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m or Slide]Ⅱ 2013 세계 경제의 진짜 모습은… Perfect Storm or Bumpy Downhill

    입력 : 2012.12.03 17:25:33

  • 사진설명
    세계 경제가 둔화되는 가운데 각 기관들은 2012년과 유사한 새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것이 다가오는 세계 경제의 진짜 모습일까. 연말이 다가오면서 세계적 연구기관이나 이코노미스트들이 숫자로 된 GDP 전망치를 내놓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런 것은 전혀 무의미할 수 있다. 연간으로는 어느 정도 성장하더라도 중간에 2~3% 정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런 수치가 오히려 계획을 세우는데 독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0년여 간 한국은행의 한국 경제 전망이 단 한 차례도 맞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자.

    2013년 경기를 예단하기가 쉽지 않은 점은 우선 벤 버냉키 미국 FRB(연준) 의장이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을 은연중 흘리고 있는 데서도 읽을 수 있다. 2007년 미국의 모기지 부실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써 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진행형이란 점 역시 연말에 나오는 낙관론을 쉽게 믿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이 수년에 걸쳐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풀었는데도 세계 경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미국 연준은 지난 9월부터 매달 400억달러씩 투입해 모기지 채권을 사들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도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다. ECB가 대규모 구조조정 자금을 방출했지만 풀린 돈은 곧바로 독일로 빨려 들어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위기를 맞은 국가는 여전히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안전한 곳으로만 몰리고 있는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는 미증유의 공황상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실상을 비교적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제기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환상이 그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는 것일까.

    루비니 교수가 보는 Perfect Storm 루비니 교수는 2013년쯤 퍼펙트 스톰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 2011년부터 제기했다. 세계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고, 바닥을 기던 금리가 수직으로 급등하고, 환율이 20~30%씩 솟구치는 그런 상황은 정녕 오는 것인가.

    루비니 교수는 이와 관련해 퍼펙트 스톰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정리했다. 그는 최근 퍼펙트 스톰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게 자신이 제시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세계 경제를 암울하게 내다보고 있다고 했다. 또 2013년에 퍼펙트 스톰이 세계 경제를 완전히 파괴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제시하는 기본 시나리오는 선진국들이 평균적으로 저성장을 하는데 유로존이나 영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가가 침체에 빠지지만 미국은 침체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며, 이머징 마켓 국가들이 저조한 성장을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루비니 교수는 퍼펙트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퍼펙트 스톰이 나타나는 배경을 설명했다.

    △재정절벽 사태가 심화되어 미국이 침체로 빠져들고, △유로존 위기가 더욱 악화돼 그리스가 탈퇴를 하는데 그것도 무질서한 탈퇴를 해버리고, △중국 경제가 경착륙 하고,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대로 뛰는 상황 등이 생기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이 가운데 유로존 상황에 대해 가장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최신 데이터들을 볼 때 EU가 더블 딥(Double Dip)에 빠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탈리아나 스페인 키프로스 등 주변부 국가들이 2013년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침체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세계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로 루비니 교수는 유로화가 고평가 됐으며 재정긴축에 대한 (EU의) 과도한 강요, 금융기관 주도로 나타나고 있는 신용경색, 기업이나 소비자 신뢰도의 저하 등을 꼽았다.

    Long, Long Slump 시장에선 퍼펙트 스톰 같은 극단적 상황이 전개되기 보다는 세계가 길고도 긴 슬럼프로 빠져 들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컨퍼런스보드는 세계가 10년 이상 갈 긴 슬럼프를 맞는다고 했다. 또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의 붐은 대체로 끝났다고 했다. 유럽의 경우 예후가 더욱 좋지 않아 프랑스는 2025년까지 거의 제로 성장을 하는 불황에 빠질 것이고, 영국 역시 10년 이상 경제성장 속도를 높이게 자금방출 규제를 풀어달라고 의회에 간청하느라 허덕댈 것이라고 했다.

    EU집행부 역시 지난 봄에 1.3%로 추정했던 EU 지역의 2013년 성장률을 0.4% 정도로 낮춰 거의 정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전 KDB산은자산운용 공동대표는 새해가 다가오면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실제로 2013년 세계 경제는 성장이 둔화되는 과정이 불거질 것으로 분석했다. 세계 경제의 47%를 차지하고 소비를 주도해 성장엔진 구실을 하는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은 재정정책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유럽은 부채를 늘리는데 대한 부담과 재정을 긴축하는 문제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둔화되는 경기를 자체적으로 살리기 위해 재정이나 금융정책을 사용할 여력이 있는 나라조차 그리 많지 않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시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방출할 때는 상황이 반짝 호전하는 경우도 예상된다. 최근 유럽에선 거의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던 그리스가 EU의 자금지원 계획이 구체화되는 것을 보고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게 하나의 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최근 내년에 경제 회복의 첫 신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작은 부문에서의 이런 진전조차 크게 보면 주요국 정부의 재정부담 증가를 수반하는 것이어서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욱 긴 침체나 경기의 요동을 불어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11년에 이미 105%를 넘었는데 올해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현재로선 언제 국가부채를 낮출 수 있을지 누구도 전망하기 힘든 상항이다. EU의 경우 이 비율이 82.5%라지만 개별 국가의 재정적자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경우 이 수치가 이미 230%를 넘어 회복이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IMF가 지난 연말 집계한 수치는 229.5%이다.

    매년 심각한 크기의 재정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이처럼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들이 정상적 수단으로는 부채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문제는 이런 나라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금융기관들이 주요국의 채권조차 신뢰하지 않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대부분이 일본형 불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위) 누리엘루비니, (아래) 폴 크루그먼
    (위) 누리엘루비니, (아래) 폴 크루그먼
    사그라지는 한 가닥 희망 물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동시에 대규모로 자금을 풀어 시장의 불안감을 일소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위기가 금융시스템 붕괴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버냉키의 양적완화도 이런 목적을 가지고 시행됐다. 그런데 교조적인 성향의 독일 관리들의 반대로 유럽의 호응이 늦어지면서 지금 세계 전체가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 유럽 위기의 핵심처럼 여겨지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재정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고 부실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2011년 말 스페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68.47%(IMF 기준)로 81.51%인 독일에 비해 훨씬 낮다. 그러나 일부 부동산 버블을 이유로 독일 금융기관들이 이 나라에 대줬던 자금을 일시에 빼내 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때문에 교조적으로 부채감축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케인즈가 75년 전 얘기했던 것처럼 ‘긴축은 슬럼프 때가 아니라 붐이 일어났을 때 해야 한다.’ 그런데도 적자 비판론자들은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조차 적자(감축)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요구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회복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대규모 자금을 집행할 통화·재정정책을 구사하기 어려운 EU체제의 특성 때문에 세계 경제는 장기적으로 저성장 국면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진전되는 상황 이런 가운데 루비니 교수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여건이 형성되는 점은 눈여겨 볼 대상이다.

    첫 번째 징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11월 중순 시작된 팔레스타인과의 교전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투기조차 없는 팔레스타인은 사실 이스라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대규모 병력과 막대한 숫자의 전차까지 동원하고 나선 데는 다분히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원거리 적과의 전쟁에 대비해 자칫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 근거리의 적을 사전에 정리하는 수순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금융분석가 중 한 사람인 래리 에델슨는 ‘전쟁의 사이클이 2013년에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내전 또는 국제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바젤3 도입으로 금융기관들이 위축되는 점도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 규정에 따라 주요 금융기관들은 자본금을 확대하거나 대출을 축소하거나 양자택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