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치금융 철폐 요구 비등…“모피아 집단 없어야 금융이 산다”

    입력 : 2014.02.04 17: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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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설문에 참여한 교수들은 하나같이 관치금융을 철폐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은행에 과도하게 집중된 금융정책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지금까지 이만큼 관치를 해서 한국의 금융을 말아 먹었으면 이제는 관료들도 염치를 알아야 할 것”이라고 열을 올렸다. 그는 또 “세계에 유래가 없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통합하고 금융기관 수장이나 금융 관련 협회장으로 관료들이 낙하산 타고 내려가는 것을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피아라는 거대 이익집단이 없어져야 한국 금융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교수들이 관치금융 철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전국을 뒤흔든 개인정보 유출도 대대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 관료들 때문에 위법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징계로 일관한데서 비롯됐다는 게 많은 교수들의 지적이다.

    한국 금융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의 경쟁력이 극도로 저조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41.7%의 교수가 과도한 관치금융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음으로 경영진 능력부족(33.3%)이나 지나친 법적 규제(22.2%)를 문제로 지적했고 막강한 노동조합을 걸림돌로 꼽은 응답은 고작 2.8%에 그쳤다. 경영진 능력 부족이나 지나친 법적규제 역시 뒤집어 보면 관치금융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취약한 금융 산업 경쟁력의 책임은 관치금융으로 귀착되는 셈이다.

    송수영 중앙대 교수는 “낙하산 인사의 투입이 경영진의 무능과 관치금융의 폐해를 초래하는 악순환(Vicious Circle)의 원인이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도 “금융기관 수장들의 경영마인드가 부족하고 정부 눈치보기가 심각한 게 경쟁력이 취약한 이유”라고 지적했고, 김영용 전남대 교수도 “정부의 과다 간섭”을 문제로 꼽았다. 이성량 동국대 교수는 특히 현 정부 들어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이 많이 늘었다며 “감독은 철저히 해야 하지만 과도한 관치는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교수들이 이처럼 관치금융에 비판적으로 나온 것은 인수위 출신인 홍기택 KDB금융그룹 회장이나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 등 처럼 금융권 수장이나 감사로 관료들이 줄줄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대한 거부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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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들 동종업종 재취업 금지론 대두 이 때문에 감독 당국이나 기재부 출신 등 범 모피아그룹의 금융권 취업을 일정 기간 원천적으로 막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원용걸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의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려면 민간부문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힘들겠지만 낙하산 인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부처럼 금융위나 기재부에서도 퇴직 후 2년간 동종업종 재취업 금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의 야성적 충동이나 비이성적 탐욕이 과도한 버블이나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일정 수준의 감독은 하더라도 규제를 하기 이전에 정부가 왜 규제를 하며, 어느 한도까지 해야 하는지 한계를 명확히 하라는 게 교수들의 요구다.

    송수영 중앙대 교수는 “금융의 역할과 한계 그리고 목적에 대한 인식을 뚜렷이 하고 있는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는 시점에선 정부가 수용권(Eminent Domain) 행사를 고려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도 파생되는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만큼 현명한 정부를 필요로 한다는 얘기다.

    이젠 금융을 산업으로 키워야 교수들은 금융을 산업(제조업 중심의)에 자금을 지원하는 수단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강호상 서강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조업 부문은 기적적인 성장을 구가해 왔으나 금융부문은 그저 제조업을 돕는 도구의 역할만 강요당한 채 낙후된 상태로 방치되어 왔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금융부문의 선진화는 필수적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금융부문에 명실상부한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정부 규제는 건전성 규제에만 국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아울러 “금융부문의 경쟁력은 인적자원의 우수성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획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범식 숭실대 교수도 “금융이 실제 시장에서 구현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정부가 금융을 산업정책의 보조수단 정도로만 인식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만으로는 아무리 시가총액이 크다고 한들 ‘최고 선진국’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독일이 세계 최고의 무역대국이면서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주요 이유 중에는 도이치뱅크 이외에 내놓을 만한 금융기관이 없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또 “금융위기와 같은 큰 국가적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며 “금융이 절대적으로 낙후된 가장 척박한 토양이므로 50년 앞을 내다보고, 초정파적으로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을 육성해야 할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도 “금융부문을 단순히 실물부문을 보완하고 자금을 중개하는 기능만으로 국한하여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금융 자체도 서비스산업의 일부분으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자체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산업으로서 발전을 막는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하고 다른 산업과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해 사후적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영준 아주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금융 산업에서 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한 만큼 이를 감안해 금융기관의 거시 건전성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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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중심 금융정책은 그만 상당수 교수들이 이젠 은행 위주의 금융정책을 청산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는 “한국의 금융산업은 은행에 비해 금융투자업이 지나치게 작아 불균형 상태에 있다”며 “금융투자 업무 중 상품개발 분야는 규제를 풀어주면 잘 할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특히 “자산운용이 갈수록 중요해지는데 다양한 상품라인업을 가능하게 하는 DNA를 꽃피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대형 IB도 필요하지만 금융투자업이 천편일률적인 브로커리지 회사가 아닌 진정한 투자회사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을 산업으로 인식하려면 국제화도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나왔다.

    조대우 충남대 교수는 “금융산업의 발전은 국제화를 전제로 한다. 동시에 원화의 국제화도 단계를 밟아 진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곧바로 금융시장의 국제화로 연결된다”며 이를 위한 국가차원의 기획과 감독(Planning and Monitoring)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조 교수는 “이를 통할하는 부서를 지정하고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대통령이 직접 주기적으로 챙겨야 한다. 각 단계별로 철저한 수위조절과 민감한 조율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박상철 전남대 교수도 “금융국제화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며, 국제금융 인력을 양성하고,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도 적극 추진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장범식 숭실대 교수는 “금융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금융을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은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금융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초정파적 프로젝트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전문그룹 본격 육성할 때 금융산업을 키우기 위해선 금융전업 기업가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다수 제기됐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은행의 주인 찾기를 통한 경영 능력 강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도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전문인력에서 나오는 데 주인 없는 경우가 많아 전문인력을 양성하지 않았다”며 우회적으로 금융전업그룹 육성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 건전도 평가에 금융인력 양성에 대한 지출이 경상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BIS비율은 현재의 건전도를 나타내지만 금융인력에 대한 투자는 미래의 건전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는 더 나아가 “금융전업 기업가 육성을 위해 관련 제도도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교수들이 금융전문그룹 육성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당국도 이런 기류를 감지한 듯해 귀추가 주목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매경 증권인상 시상식에서 “금융전업 그룹은 자본시장에서 나와야 한다. 금융투자회사들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 말고 투자자와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행도 변신해야 한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변신을 촉구하는 견해도 나왔다.

    지난해 조사 때 한국은행에 낙제점을 매겼던 교수들은 이번 조사에선 보다 후한 점수를 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시중은행 세 곳만 놓고 볼 때 가장 믿을만한 곳을 뽑으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은행이 응답자 전체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응답자 가운데 63%만이 한국은행이 세 곳 중 가장 믿을만하다고 했으며 24%는 금융위나 시중은행이 더 신뢰가 간다고 했고 13%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정부 부처나 기관 평가에서도 30%가 넘는 교수들이 한은에 대해 보통보다 못하고 있다고 낮은 점수를 준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은은 민간은행이 아니라 일국의 중앙은행이기 때문이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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