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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 잃지 않는 투자 위해 명상… 마음에 철판을 깐다
입력 : 2013.12.12 13: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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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는 인간의 본성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이다. 인간은 욕망 때문에 주가가 비쌀 때 사고, 두려움 때문에 쌀 때 팔아버린다. 일반적으로 어느 투자전략이 널리 퍼지면 수익 내기가 쉽지 않은데 이 전략은 아직도 계속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1934년에 창안된 가치투자 전략이 아직까지 유효한 것은 인간의 본성이 변치 않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이 그랬듯이 이 부사장도 가치 투자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다른 IQ나 내부 정보 같은 걸로 하는 게 아니다. 바보도 할 수 있는 게 가치투자다. 대신 자기감정을 철저히 다스려야 한다. 하루 종일 단말기 앞에 있는데 주가 움직이는 걸 보면 얼마나 사고 싶고 또 팔고 싶겠나. 팔고 싶을 때 자제할 줄 알아야 하고 사고 싶어 안달이 날 때 냉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탐방 많이 나가는 것도 중요하나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나는 틈날 때마다 명상하면서 마음에 철판을 깔려고 한다. ‘저걸 사야 한다. 더 떨어지면 어떡하나 팔아야지’ 하는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는 멘탈을 강화해야 한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밸류는 이 부사장 뿐 아니라 펀드매니저 전원이 가치투자 철학을 공유하는 회사다. “주식운용본부 15명이 모두 공채 출신이다. 중도 채용은 단 한명도 없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 같지만 백지상태에서 책 읽히고 독후감 쓰도록 해가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가치투자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 7년차인 공채 1기생이 4명인데 너무나 잘 한다. 가치투자 철학을 알기에 성과가 좋다.”
지금은 고수익을 내는 가치투자의 대가가 됐지만 그 역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펀드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돼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2006년 4월 18일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를 론칭했다. 유별나게 3년 환매제한까지 둔 펀드였다. 내 이름 걸고 10년 동안 그만두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이 펀드는 출시 첫해 인기를 끌어 1조5000억을 모았으나 5년 내내 1조5000억원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자금이 급속도로 유입돼 지금은 5조원대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투자자 신뢰를 사는 게 그만큼 힘들다. 7년 7개월이 되니 이제야 알아준다.”
그의 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140% 이상의 수익을 냈다. 펀드 출범 후 코스피가 30% 상승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다.
값이 싸야 가치주다 감정을 억제할 만큼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게 가치투자이지만 특별히 가치주라고 딱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차·화·정을 필두로 대형주 양극화가 2011년 상반기에 극심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리면서 코스피가 1700선까지 떨어졌다. 그때부터 가치주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12년 내내 달렸고 그해 한국밸류는 전체 운용사 중 1등을 했다. 그 때 더 심하게 가치주로 들어간 게 주효해 2013년 상반기에도 이익이 늘었다. 그러나 가치주가 너무 올랐다고 판단해 일부를 매각하고 저평가된 대형주를 매수했다. 당시 주가가 거의 움직이지 않던 음식료업종의 PER이 15배가 넘었는데 대형주는 6배까지 떨어졌다. 중소형 IT주의 PER도 8~9배에 달했는데 삼성전자는 6배까지 떨어졌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중소형주도 아니고 내수주도 아니다. 싼 가치주다. 대형주가 싸져 가치주가 됐다. 그 때 대형주 몇 개를 선정해 집중 투자했다. 현대차를 18만원대에 매수했고 SK하이닉스나 은행주도 사들였다. PER 6배선에서 편입했다. 상반기에 그 작업한 게 효과가 크게 나타나 올해도 잘 버티고 있다.”
그가 가치주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가 잘 나타나는 대목이다. 한번 가치주였다고 그 주식과 사랑에 빠져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거품 터진다고 난리 칠 때는 너무나 행복하다. 온통 싼 주식 천지고 우리 종목이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가가 올라 비싸지면 남들은 좋아하나 우리는 부담이 된다. 그때는 팔고 나와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 부사장은 가치주 펀드도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치주 펀드 좋다고 들어온 분들에게도 적어도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는 항상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저평가 상태로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현재 포트폴리오 기준으로 시장보다 20~30%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 PER가 11배 수준인데 우리 포트폴리오의 PER는 8배 수준이다. 싼 주식 찾기는 영원히 되풀이되는 작업이다.”
“미국의 한 투자회사 회장이 손님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침 한 젊은 펀드매니저가 타자 그 회장은 자기 회사 최고의 펀드매니저라고 소개했다. 젊은 펀드매니저는 어쩔 줄을 몰랐다. 최근 1~2년 수익률이 좋지 않았다고 하자 회장은 ‘자네 최근 10년 수익률 최고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처럼 길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에게 가급적 믿을 만한 펀드를 찾아 맡기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15명이 하루 10시간씩 기업탐방 다녀서 1년이면 1400여 회사의 정보를 모은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될지 말지인데 제3자 말 듣고 모멘텀 투자해선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 꾸준히 수익을 내는 펀드에 가입해야 한다. 지금 자금이 빠졌지만 내년에는 결국 들어올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지 않나.”
이 부사장은 지금 대내외 환경은 계속 개선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개별 종목의 저평가 여부라며 시장 전체로 볼 때 현재는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여전히 높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9호(2013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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