에서는 ‘멈추면 죽는다’가 통했다면 수성의 단계에선 ‘멈추어야 비로소 보인다’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뿐 아니라 브레이크를 종종 잡아줘야 한다. 오르는 단계에선 경쟁자가 외부환경에만 존재했다. 수성의 단계에선 나, 내부 환경이 더 위협적인 경우가 많다. 남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조심하고 경계할 수 있다. 넘어져도 찰과상이다. 내 발을 헛딛게 되면 대형 사고다. 장수 CEO들은 바로 이 같은 낙상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다음의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얻는다면 당신도 장수 CEO의 자질을 갖춘 것이다.



    첫째, 나는 조직의 등불인가? 철학을 가진 리더가 장수한다. 숫자가 인격인 조직에서 성과를 내는 것, 맞다. 모든 리더의 실력은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장수 경영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못지않게 ‘왜 해야 하는지’,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성찰한다. 철강 업계의 P사장은 “리더란 등불이다”라고 주장한다. 리더가 든 등불을 보고 직원은 따라오게 돼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예전엔 직원이 자신의 맘에 안 들거나, 실적이 안 올라가면 사무실의 문짝이 남아나지 않게 박차고 나갈 정도로 다혈질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되고 싶은 리더상을 성찰하며 명상하면서 열정과 욕심을 조금씩 구분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과를 목표가 아니라 결과로 삼으니 역설적으로 성과가 향상됐다. 철학이 있는 리더가 오래 간다. 리더를 자리로 받아들이면 ‘영향력 발휘의 수단’이 아니라 ‘잃으면 안 되는’ 집착의 대상으로 변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무엇을 파는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를 질문해보라. 장수 CEO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앞서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을 설득한다.



    둘째,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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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 가치관의 체(體)라면 변신은 용(用)이다. 변화를 리더로서 자신의 정체성 변질 내지는 위선으로 인식할 때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 유통업계에서 전시 컨벤션 분야까지 두루 거친 H사장은 “사장은 배우다”를 주장한다. “배우는 작품에 따라 역할을 다양하게 맡지요.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역할에 맞출 수 있는 리더가 돼야 합니다.”

    한마디로 리더십은 쇼맨십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주장이다. 배우는 관객을 감동시키는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기본이지만, 역할에 따라 기쁨과 슬픔을 오가야 한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때론 속을 내비치며 호소도 해야 하고, 그 속내를 감추고 냉혹한 척도 해야 한다. 겁나고 두려운 위기 상황에서 자신감을 가장하며 독려해야 할 때도 있다. 오랫동안 리더 역할을 맡은 이들은 자기에게 편한 방식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거에 자신의 리더십이 편하고 검증된 것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상황에선 틀릴 수 있고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 비록 불편하고 가식 내지는 위선처럼 느껴질지라도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는 용기가 장수 CEO의 DNA다.



    셋째, 나를 비쳐줄 거울을 갖고 있는가? 산을 오를 때 고도가 높아질수록 밀도는 낮아진다. 메아리만 들린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정상에 서면 ‘만사 패스’로 나를 통제하거나 제어할 사람이 적어진다. 여론조사업계의 N사장은 직원이 사표를 내면 자신에 대한 해고통지서로 받아들였다. 떠나는 직원을 붙잡고 ‘우리 회사가 고쳐야 할 사항, 사장이 고쳐야 할 사항’에 대한 ‘고견’을 부탁했다. 눈이 오는 것도 사장의 책임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리더들이 사장 자리를 그만두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말이 ‘왜 진작 그 말을 해주지 않았는가’다. 자신이 결국 헛똑똑이였다는 자성이다. 장수 CEO들은 ‘직언을 하지 않는’ 직원을 원망하기보다 피드백을 받는 것을 제도화해 놓는다. 당신은 리더로서 어떤 피드백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는가. 바른 소리를 서슴지 않고 해줄 참모를 몇 명이나 두고 있는가. 말이 아닌 시스템으로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가. 직언하는 참모를 쌩하게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격려하고 포상해준 전례가 있나. 그것이 바로 장수 CEO 리더십의 첫걸음이다.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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