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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Ⅱ | 빅딜보다 내부정리!
입력 : 2014.01.03 14: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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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서초동 사옥
그러나 대기업들은 올해 M&A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일경제가 지난 12월, 30대그룹 CFO들을 대상으로 새해 M&A 가능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 참석자(46개사) 중 33개사 CFO가 “M&A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그룹 내 소규모 딜에는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내 중복사업 정리 및 사업조정 등 교통정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1월 4일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의 관리용역을 에스원에 넘기고, 급식 및 식자재 사업(FC사업부)을 단독법인으로 분리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부분을 인수했다.
그 결과 삼성에버랜드의 전체 매출은 크게 늘어났다. 전체 매출 중 30%를 차지하는 에너지·건설 부분이 남았고, 레저사업부와 새로 인수한 제일모직 패션부문의 매출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스원에 넘어간 건물관리사업 양도비용까지 감안하면 상반기 매출 기준은 8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의 에버랜드를 통한 내부 사업정리를 단순한 ‘몸집 키우기’가 아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에버랜드가 삼성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고,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에버랜드의 지분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승계를 위한 사전작업이란 분석이다.
이밖에도 삼성그룹은 2010년 이후 계열사 간 지분정리를 통해 사업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2012년에 진행된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S-LCD 등 디스플레이 3인방의 합병이다. 합병가액만 14조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라는 점에서 재계의 관심을 받았다. 삼성전자도 삼성LED를 흡수합병했다. 삼성LED는 글로벌 LED업체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5대 신수종 사업 관련 계열사들도 통합과정을 거쳤다. 삼성SDI는 독일의 보쉬와 5:5 비율로 투자해 설립한 전기차 배터리 전문회사 SB리모티브의 지분을 전량 인수했다. 또한 의료기기 사업체인 메디슨은 협력업체인 프로소닉을 인수했다.
앞으로의 행보가 관심거리다. 삼성물산은 지난 8월부터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을 꾸준하게 늘려가고 있다. 이에 재계에서는 두 회사 간 합병설을 점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시가총액만 14조5000억원대에 이르는 매머드급 건설사가 탄생하는 만큼 통합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계열사간 M&A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냉연사업 합병이다. 12월 중으로 완료되는 이번 합병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는 현대모비스가 맡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는 기아차로 모비스의 지분 16.8%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정몽구 회장이 6.7%, 현대제철이 5.7%를 갖고 있다. 모비스의 최대주주인 기아차는 현대차가 최대주주로 있고, 현대차는 모비스가 지배하는 삼각순환출자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다.
증권가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제철 지분 12.5%, 현대하이스코 지분 10.2%를 주목한다.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가 합병되면 정 회장이 보유한 주식과 기아차가 소유한 모비스 주식을 맞교환하는 ‘주식스왑’을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모비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지주회사체제로 지배구조가 바뀌게 된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의 변화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 건설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엠코와 현대건설 역시 증권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합병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두 회사의 주력사업이 모두 겹친다는 점에서 재계전문가들과 IB관계자들은 ‘합병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보다 한발 앞서 유사업종 합병 작업을 진행했다. 지주회사인 롯데쇼핑이 지난 2011년 8월 롯데스퀘어를 합병한데 이어 11월에는 롯데미도파를 흡수해 백화점 관련 사업의 규모를 확대한 것. 롯데삼강도 지난 2011년 1월 웰가, 10월 롯데후레쉬델리카와 차례로 합친 데 이어 롯데햄까지 합병해 종합식품회사의 틀을 완성했다.
또 롯데의 석유화학 계열인 호남석유화학과 KP케미칼은 합병해 ‘롯데케미칼’을 공식 출범했다.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이란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은 지난 12월 18일 롯데쇼핑이 보유 중인 호텔롯데 주식 전량(7만9254주)을 장외처분한다고 밝혔다. 상호출자관계에서 호텔롯데가 롯데그룹의 최상위 지주회사로 등장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롯데쇼핑의 호텔롯데 보유지분 매각 방침에 따라 롯데그룹의 후계구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한국롯데는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는 장남인 신동주 부회장이 나눠 따로 지배하는 구조였는데, 이번 결정으로 ‘일본롯데→호텔롯데→롯데쇼핑’으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격호 회장의 후계자로 장남인 신동주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게 된 셈이다.
이처럼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롯데그룹은 그동안 내부계열사 간 인수합병에 집중하고 있다. 대규모 빅딜보다 내부 집안단속에 신경을 쓰고 있는 셈이다.
롯데호텔 잠실점의 롯데월드
일각에서는 총수들의 대거 부재사태가 M&A의 외면을 부르는 원인이란 해석도 있다. 기업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어급 매물들이 시장에 나왔음에도 대기업들이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인수합병의 최종결정을 내릴 총수들이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의 “사업조정에 나서고 있는 대기업들은 현재 경영권 승계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굳이 외부기업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면서 “반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한 대기업의 경우 총수부재 상황이거나,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어 M&A 시장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권과 증권가의 시각은 다르다. 여전히 계열사 간 사업조정 과정이 후계구도 및 경영권 강화와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들은 “대기업들이 진행하고 있는 인사이드 딜(그룹 내부 인수합병)의 경우 사업체간 합병을 통해 전문성과 경쟁력, 규모를 키운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이면에는 후계구도 및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전략이 숨어있다”고 분석했다. 최근의 사업조정 사례들이 대부분 그룹 내 지주회사와 관련됐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그룹 내 지주회사와 관련된 지분 및 사업조정이 있다는 것은 경영권 강화 혹은 후계구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M&A 매물 적체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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