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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Ⅱ]그들은 왜 580000%의 꿈을 포기했나
입력 : 2013.03.07 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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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면 시중자금이 주식에서 빠져나와 저금리 상품으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추세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5월 FT(파이낸셜 타임즈)가 ‘주식의 사망’을 선언한 데서 잘 나타났듯이 세계의 자금이 주식을 떠나 채권이나 은행 저축으로 몰리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과도하게 나타나자 G30(Group of Thirty)이 최근 주식기피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당신의 투자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여기 그 해답이 있다.
투자자들을 울린 30년 국채
김씨 같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올해 초부터 금융권엔 절세상품 판매 붐이 불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강화에 따른 세금폭탄을 피하자는 사람들 때문에 절세상품은 올 들어 40여일 만에 10조원 이상 팔려 나갔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런 돈이 보험권에만 6조원 이상 몰렸고, 은행이나 증권사 상호금융 등에 4조원 정도가 유입됐다. 상품별로 즉시연금이 4조원대에 달할 만큼 팔려나갔고 일시납 저축성 보험이 2조원, 유전 펀드나 브라질 국채 등이 1조5000억원, 월지급식 주식연계증권(ELS)이 2조원,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와 같은 세제혜택이 있는 상호금융 예탁금으로 5000여억원이 늘었다. 정부가 즉시연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축소키로 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세금 회피 바람이 분 것이다.
여기엔 세금 위험을 과도하게 부풀린 금융권의 ‘절판마케팅’이 크게 작용했고 이를 여과 없이 전달한 언론의 무책임도 한몫을 했다. 실제로 올해 즉시연금 가입자 가운데 80% 정도는 비과세 혜택 축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소액 가입자였다. 시중 자금이 금융권의 그릇된 상품 팔아먹기에 휩쓸려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즉시연금을 비롯한 절세형 금융상품 붐은 국내의 고질적인 잘못된 자금흐름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가연동국채는 지난 2007년 도입됐으나 매력이 떨어져 수요 자체가 부진해 2008년 절판됐던 상품이다.
돈이 필요한 정부가 2010년 6월 발행을 재개했으나 인기는 여전히 낮았다. 오죽했으면 정부는 이를 활성화하려고 발행 물량을 먼저 정한 뒤 금리 경쟁을 시키던 일반 국채매각과 달리 금리를 먼저 정하고 인수할 국채 물량은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알아서 정하도록 옵션까지 주었을까. 그래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 않자 이번엔 회계처리에 편법을 인정해 물가연동국채를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시가로 평가하는 대신 장부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세금 이슈가 가미되자 물가연동국채는 갑자기 품절될 정도로 팔려나갔다. 지난해 세법을 바꿔 2015년부터 발행되는 물가연동국채의 원금상승분에 대해선 세금을 매기고 올해 발행되는 채권도 분리과세 신청을 제한한다고 하니 이 채권값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절세를 노린 사람들이 늘면서 물가채의 값이 뛰었다”고 했다.
작년 9월 처음 발행된 30년 만기 국채 역시 세금 때문에 이상과열 조짐까지 빚었다. 장기채권이라 분리과세가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었는데 정부가 증권사들을 부추겨 홍보를 강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30년 만기 채권의 인수나 유통, 보유 실적을 평가한다니 증권사들이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홍보에 나서 금리가 지나치게 떨어진 것이다. 9월 발행된 30년 만기 국채가 3.04%에 낙찰돼 같은 달 10년 만기 국채의 평균 금리(3.05%)보다 낮게 형성된 것이다. 채권은 만기가 길면 리스크가 큰 만큼 금리가 높아야 정상인데 사자는 주문이 밀려 오히려 금리가 내려간 것이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0월엔 2%대까지 떨어졌다.
이 바람에 채권을 인수한 증권사들은 물량을 쉽게 넘길 수 있었으나 금리가 11월에 3%대로 돌아오고 이후 3.2~3.4% 선에서 형성돼 초기에 채권을 인수한 투자자들은 손실을 봤다. 이 채권의 장점만을 선전하면서 증권사들까지 끌어들여 경쟁을 부추긴 게 결국 부작용을 초래한 것이다.
형태별로는 주로 은행이나 보험사에 들어 있는 확정급여형(DB형)이 50조원에 육박한 73.8%, 중소기업들이 많이 가입한 확정기여형(DC형)이 12조원에 가까운 17.8%를 차지했다.
문제는 지난해 은행권 원리금 보장형 상품 수익률이 4.7% 전후에 머물고 있다는 것. 수익률이 조금 높게 나온 외환은행이 4.79%, 산업은행이 4.76%였고 SC은행은 4.55%에 그쳤다. 보험사의 성적도 크게 다르지 않아 삼성생명의 원리금 보장 DB형이 4.41%, 교보생명의 원리금 보장 DB형은 4.81%였다.
여기서 수수료를 빼면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3% 중반을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금융기관들이 해당 상품을 자사의 예금 등에 넣어 운용하면서 1% 내외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맡긴 상품의 수익률 치고는 극히 낮은 것이다.
대조적으로 주식에도 투자하는 퇴직연금 펀드의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Fn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3년 수익률 상위 10개 퇴직연금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나왔다. KB퇴직연금펀드(채권혼합)의 3년 누적 수익률은 43.44%로 연률로 환산하면 3년 동안 매년 12.78%의 수익률을 낸 셈이 됐다. KB퇴직연금배당30펀드(10.91%)나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펀드(10.46%) 등도 연 환산 수익률이 높았다.
이처럼 퇴직연금 펀드의 수익률이 높기에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원리금 비보장형의 수익률이 보장형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지난해 생보사 DB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보면 삼성생명의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은 4.21%였으나 비보장형은 7.2%나 됐다. 한화생명은 이 비율이 4.69% 대 6.04%, 교보생명도 4.81% 대 8.21%로 비보장형의 수익률이 높았다. 전체 생보사 중 비보장형의 수익률이 낮게 나온 곳은 동양생명 하나뿐이었다.
이는 증권 업계도 마찬가지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원리금 보장형이 4.9%인 반면 비보장형 수익률은 10.72%나 됐다. 삼성증권은 이 비율이 5.14% 대 6.44%, 대우증권은 4.94% 대 11.72%로 비보장형의 수익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비보장형의 수익률이 낮은 곳은 퇴직연금 실적이 미미한 군소회사들 뿐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감독당국은 퇴직연금의 주식형 가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금융자산이 은행권으로 몰리게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금융자산이 급격히 늘어나는 가운데 정부가 색안경을 쓰고 주식에 통제를 가하면서 국내 금융자산은 주식을 떠나 수익률이 매우 낮은 채권이나 예금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2008년 초 934조원이었던 채권 발행 잔고는 현재 1478조원으로 늘었다. 국고채 발행잔고 역시 같은 기간 동안 227조원에서 최근 363조원대로 급증했다. 예금은행의 총예금도 2007년 말 593조원에서 지난해 말 990조원대로 치솟았다.
반면에 공모펀드는 2008년 초 225조원이었던 잔고가 올해 초 18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가 현재 200조원 전후를 오가고 있다. 이는 주식 관련 펀드를 위축시켜 증시에 타격을 주었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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