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합병… 새 판 짜는 재계 `M&A Forecast`

    입력 : 2014.01.03 14: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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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물 규모만 최소 40조원! 재계에 M&A 매물폭탄이 쌓이고 있다. 최악의 시련기를 견디고 있는 건설업체들을 비롯해,

    STX그룹과 동양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M&A시장에 등장했다. 최근에는 10조원대 규모로 평가받는 우리금융그룹과 5조원대 대우조선까지 다시 매물로 나왔다. 이밖에도 증권사와 산업은행 및 채권단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 그리고 PEF(사모펀드)가 사들였던 중견기업체들까지 동시에 M&A 시장에 쏟아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너무 많은 매물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금융권의 표정은 어두워지고 있다. 매물로 나온 인수대상 기업들이 헐값에 매각될 것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반면 인수자 측면에서는 좀 더 낮은 가격으로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인수할 기회가 높아져 유력 인수후보로 손꼽히는 매수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M&A 시장이 설 것으로 예상되는 새해. 재계서열 마저 뒤흔들 수많은 기업들이 동시에 매물로 나온 M&A 빅마켓을 <LUXMEN>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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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Ⅰ 자고나면 등장… M&A 매물기업들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고 있다!”

    증권가 한 IB 담당자는 최근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10월 말부터 M&A시장에 굵직굵직한 대형 매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5일 금융권과 IB업계에 따르면 현재 매물로 등장한 기업들 중 대어급으로는 우리금융그룹을 포함해 대우증권, STX그룹, 웅진그룹, 동양그룹 등이 있다. 또 새해에는 PEF(사모펀드)들이 인수했던 기업들도 다시 M&A 마켓에 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3~5년 전 PEF에 인수됐던 이들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안정되면서 PEF들 역시 투자금 회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이뿐 아니다. 부채비율이 높은 공기업들도 당장 새해부터 계열사 및 자산매각을 통해 빚 줄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기업의 부채비율을 연단위로 점검해 빚을 줄이지 못한 공기업 수장들을 해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이 높은 LH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는 당장 매각할 수 있는 자산파악에 몰두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시련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건설업계 매물과 증권사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매물 홍수’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재계 곳곳에서 새주인을 찾는 M&A 매물기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조(兆) 단위 대어급 매물 즐비 재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최대 규모의 빅딜은 단연 ‘우리금융그룹’이다. 매각규모만 계열사를 포함해 10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은 우리은행 6조원, 경남·광주은행 2조원, 우리투자증권 계열 1조5000억원선에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국내 대형금융사는 물론 글로벌 사모펀드와 국부펀드까지 우리금융 인수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다시 한 번 주인찾기에 나선다. 산업은행(31.5%)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17.2%)가 보유한 지분을 한꺼번에 처분해야 하는 게 부담이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현재 시가총액만 7조원대임을 감안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은 1조5000억~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조선업계 1위 업체라는 점에서 해외 큰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잠수함 관련 군수산업체로 지정돼 있어 해외매각이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보험업계의 순위를 단숨에 바꿀 수 있는 빅딜로 평가받고 있는 LIG손해보험도 M&A 마켓에 나와 있다. LIG손해보험은 대주주일가가 지분 전량인 20.96%와 경영권을 모두 매각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은 LIG손해보험이 4500억~5000억원에 매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력 후보로는 LG그룹을 비롯해 NH농협과 롯데그룹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기업어음(CP) 불완전 판매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동양그룹은 동양시멘트, 동양증권, 동양파워, 동양매직, 동양파일 등이 매물로 시장에 나왔다. 이중 동양파워는 화력발전사업자라는 점에서 5000억~1조원대에 매각이 진행 중이다.

    유동성위기로 그룹해체 위기에 몰렸던 STX그룹과 웅진그룹 역시 아직 계열사 매각이 진행 중이다.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와 웅진케미칼의 매각이 완료됐지만, 웅진식품의 매각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STX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내놓은 STX에너지를 지난 11월 GS-LG컨소시엄에 매각했다. 2차례에 걸쳐 매각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던 한국항공우주(KAI)는 올해 중순께 M&A에 매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새 주인을 찾는다.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 전경
    대우조선해양이 새 주인을 찾는다.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 전경
    업종 전체가 위기 맞은 건설·증권 건설업과 증권업은 아예 업종에서 속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M&A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먼저 증권업을 살펴보면 업계 1위인 우리투자증권이 우리금융 민영화 계획에 맞춰 새주인을 찾고 있다. 현재 NH농협금융과 KB금융 등이 유력후보다.

    증권업계 자산규모 4위인 현대증권 역시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자금압박을 받고 있는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지분(22.43%)을 포함한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2위인 KDB대우증권도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통합하는 오는 7월 이후 매각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것이란 관측이다. 동양그룹 사태의 발단이 된 동양증권 역시 법원이 조기매각을 인가한 상태다. 여기에 아이엠투자증권과 리딩투자증권, 이트레이드증권 등 소형증권사들이 무더기로 새주인을 찾고 있어 증권가에는 이른바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보고 있다.

    건설업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지속된 부동산 경기침체와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야말로 시련의 세월을 견디며 새주인을 찾고 있다. 시공능력평가순위 100대 건설사 중 쌍용건설, 벽산건설, 남광토건, 동양건설산업, 범양건영 등이 매물로 나왔지만,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벽산건설은 중동자본인 ‘아키드 컨소시엄’에, 범양건영이 부동산시행사인 ‘플라스코앤비’에 인수됐지만, 다른 건설사는 아예 매각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의 IB관계자는 “건국 이래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인수합병 시장에 나온 예는 1997년 IMF(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일 것”이라며 “M&A 담당자들조차 몇 개의 기업들이 인수합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채 많은 공기업도 M&A 가능성 새해에는 인수자를 찾는 M&A 매물들이 추가로 대거 등장할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중견기업들을 인수했던 PEF들의 현금화 주기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PEF들은 기업인수 후 통상 3~5년 내에 정상화 과정을 거쳐 매각에 나서는 만큼 2008~2010년 사이에 PEF들이 인수했던 기업들도 M&A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2007년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에 인수됐던 C&M은 현재 새주인을 찾고 있다. MBK와 맥쿼리는 국민유선방송투자를 통해 C&M의 지분 93.81%를 보유하고 있다. IB업계에 따르면 MBK와 맥쿼리는 C&M 매각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후 다시 한 번 새로운 인수합병 기업을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수 당시 C&M을 고가로 매입했던 것이 매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 대표 토종펀드로 불리는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보고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동양생명의 보유지분과 아이리버, LG실트론이 매각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기업들 역시 마땅한 인수후보를 찾지 못해 보고펀드의 속을 끓이고 있다.

    이뿐 아니다.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들 역시 자산 및 계열사 매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당국이 부채를 줄이지 못하면 CEO를 문책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412조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등 12개 공기업들이다. IB전문가들은 이들 공기업에서만 최소 30조~40조원에 달하는 자산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무구조가 불안한 대기업들 역시 유동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높은 부채비율을 낮춰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추기 위해 선제적인 재무구조 개선안을 추진 중이다.

    가장 먼저 결단을 내린 곳은 김준기 회장의 동부그룹이다. 동부그룹은 시스템반도체 제조사인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항만, 동부발전당진 지분, 동부익스프레스 지분, 동부팜한농 보유부동산 등을 매각해 3조원의 자금을 만들 계획이다.

    한진그룹 역시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의 보유 자산을 매각해 3조5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먼저 한진에너지가 보유한 에쓰오일 지분 28.41% 중 3000만주를 매각해 2조2000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구형 항공기 13대를 매각해 2500억원, 부동산과 투자자산을 팔아 추가로 1조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진해운은 벌크 전용선 사업부문을 3000억원에 매각하고 국내외 터미널 지분을 팔아 3000억원을 추가로 확보할 방침이다. 여기에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 비영업자산을 887억원에 팔고 유상증자에 나서 6500억원의 자금을 수혈 받을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1조원대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안을 논의 중에 있다. 현대증권 지분매각을 비롯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확정되지는 않았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증권과 더불어 반얀트리호텔의 매각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민영화에 나선 우리금융그룹의 예상매각가격은 10조원대 이상이다. 사진은 서울 중구 회현동의 우리금융그룹 사옥
    민영화에 나선 우리금융그룹의 예상매각가격은 10조원대 이상이다. 사진은 서울 중구 회현동의 우리금융그룹 사옥
    신중한 국내 기업 vs 적극적인 외국계 PEF 이처럼 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M&A 시장은 아직까지 조용하다. 인수합병을 위한 접촉은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인수확정서에 도장을 찍은 기업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현금을 보유한 기업들이 M&A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기업들 역시 내부적으로 복잡한 상황이어서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새주인 찾기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부가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 역시 M&A 시장의 수은주를 차갑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IB업계에서는 이런 이유로 KKR, 칼라일, 어피니티 등 대형 PEF가 대형 M&A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큰손으로 불리는 해외 PEF들은 최근 자본을 확충하고 한국전담팀까지 구성하며 국내 M&A마켓을 눈여겨 보고 있다.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 역시 국내 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미 중국의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와 중국공산은행(ICBC)는 국내 투자사와 함께 우리금융그룹 인수전에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만의 유안타증권은 동양증권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일본은 대부업계를 중심으로 국내 저축은행을 인수하고 있으며, 회사채와 NPL(부실채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오릭스가 옛 푸른2저축은행에 이어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했으며, 투자금융사인 SBI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새주인이 됐다. 또 도레이첨단소재가 웅진케미칼을 인수했으며, 일본 복제약업체인 니치이코도 바이넥스의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재계 전문가들은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무더기로 M&A마켓에 쏟아져 나오면서 헐값 매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IMF 당시 론스타를 통해 뼈 아픈 경험을 한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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