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진단] 글로벌 위기를 타고 넘는다

    입력 : 2011.10.27 09: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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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1 위기의 시나리오와 전망
    유럽 재정 위기, 종착역은 어디
    시중에 돌던 ‘10월 위기설’이 우려와 달리 진정되는 모양새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과 역할 확대에 대한 주요국들의 의회 승인이 통과되고 유럽 정치권이 유럽 은행들에 대한 자본 확충의 필요성을 역설함에 따라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회복을 보이고 있다.

    유럽과 미국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두 달 넘게 롤러코스터를 탄 글로벌 금융시장이 일단 한숨은 돌렸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그럼에도 유럽 소버린과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유럽 소버린 이슈의 배경 그리스발 유럽 소버린 이슈는 이제 해결되고 있는 것일까? 1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에 나서면서 그리스 문제는 봉합된 듯 보였다. 그러나 시차를 두면서 아일랜드와 포르투갈로 확대되고 그리스 디폴트 위기까지 다시 온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금융시장이 그리스 발 뉴스에 번번이 놀라고 반복해서 동요하는 것은 그리스 발 소버린 리스크가 갖고 있는 휘발성 때문이다. 이른바 발생확률은 적으나 한번 발생하면 영향이 큰 ‘테일 리스크(Tail Risk)’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낙관으로 온통 뒤덮여 있던 각 연구기관의 하반기 전망이 비관으로 급격히 선회한 것은, 간과했던 테일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규모 신용 이벤트 발생은 경제 주체들에 심각한 타격을 주면서 활동을 마비시킬 수 있다. 그리스가 과연 또 다른 테일 리스크의 도화선이 될 것 인가.

    그리스의 CDS 프리미엄은 한때 5000bp를 돌파하며, 이미 시장에서는 디폴트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2차 구제금융의 일부인 ‘자발적’인 민간 투자자 손실 분담 참여(PSI)는 ‘사실상 디폴트’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PSI가 실행되는 시점에 신용평가사들은 그리스를 ‘선별적 디폴트’로 판정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만일 그리스가 실제 채무재조정을 하거나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면 전후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첫 번째 소버린 디폴트로 상당한 충격파가 예상된다.

    소버린 디폴트는 대부분 신흥국 문제고, 선진국은 졸업했다는 기존 상식에 따라 유로존은 “유동성 문제일 뿐 채무상환 능력 문제가 아니다”는 점을 고집해 왔다. 이에 따라 유로존은 2010년 5월 “구제금융을 통한 유동성을 지원해준다면 2012년부터는 그리스가 자체적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나이브(naive)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던 것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추가적인 구제금융과 자발적인 상환연장 등 단기 대응책을 통해 여전히 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시작된 채무재조정 이슈가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를 넘어 스페인 등으로 확산된다면 유럽 은행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은행 간 대출 시장이 이미 경색됐으며, 상당수의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신용등급 하향 압력을 받고 있다. 만약 신용경색이 장기화되고 대규모 채무재조정으로 유럽 금융회사들이 더 많은 자본 확충이 필요하게 된다면 유럽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3년 전 리먼브라더스 사태처럼 심각한 신용경색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각국 정부의 정치적 자본이 약화되면서 정치적 통합을 이뤄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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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위기에서 은행 위기로
    그리스 아테네의 증권거래소 올 10월4일 그리스증시는 전날보다 6.28% 하락해 1993년 이래 1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리스 아테네의 증권거래소 올 10월4일 그리스증시는 전날보다 6.28% 하락해 1993년 이래 1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0년 초만 해도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남유럽 일부 국가에서 부각됐던 재정위기가 최근 유럽 선진국을 포함한 유럽 전반의 위기로 확장되면서 해당 지역에서 넓은 영업기반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은행에 대한 우려도 덩달아 확산되고 있다. 특히 PIIGS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와 더불어 국가 익스포저(Exposure)가 많으면서 자본 여력이 상대적으로 열위하고 도매시장 자금 의존도가 높은 금융기관의 신용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두드러졌다. 특히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 등으로 금융기관의 손실 확산 우려가 부각되고 유럽 내 익스포저가 핫이슈로 떠오르며 유럽 은행들의 유동성 리스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첫 번째로 유럽 은행의 달러 유동성이 현저히 부족해지고 있다. 최대 4조 달러(BIS 추산)에 이르는 유럽 은행들의 달러 수요는 6월 이후 유럽 은행이 보유한 유럽 취약국가 국채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면서 안정적인 수급 루트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통화스왑을 맺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달러 유동성 공급 결정이 발표된 이후에도 불안감이 잦아들고 있지 않다.

    두 번째는 예금인출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은행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예금인출에 대한 루머도 생겨나고 구제금융을 받은 ‘덱시아’의 경우 대규모 예금인출이 뒤따랐다. 또한 독일 지멘스와 영국 로이즈 등 일부 대기업들이 유럽 대형은행에 맡겼던 대규모 자금을 ECB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들의 예금인출이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리만브라더스 같은 대형은행 신용위기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대형금융기관의 자금융통 기능이 마비되면서 끝내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금융기관의 부도로 이어진 바 있어 유럽 금융기관의 자금경색이 악화될 경우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서 대규모 신용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유럽의 은행들이 많은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금조달이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달 금리의 급등으로 올해 8월 이후 유럽 은행의 무보증 선순위 채권 발행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고, 단기 자금 시장의 여건도 크게 악화된 상태이다. 미국 MMF는 유럽 은행들의 주요 단기 자금 조달원 역할을 수행해온 미국의 MMF가 7월 이후 유럽 은행에 대한 익스포저를 크게 축소하면서 은행의 단기 조달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인 유리보(Euribor)-이오니아(Eonia) 스프레드가 크게 확대됐다. 유럽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원 가능성 대폭 축소도 유럽 은행의 자금 조달 여건을 어렵게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원 능력과 의지가 크게 축소됐다. 유럽 각국에서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시 사전에 민간 투자자들의 손실 분담을 요구할 수 있는 법률이 속속 제정되고 있다. 실제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하이브리드 채권을 넘어 부실 은행의 후순위 채권자의 손실 분담이 이루어진 바 있다. 이러한 점들이 유럽 은행의 자금조달 환경을 빡빡하게 만들고 있다.

    예상 시나리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왼쪽)과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그리스 재무장관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왼쪽)과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그리스 재무장관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우호적 방향 : 각국 정부의 선제적인 대책, 글로벌 공조로 안정화 각국 정부의 선제적인 대책과 글로벌 공조로 이슈를 완화시키는 데 성공한 경우, 유럽 은행에 대한 우려도 완화되고 둔화의 징조를 보였던 글로벌 경제도 서서히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중동 자금과 아시아 국부펀드들에 의해 유럽 은행들의 자본 확충이 이뤄지고, 독일과 프랑스 등 AAA 국가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AA+)에도 불구하고 EFSF의 레버리지를 통한 취약국가들의 부실 국채 매입이 순조롭게 이뤄지는데 성공하는 경우다.

    2.중립적 방향 : 호재와 악재의 반복으로 높은 변동성이 상당기간 지속 PIIGS 국가들의 국채 만기, 신용등급 하향, 긴축 프로그램의 이행 여부 등 각종 이벤트 때마다 투자자의 우려가 반복적으로 부각되며 높은 변동성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리스가 유럽통화연맹(EMU) 안에서 비교적 ‘질서 있는 디폴트(채무재조정)’를 겪고 난 후, 포르투갈 등의 자금조달 비용이 치솟으면서 추가적인 구제금융과 민간 투자자의 손실 부담이 제기되는 등 채무상환 능력과 의지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신용등급이 계속 하향 조정되면서 조달 금리가 상승한다면, 해당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들도 불똥이 튈까 두려워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재정위기가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는 점,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독일 등 유럽 중심국이 파국은 원치 않으나 자국 내 정치적 사정을 고려할 때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개입도 어려운 점, 각국 정부가 금융위기 이후 약해진 체력으로 인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높은 변동성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월스트리트에 있는 리먼브라더스 옛 본사
    월스트리트에 있는 리먼브라더스 옛 본사
    3.최악의 시나리오: 그리스의 무질서한 디폴트, 재정위기 및 은행위기 확산으로 금융시장 대혼란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 및 유로존 탈퇴 등이 무질서하게 진행되며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넘어 이탈리아, 스페인도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다면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지게 될 수 있다.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로 재정위기가 확산된다면 유럽 중심국 은행을 통해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확산된다. 그러면 리만 사태와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는 유럽계 자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인 자금이 우리 시장에서 급격히 유출되며 미국 등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쏠리면서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고 주식과 채권시장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신환종 / 우리투자증권 크레딧 애널리스트 louis.korea1@gmail.com]



    글로벌 위기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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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존(Euro Zone)
    많이 등장하는 용어지만 의외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로존은 유럽의 단일화폐 유로(Euro)를 사용하는 국가를 일컫는 말로 ‘유로랜드’라고도 한다. 유럽연합(EU)은 1995년 스페인 마드리드 EU정상회담에서 1999년 1월 유럽통화동맹(EMU)을 출범시키고 단일통화 명칭을 ‘유로’로 하는 데 합의했다. 1999년 초기에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11개국이었다. 당시 EU 가입국 중 덴마크·스웨덴·영국은 자발적으로 유로 참여를 유보했으며 그리스는 경제상황이 참가 기준에 미달돼 제외됐었다. 2001년 3월 그리스는 뒤늦게 유로 가맹국이 됐지만 올해 재정위기를 겪으며 탈퇴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현재 유로존 가입국은 17개국이다.

    테일 리스크(Tail Risk)
    번역하면 ‘꼬리 리스크’로 거대한 일회성 사건이 자산 가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사람의 키나 인구연령분포 등 많은 자연 현상은 특정한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곡선을 따른다. 이러한 그래프는 중심에서 벗어날수록 높이가 낮아져 얇은 꼬리 모양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발생 확률이 적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규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굵어질 경우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이러한 테일 리스크는 발생 가능성이 낮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번 위험이 발생하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07년부터 서서히 기미를 보이다가 2008년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테일 리스크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헤어컷(Haircut)
    투자금 가운데 일부를 어떤 목적으로 삭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위기를 겪은 그리스가 정상적인 재정 수준으로 돌아가기 위한 국채 헤어컷 비율이 얼마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며 자주 등장했다. 그리스에서 받을 돈 가운데 각자가 조금씩 손실을 보고 신용거래를 정상화시켜주자는 논의가 이는데 여기서 각 금융기관 또는 정부가 안게 될 손실부담금이 헤어컷이다. 증권회사의 순자산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하락한 증권의 장부가치를 현실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펀드의 경우 투자자에게 받은 돈 가운데 선취수수료를 떼고 운영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선취수수료가 헤어컷이다. 익스포저(Exposure)
    특정 기업 또는 국가와 연관된 금액이 어느 정도인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주로 신용사건 발생 시 특정 기업 또는 국가로부터 받기로 약속된 대출 및 투자금액뿐 아니라 복잡한 파생상품 등 연관된 모든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 금액을 말한다. 신용사건 발생 시 특정 기업 또는 국가가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받기로 약속된 대출 및 투자금액 뿐만 아니라 파생상품 등 연관된 모든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 금액이다. CDS 프리미엄(Credit Default Swap Premium)
    CDS는 부도 위험을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인데 위험도에 따라 가중하거나 감해주는 게 프리미엄이다. 다시 말해 업체 또는 나라가 파산할 경우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에 대비해 그 가능성을 따로 떼어내 거래하는 것이 CDS다. A기업에 대출해준 B은행이 A기업의 부도 위험에 대비해 C은행과 보험과 같은 계약을 맺는데 이것이 CDS다. C는 B로부터 보험료 개념의 프리미엄을 받고 A가 부도 날 경우 대출금을 B에 대신 지급한다. 부도 위험이 크다면 그만큼 프리미엄이 높아진다. 한국 정부가 외국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해서도 부도 가능성을 높고 매일 보험료의 값이 오르내리는데 이를 한국의 CDS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1961년경부터 미국에서 실시한 공개시장조작의 한 가지 방법이다. 중앙은행에서 한편으론 장기증권을 매입하고 다른 한편에선 단기증권을 매도하는 조작을 동시에 행함으로써 통화 공급량을 변화시키지 않고도 장기이자율을 인상하고 단기이자율을 인하하거나 또는 거꾸로 행해 반대의 효과를 얻기도 한다. 장단기금리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본떠 명명됐다.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이기 이후부터 두드러진 현상으로 미국에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들과 중동 등의 산유국에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는 국제무역 불균형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경상수지 불균형이 빚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부적정한 환율 수준 때문이란 게 일반적 인식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FRB 등 일부 중앙은행이 통화를 과도하게 풀면서 해당국 시민들이 무분별하게 차입에 의존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란 반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외풍에 약한 한국,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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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이후 국내 금융시장은 높은 변동성에 휩싸여 있다. 그 중에서 외화자금 조달 시장은 계속해서 높은 변동성을 보이며 우리 정부가 금융위기 이후 대비해 온 ‘자본유출입 변동성에 대한 대응 능력’을 테스트 하고 있다. 대외불안 확대 시 원화환율의 절하 폭이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리먼사태 직후부터 이루어져 온 외환보유고 증가 및 단기외채 축소 등 외화건전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일부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기외채 수준이 높고 자본시장의 개방도나 자유도에 비해 외환시장의 규모가 협소한 구조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변동성도 계속 높은 상태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버린 이슈로 인한 금융위기의 가능성과 함께 재정지출의 한계로 인한 선진국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기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불리하게 될 것을 우려해서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동조화되는 흐름을 나타내 온 주요국 국채금리는 최근 들어 재정위험의 정도에 따른 차별화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고채 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소버린 리스크가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은 글로벌 차원의 상대적인 메리트(금리, 안정성)가 부각되면서 해외자금 유입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상대적인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포트폴리오의 다변화가 필요한 중앙은행 등의 헤비한 성격의 자금은 계속 국내로 유입될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재정거래를 추구하는 스마트 자금은 소버린 이슈의 진행 속도에 따라 유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간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온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의 이탈이 현실화되는 경우에는 금리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나라 소버린은 경제의 펀더멘털과 정부의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상대적인 높게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지정학적 문제 외에도 취약한 외환 유동성, 지나치게 높은 대외 의존도(중국과 유가 등)이 구조적인 취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최근에도 부동산과 가계부채 이슈가 잠재해 있고 외환 유동성의 이슈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번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나라 소버린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유럽 소버린 이슈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지 않는다면 포트폴리오의 다변화가 필요한 글로벌 자금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유럽을 중심으로 대규모 부실자산의 매각이 이뤄지면서 한국 우량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이들을 인수하는 사례(Crossover M&A)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위기 때 우리가 주요 기업과 금융기관의 지분을 해외투자가들에게 넘겼듯이 이번에는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에게 상당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살릴 필요가 있다.

    소버린 이슈가 남긴 메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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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소버린 이슈는 EFSF의 증액과 역할 확대에 관한 주요국들의 의회 승인이 통과되고 유럽 은행들에 대한 자본 확충의 필요성을 유럽 정치권이 인식하면서 다소 완화되는 듯하지만, 안정을 찾아가기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산적한 문제들의 해결이 지연되면서 그리스의 선택적 디폴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추가등급 강등, 경제지표와 정부재정의 악화 등으로 CDS가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들이 EFSF 증액, 유로본드 발행과 같은 대승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통화연맹의 한계와 각국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자본’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민들 불만이 쌓이면서 선진국은 ‘정권교체’, 후진국은 ‘폭동과 정권붕괴’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주요 기업의 빠른 실적 회복은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에 의존해 왔다.

    덕분에 대부분 정부 대차대조표는 부실해졌고, 일부는 자생적으로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정부가 제공한 경기 부양과 유동성 공급의 수혜를 누렸던 기업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정부의 채무상환 능력과 의지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규모 신용 이벤트로 금융시장에 충격이 재발한다면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이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근본적인 질문들이 재부각되면서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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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구원투수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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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통해 세계경제의 회복을 견인했던 중국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2008∼2010년 중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함으로써 경기침체에서 빠르게 벗어났을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회복을 견인한 바 있다. 금년 들어서도 동일본 대지진, 유로지역 국가채무위기 등 대외충격에도 불구하고 9%대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데다 선진국과 달리 재정의 건전성도 양호한 편이다. 특히 중국이 대규모 보유 외환을 국가채무위기에 처한 유로지역 국가의 국채 매입에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대내외 여건의 변화로 중국이 2008년과 같은 통화 완화정책과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다시 쓰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된다. 우선 선진국 소버린 이슈와 경기 둔화로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 EU 등의 성장세 둔화 시 수출 수요의 감소와 그에 따른 성장 둔화가 예상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통화정책 완화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다시 사용하긴 어렵다. 물가 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2008년 말 이후 증가한 유동성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되돌릴 경우 물가 급등, 부동산 과열 등 부작용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의 적극적인 대책에 대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긴축과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가운데, 대외 불안요인으로 경기침체에 대비해야 하는 이중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선진국 경제 불안이 심화되어 중국의 수출 감소폭이 확대될 경우에는 중국의 성장률이 8%대로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수출 감소는 중소기업 부도 및 이에 따른 실업 발생 등으로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선진국들의 자체적인 경기부양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중국의 수입 확대 및 위안화 절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중국과 선진국 간 환율 논쟁 및 무역 마찰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내리는 정책을 편다면 가뜩이나 경제 불안을 겪고 있는 EU, 미국 등과의 마찰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2008년과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소규모라도 유로화 표시 자산매입을 늘려 선진국의 위안화 절상압력을 완화하는 동시에 유럽 소버린 위기 해소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대외적으로 부각시키는 방향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재정상황은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편이지만 2008년 말 이후 지방정부 부채가 크게 증가하면서 중앙정부의 재정에 잠재적 부담이 되고 있다. 중국은 장기간 느슨하게 유지했던 통화정책에 따른 부작용 해소를 위해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재정정책을 활용해 성장률의 큰 폭 하락을 방어하는 선에서 하방 리스크에 대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선진국 경제 불안이 세계경기 둔화로 이어지더라도 중국 정부가 2008년과 같이 통화정책을 완화하거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펼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Part 2 손현덕의 홍콩 리포트
    “한국기업, 위기에 너무 민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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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개인적인 치부(?)를 한 가지 공개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한 지 만 23년이 지났는데 아직 홍콩을 가본 적이 없다. 주말을 이용해 갈수도 있는 짧은 거리인데도, 그리고 명색이 경제 기자인데도 홍콩 근처도 가보질 못했다. 간혹 동남아를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때도 홍콩을 경유해 본 적이 없다. 증권부장을 맡은 지 1년이 지났다. 증권부장으로 부임한 후 홍콩이란 곳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이유는 취재기자들의 해외출장을 결제해야 하는데 그 때마다 가는 곳이 홍콩 아니면 중국, 싱가포르였다. 내가 증권 기자를 했을 1990년대 중반에는 뉴욕이 대세였는데, 그만큼 금융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10월 초 결국 홍콩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매일경제신문이 기획한 12개 코스닥 대표기업 합동투자설명회(IR)가 홍콩 샹글리라 호텔에서 열렸는데 그 행사를 카버하려고 증권부 기자와 사진 기자 한 명씩과 가게 된 것이다. 가는 김에 이틀 정도 더 머무르면서 홍콩에 소재한 금융기관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나의 취재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홍콩에서 보는 한국 주식시장은 어떤 것인가라는 이슈였다. 모든 자본이 이제 홍콩을 통한다. 금융을 하려면 홍콩에 뭔가 적을 두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분명하며 누구는 ‘금융제국 홍콩’이라고 부른다. 세계 100대 은행의 현지법인이나 사무소 70개가 홍콩에 있다.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을 통할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지역본부가 30개는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동향을 알려면 이제 뉴욕이 아닌 홍콩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로부터 직접 한국 시장 전망을 듣고 싶었다.

    두 번째는 중국 시장 엿보기다. 홍콩은 중국 위안화의 역외금융센터이기도 하다. 무슨 소리냐 하면 중국 바깥 지역에서 중국 돈, 즉 위안화의 예금, 채권, 대출 등의 금융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 홍콩이다. 중국은 아직 외환, 채권, 주식시장 등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지 못해 외환규제가 심하다. 하루아침에 자본시장을 열어젖힐 수 없다. 이게 중국의 고민이다. 그래서 중국은 중국 본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육성하려고 시험 무대를 만들었는데 그게 홍콩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위안화 거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안화의 테스트 베드(Test Bed)인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보고 싶었다. 더불어 중국 시장에 대한 시각은 어떤지도 엿보고자 했다.

    이런 포인트로 짧은 일정 동안 홍콩에서 지켜본 상황을 정리한다.

    외국인 단기 매도 후 매수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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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출장 기간 중 만난 외국 금융회사 직원이나 한국 증권사 현지법인장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많은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들의 펀더멘탈이 좋아졌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주가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글로벌하게 진행되는 경기둔화에 민감하다. 그게 한국 주식시장의 기본적 특징이다. 따라서 해외 투자자들은 전략적 차원에서 경기 민감주 비중을 낮추면서 한국 시장에 매도 주문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망을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 기업들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거시경제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향후 주가가 오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많다.

    한국 주식시장의 움직임도 글로벌 주식시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소위 디커플링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미국 시장의 주가 상승률이 한국 등 이머징마켓 주가를 능가하는 ‘역(逆) 디커플링’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는 매크로 이슈가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으로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우에도 한국의 투자자보다 유별나게 우월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으며, 유럽 및 미국 상황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더블딥 우려와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선진국 채권에 대한 대안으로 재정 건전성, 안정성을 갖춘 아시아 지역 특히, 한국 채권 등 투자 확대가 오히려 증가됐으나 9월 중 유럽 발(發) 재정위기가 악화된 이후 아시아 지역 내에서도 차별화가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에서는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채금리가 상승한 반면, 아시아에서도 재정이 양호하고 국가신용등급이 높은 한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은 국채 금리가 하락하고 있다.

    현재까지 역외시장에서 달러수요가 늘어나면서 원화가치가 약세로 전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채권자금 이탈 움직임은 미약하며 주요 투자자인 각국 중앙은행의 경우도 원화채권 포지션은 큰 변화는 없다.

    최근 외국인 투자자와 관련된 주요 채권 이슈는 약 10조5000억원 규모의 원화채권을 보유한 템플턴의 채권매도와 달러매수 루머, 그리고 핌코의 원화채권 매도설이 시장의 변동성을 증대시킨 것인데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고 사실 확인조차 힘들다.

    결론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상회할 경우 일부 외국인, 특히 해외펀드의 매도 가능성은 상존하지만 장기적인 원화 약세를 전망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좀 더 리얼한 얘기를 옮겨보자.

    홍콩 도착 다음날인 10월 6일 홍콩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6개 증권사 법인장들과 숙소인 LKF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같이했다. 대우 삼성 미래에셋 한국투자 우리투자 대신증권의 홍콩법인장들이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물밑 동향과 한국 증시 전망을 들려줬다.

    현지 분위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말한 사람은 이경영 미래에셋증권 홍콩 대표였다. 그는 “8월 이후 증시 쇼크 때 유럽계 헤지펀드 환매 물량이 전체 순자산의 평균 30~50%까지 쏟아졌다”고 했다. 이 매물이 집중됐던 게 한국, 홍콩, 대만이었다. 우리 주식시장이 급격하게 출렁거린 것도 단타에 치중하는 일부 헤지펀드들의 자금 이탈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호재이면서도 악재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지역펀드들의 한국 포트폴리오 비중도 줄어들었다. 지역펀드란 특정 지역 주식을 담은 펀드를 말하는데 한국 관련 펀드야 한국 주식이 거의 100%이니 별 상관이 없지만 이머징마켓 펀드나 이머징아시아 펀드 같은 것은 국가별로 포트폴리오를 그때그때 조정하는데 이들 펀드에서 한국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썩 좋은 소식은 아니다.

    상반기쯤에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투자하는 지역펀드들의 한국주식 편입 비중이 15%선까지 달했는데 7월쯤 피크를 치고 8월부터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

    한국투자증권 이상미 상무는 좀 시니컬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현재 시장을 영어로 표현해 센티멘트 드리븐(Sentiment driven) 장세라고 규정했다. 펀더멘탈이 아닌 매일매일 뉴스에 따라 감성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현 상황에서는 한국 주식이 싸다 비싸다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어닝(실적)과 밸류에이션(주식가치)을 말하는 것도 큰 의미 없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한국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없다는 분위기였다.

    홍콩 근무가 10년이 훨씬 넘은 고참에 속하는 김종선 대우증권 상무도 이런 분위기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올해 말까지는 한국 시장이 크게 좋아질 여지가 없다”며 “증시가 좋아진다고 하면 그 시점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이 걷히는 내년 1분기쯤이라고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이제 외국인 투자자들을 직접 만날 차례다. 홍콩의 넘버원 은행인 HSBC와 홍콩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고 위치에 오른 윤치원 아·태(아시아·태평양 지역)회장이 있는 UBS를 찾았다.

    HSBC에서는 이코노미스트와 투자전략 최고책임자를 각각 만났다. 사족이지만 HSBC는 홍콩에서 가장 큰 트레이딩룸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규모가 대단했다.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을 다루는 트레이더가 칸막이 하나 없는 한 층에서 460명이나 근무한다.

    이 빌딩은 엘리베이터가 매층마다 서지 않는다. 참 독특한 빌딩이다. 가령 18층을 가려면 20층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로 갈아타는 아주 재미있게 설계된 빌딩이다.

    HSBC는 1865년 영국 상인이 설립한 은행이라서 원래 영국계이지만 출발 지역이 홍콩이라서 홍콩 사람들은 통상 자기 나라 은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리에게는 외환은행을 인수하기로 했다가 소위 삑사리를 내 좋지 않은 인상을 주지만 홍콩에서는 가장 신뢰받는 은행이다. 규모도 세계 5위로 자산이 우리나라 일등 은행의 10배나 된다.

    최근에는 좀 우울한 소식이 있다. 글로벌 사업 재조정의 일환으로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HSBC는 홍콩에서만 향후 3년간 30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본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은 고든 프렌치 아·태지역 글로벌마켓 총괄대표와 프레드릭 뉴먼 아·태지역 리서치센터 공동대표(이코노미스트)인데 취재진이 인터뷰를 통해 얻은 감은 아시아 시장, 특히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아주 없어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인에게 한국 시장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 우회적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는데 두 사람은 생각보다 그런 우회적 표현이 없었다. 코멘트를 직접 따자면 “유럽발 공포감이 너무 커져서 투자자들이 아시아라는 수익 키워드를 놓치고 있다”면서 “한국은 위기를 방어할 수 있는 카드를 넉넉히 쌓아두고 있다는 점을 시장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UBS를 찾았다. UBS의 글로벌자산운용에서 자산배분 총책은 에드워드 방이라는 한국인인데 그에게 주로 시장과 관련된 질문을 했고 윤치원 회장과는 티타임을 가지면서 IB산업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UBS는 홍콩섬에서 가장 높고 화려한 IFC2 빌딩에 있다. 여기서 보는 홍콩의 경치가 멋지다. 이 빌딩은 88층짜리인데 88층에 우리로 치면 금융위원회에 해당하는 홍콩통화청이 있다. 사실 금융위원회의 금융기관 감독기능에다 한국은행, 그리고 기획재정부의 외환관리 기능까지 합쳐져 우리보다는 훨씬 업무영역이 넓은 편이다.

    여담이지만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8’이다. 8의 중국어 발음은 ‘바(ba)’인데 이는 돈을 벌다는 ‘發財’의 發(fa)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88’은 그야말로 중국에서는 부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이 건물 로열층에 통화관리청 총재가 있으니 그 위상이 하늘을 찌른다고 봐야 한다.

    어쨌든 UBS 에드워드 방의 의견도 HSBC의 쌍두마차 두 사람의 생각과 비슷했다. 중장기적으로 아시아 시장의 가치를 높게 봤다. 현재로서는 날씨로 치면 ‘흐림’이지만 얼마 안 있으면 맑게 갤 확률이 높은 그런 날씨라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식시장을 설명했다.

    취재진은 이렇게 해석했다. 단기적으로 한국 주식을 던진다. 유럽 재정위기가 발등의 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기회를 보고 있다. 한국시장에 대한 포트폴리오 전략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지금 무분별하게 진입하느니 시장이 안정되고 난 후 상황을 보고 주식을 사들이겠다.



    중국 시장 엿보기딤섬본드 발행 급증, 위안화 절상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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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관광객이 홍콩에 와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쇼핑 하고 중국 음식보다 맛있는 홍콩 음식 먹고 마지막으로 금융기관을 찾아 본인 계좌를 열고 홍콩의 주식이나 채권을 사는 일이다. 아니면 예금을 하거나. 연간 홍콩 방문객이 어림잡아 3600만 명 정도 되는데 이중 60%가 중국인이다. 그러니까 2200만 명 정도가 매년 홍콩을 찾는다. 이들의 1인당 여행경비 한도는 미화로 5만 달러인데 만약 그 절반을 금융기관에 넣는다면 홍콩에 얼마나 많은 중국 돈이 들어오는 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홍콩 취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중국 돈의 움직임이다. 거꾸로 홍콩은 중국 주식투자의 관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나 증권시장을 보려면 중국보다도 홍콩에서 취재하는 게 맞다.

    중국 시장은 일단 뒤로 미루고 먼저 중국 돈 움직임부터.

    홍콩에서 위안화 관련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한 것은 경제동반자협정(CEPA;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 체결로 중국과의 거래가 확대된 2004년 1월. 이때부터 위안화 예금을 받고, 환전을 하고, 카드 결제를 하는 소매금융업무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2007년 7월에는 홍콩에서 중국 은행들이 위안화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를 소위 딤섬본드라고 한다. 2년 뒤인 2009년 7월부터는 홍콩·중국 간 기업의 위안화 무역결제가 이뤄지고 9월에는 60억 위안 상당의 중국 정부 국채가 홍콩에서 발행됐다. 이게 중국 본토 지역 밖에서 발행한 첫 중국 국채였다.

    이렇게 해서 위안화 채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작년에 336억 위안 어치의 딤섬본드가 발행됐다. 올해는 600억 위안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에는 수출입은행이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홍콩에서 위안화채권 발행에 성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의 딤섬 본드 발행금액은 3억9천200만 위안, 6천200만 달러 규모였다.

    딤섬본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자는 얼마 안 되더라도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돈을 버는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소위 강남 부자들도 이 딤섬본드를 대규모로 사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상황이 반전됐다.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다.

    HSBC 직원은 “올 초 딤섬본드에 투자했다면 기대수익률이 최소 4.5%는 됐는데 현재 1.8%까지 떨어졌다”며 “지난 8월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발행한 200억 위안 규모의 딤섬본드 3년물 금리가 발행 당시 0.6%에 불과했지만 9월 말에는 0.85%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취재진이 만난 대부분 홍콩 금융인들은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다. 위안화는 궁극적으로 절상 추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위안화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소 5년 안에는 홍콩에서 위안화 규모가 홍콩 달러를 초과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무리가 없다. 현재 홍콩에 있는 위안화 예금은 5000억 위안 정도인데 2년 전에 비해 딱 10배나 늘어난 규모이다. 또 올 상반기 위안화로 결제된 무역대금도 8040억 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3배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속도라면 올해 말 1조 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과 중국 간의 투자에서 알아둬야 할 두 가지 제도가 있다.(이 부분은 좀 딱딱한데 참고 읽어주시길. 중국 투자의 기본이기에 좀 어렵지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먼저 홍콩 정부가 중국 내 자산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QDII(Qualified Domestic Institutional Investor)이다. 우리말로는 적격 국내 기관투자자. 중국 외환관리 당국으로부터 해외 자본시장에 투자할 권리를 부여받은 금융기관을 뜻하는데 중국에서는 이 자격을 얻어야 해외 주식시장 투자가 가능하다. 국내 기관투자가로 선정된 중국 내 금융기관이 일정한도(Quota) 내에서 고객들로부터 펀드를 조성해 해외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홍콩이 그 주무대이다.

    이와는 다른 개념으로 QFII(Qualified Foreign Institutional Investor)가 있는데 이는 중국 내 상하이와 선전 주식시장에서 중국인 투자전용 주식(A주)을 직접 사들일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외국투자기관이다. 2003년 5월 UBS와 노무라를 시작으로 세계 100개 투자기관이 이 자격을 획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삼성, 미래에셋, 한화, 한국, 동양, KB 등의 자산운용사와 산업은행, 우리은행 같은 곳이 이 자격을 얻었다. 이들만이 중국 내국인들이 살 수 있는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고 이 자격이 없으면 외국인 투자전용인 B주식을 살 수 있다. A주식과 B주식은 규모 면에서 10배는 차이가 난다.

    그런데 최근 홍콩에서는 이 QFII와는 좀 차이가 나는 RQFII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일명 소(Small)QFII라고 하는데 맨앞의 R은 렌민비, 즉 위안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일반 QFII와 달리 홍콩 내에 있는 중국계 금융기관이 위안화 표시 금융상품을 판매해 자금을 모집한 후 이를 갖고 중국 본토의 A주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제도다.

    이르면 올해 안에 정식 개시될 전망인데 현재 중국 정부는 200억 위안을 쿼터로 부여할 계획으로 중국 A주 시장을 잘 알고 있는 중국계 자산운용사나 증권사의 홍콩 자회사가 우선적으로 신청하는 추세다. 이 제도가 홍콩을 창구로 한 위안화의 국제화, 그리고 중국 본토 자본시장의 점진적인 개방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또 한 가지 새로 도입될 움직임을 보이는 제도가 있는데 ETF(상장지수펀드)를 통한 홍콩 증시 투자가 허용되는 것이다. 중국 본토의 투자자들이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ETF를 통해 홍콩 증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인데 구체적인 시행세칙이 최근에 완료됨에 따라 빠르면 연내에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홍콩, 상하이, 선전거래소가 홍콩에 합자회사를 설립하는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심지어 합병 얘기도 나온다. 물론 홍콩거래소는 중국 본토 거래소와 감독 관리기관이 다르고, 더욱이 정부소유인 상하이, 선전거래소와는 달리 상장회사라서 합병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이런 논의 자체가 있다는 사실이 중국 자본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론.

    전반적으로 홍콩 금융시장은 ▲갈수록 성장하는 중국 금융시장의 대외적인 창구 역할 ▲개혁개방의 시범지역으로서의 역할 ▲중국경제과 역외금융시장을 연결하는 파이프 역할 ▲위안화 국제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이는 홍콩 금융시장의 장기발전을 위한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터뷰 | 프레드릭 뉴먼 HSBC 아·태지역 리서치센터 공동대표
    “그리스 껴안고 가자는 분위기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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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경제가 침체를 각오할 정도로 심각한가 지난 두 분기 동안 세계 경제가 가파르게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글로벌 교역이 올 연말까지 추가적으로 둔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모든 지표들이 경기 불황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유럽발 우려감이 커지고 있는 9월에도 미국에서는 제조업 섹터와 자동차 판매가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당분간 긍정적인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는 중국도 글로벌 경제의 점진적 성장을 뒷받침할 것으로 본다.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은 수개월 안에 나타날 유럽 당국의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디폴트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다만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그리스를 껴안고 가자는 움직임이 여전히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디폴트 위험과 관련해서는 이미 그리스 부채를 재편하려는 노력과 채권자로부터 추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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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유럽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재정문제 해결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EFSF 대폭 증액 ▲유로본드, 유로 존 예금보험제도 도입 ▲까다로운 전략적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점진적인 경제 회복을 기다리는 것 정도로 보고 있다.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뭔가 판단 유보는 확실히 대안이 아니다. 해결책을 긴급히 찾아야 한다는 점에 HSBC가 공감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문제 국가들 국채를 매입하고 보장하는 EFSF라고 본다. EFSF는 수개월 안에 EU합의를 얻어 증액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 인터뷰 직후 슬로바키아의 승인으로 최종 확정됐다)

    궁극적으로 유럽은 더 광범위한 재정 통합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유로본드는 이러한 재정 통합의 결과물로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정치적 움직임은 단기간 내에 나타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미국 더블딥 가능성에 대해 듣고 싶다 미국 경제는 현재 극도로 약화된 상태다. 하지만 침체가 본격화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 역시 침체 여부를 판가름하는데 정치적 변수가 많이 걸려있다. 일례로 대통령과 의회가 믿을만한 재정 플랜과 내년 주요 예산안 감축 회피 여부에 동의하는지에 따라 전망이 엇갈릴 것이다. 결정적인 위기 요인은 여전히 취약한 주택시장과 고실업률이다. 하지만 제조업 부문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기업 이익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본다.

    이머징마켓 자금 유출 구조적인 현상으로 돌아선건가 아시아 증시 수익률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외국인 자금 유출이 컸다. 인도네시아와 같이 외국인 비중이 높은 국가가 특히 피해가 심했다. 그러나 아시아는 많은 버퍼를 갖고 있고 이게 시장을 다시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기준금리가 더 낮아질 수 있는 여력이 있고 지급준비율도 하향 조정될 힘이 남아있다.

    재정 예산이 추가 확장될 수 있는 여력도 있다. 중국의 경우 GDP 대비 공공부채 비중이 겨우 35%에 불과하다. 아시아는 자생적으로 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으로 아시아 기업 역시 역풍을 견뎌낼 저력이 있다. 아시아 재무제표 역시 강력하다. 아시아 평균 기업 부채비율(Debt to Equity Ratio)는 겨우 20%에 불과하다.

    중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현 단계에서 중국 경착륙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중국 성장 둔화가 사실 경기 과열을 식히려는 정부의 긴축 정책에 의한 의도적인(Deliberate) 결과라는 것을 시장이 종종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카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중국은 연착륙 전철을 밟아갈 것으로 본다. 만약 성장 둔화가 시장의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나타난다면 중국 정책 당국이 경제 성장을 가시권에 올리기 위한 충분한 화력(Fire-Power)을 집중할 것이다.

    중기적으로 중국 지방정부 부실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건설부문 과잉투자와 관련된 지방정부 부실로 내년 10월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2013년부터 부실문제 해결과 건설 과잉투자 구조조정으로 중국 성장률이 깎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3년 이상 장기투자처로 부적합하다는 논리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 당국은 재무제표를 복구할 수 있는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따라서 급격히 불어난 건설부문 경기가 문제가 되는 단계에 도달한다고 해도 중국 은행당국은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을 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상업용 부동산 이외에 인프라스트럭처 등 토목 공사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평가할만하다. 광대한 인프라 투자는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을 돕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위안화 절상 폭은 얼마나 보나. 어느 정도 절상을 중국 당국이 허용할 것으로 보는가 정부의 인플레 압력 진화와 환율 정상화 노력에 비춰봤을 때 연 평균 2~4% 절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손현덕 매일경제 증권부장 사진 김재훈 기자]



    INTERVIEW 양성수 임피리컬 리서치 파트너스 파트너
    미 국채 여전히 안전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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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뉴욕 소재 대표적인 투자전략 리서치업체인 임피리컬 리서치 파트너스의 양성수(40) 파트너는 미국과 유럽 경제의 안정화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 주식시장은 최근 주식매도 여파로 저평가 상태에 있고, 부동산시장도 1990년대 일본보다 양호하다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려면 현금흐름이 좋고 배당률과 순익성장률이 높은 주식을 사라고 권고했다. 미국 국채도 여전히 안전자산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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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피리컬 리서치 파트너스는 대형 투자은행(IB) 소속 리서치 부문이 투자자들에게서 신뢰를 잃어가자 신뢰할 만한 투자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투자은행과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립 조사 분석기관이다. 2002년 설립됐다. 다음은 이 회사의 양 파트너와 가진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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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수 파트너의 전망
    제 2차 대전 이후 안정 국면 종료 ⇔ 경기 향방 정부 의지에 달려
    미 주식시장 저평가 ⇔ 현금배당 많고 순이익 성장률 높은 주식 사라
    유럽 재정위기 해법 ⇔ 은행증자, 재정기금 확충 동시 추진해야
    미국 부동산시장 안정성 ⇔ 1990년대 일본보다는 양호한 상태 세계 여러 나라 정부는 재정 긴축에 나설 태세다. 경제성장이 더뎌지고 있는 가운데 재정지출마저 줄인다면 이른바 더블딥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재정지출 축소가 각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국의 주요 경기지표가 나아지고 있다. 2012년과 2013년에 재정 긴축에 따른 국내총생산(GDP)감소분은 누적된 주택 재고 물량이 해소되면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 부문이 미국 GDP 증가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재정 긴축이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은 유럽에서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정지출 감소가 불황을 직접적으로 야기하기보다는 유럽 은행들의 부실 문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각국 정부의 의지가 경기의 향방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2차 대전 이후의 경기 안정화 시대가 이제 종말을 고한 듯하다. 산업혁명 이후 1950년대 이전의 경제사는 불황이 수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모든 선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며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이 급속히 확대된 지금의 상황은 전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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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는데 무엇이 문제였나 미국 의회 내 타협의 부재가 큰 문제였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입장 차이를 조금만 좁혔더라도 이번 부채 상한선의 상향조정이 이처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정부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상한선은 자연스럽게 올라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S&P가 ‘요주의’ 수준의 리포트를 냈지 신용등급을 내리는 극단적 조치는 취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강등의 가장 큰 원인인 구조적인 재정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개혁과 세율 인상 등 복합적인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어려운 얘기다. 양당이 구성한 ‘슈퍼 커미티’의 합의 실패로 자동적인 재정 감축이 시행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 이후 미국 주식시장은 저평가됐다고 보나 역사적으로 본다면 주식시장은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 미국 기업의 실질 잉여현금흐름 비율은 약5%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주가수익비율(P/E) 역시 낮은 수준이다.

    물론 금융위기 때만큼은 아니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저평가돼 있지만 현금흐름이 좋고 배당률, 순익성장률이 높은 주식들이 주로 상승하는데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주식들은 이미 올해 주요 주가지수 대비 좋은 실적을 보였다. 유럽의 문제가 해결 기미를 보일 때까지 그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미국 국채는 여전히 투자자들에게 안전자산인가 투자적격 등급 중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의 채권들도 수익률이 높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에도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불릴 만한 대체자산이 별로 없어 미국 국채는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이다. 금값 역시 헤지펀드들이 등을 돌리는 시점에서 큰 폭의 하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부동산시장도 저평가된 상태인가 요즘 고정금리 모기지를 받아 주택을 사기에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모기지 대출이 늘지 않는 이유는 주택 구매자 입장에서 집을 사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대할 수 있었던 5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매입 이후에도 잠재적 손실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주택 매입에 가장 열심인 쪽은 주로 경매 처분될 집들을 현금으로 모기지 없이 구매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체불이나 차압이 마침내 감소하기 시작했고 경매물 주택이 아닌 주택의 가격은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신용 역시 증가 추세에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1990년대 일본이 맞았던 상황보다는 훨씬 양호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잠재 물량 부담이 소진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미국 주택시장이 좀 더 망가진다면 지난 금융위기 때처럼 미국 은행들은 위기를 또 맞을 것인가 미국 은행들의 손실 상각 속도는 일본 은행들보다 훨씬 빨랐다. 대출 자체가 지난 금융위기 대비 현저히 감소해왔다. 따라서 부동산의 추가 하락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또 다른 은행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유럽 위기의 해법은 무엇인가. 유럽 위기가 확대되면 미국이나 전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그리스를 논외로 한다면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좀 더 공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 리더십의 부재가 더욱 극명하다. 유럽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확대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조속한 승인, 그리스 채무 조정, 유럽 은행들의 의무적 자본 확충,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속적인 시중 유동성 공급, 미국이 2008년에 감행했던 은행 불량자산 매입 등이 필요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단일 재정정책기구로 가야 한다. 시장에 확신을 심어주기만 한다면 신용경색은 빨리 해소될 수 있다. 누구나 알듯이 이젠 교역을 통한 불황의 전염보다는 금융시스템을 통한 위기의 전염이 훨씬 심각해졌다. 문제는 이 전달 과정으로 생길 파장의 규모, 즉 미국 은행들의 유럽 익스포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시장의 우려가 확산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파국을 막기 위해 언급한 조치들이 동시에 그리고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11월3일로 예정된 G20 정상회의에서 시장의 기대만큼 구체적인 방안이 발표돼야 한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유도해 유럽위기를 타개할 수는 없나 유럽 정부와 ECB의 문제는 위기 과정에서 보여준 모든 해결 방식이 포괄적, 공격적이 아니라 국지적, 점진적이라는 데 있다. 적절히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 타게팅은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지만 ECB의 중심축인 독일이 극도의 반인플레이션 기조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해온 상황에서 갑자기 이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스 파산은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 경우 2008년 리먼브라더스가 망한 이후 경제위기 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고 보나 이미 유럽의 재정위기는 전 세계 톱뉴스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시장은 그리스와 다른 국가들의 문제를 분리해낼 능력이 있다. 리먼쇼크와 같은 일이 일어나려면 투자자들이 유럽 딱지가 붙은 모든 자산을 던져버리고 유로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시스템 자체가 깨지다시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많은 사항들이 알려져 있다.

    다만 EFSF 확대가 지연되거나 은행 자본 확충에 합의가 안 될 때 혹은 그리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 주요국의 요구에 불응하기 시작하다면 우려가 또다시 확산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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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30년대 대공황의 해결책을 케인지언식 해법이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세계경제 회복을 위한 처방은 무엇이라고 보나 2차 대전이 공황을 완전히 극복하게 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1930년대 공황의 진행 중 몇 차례의 정책적 실수가 있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구조적 재정 적자 누적 속, 예산 절감의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가능한 옵션이 못 된다. 통화정책 또한 이미 제로에 가까운 이자율 속에서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불황은 아니지만 저성장 국면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는데 지금은 성장보다는 구조개혁의 시점이라고 보인다. 미국의 경우 어떻게든 사회보험 수급 연령을 높임과 동시에 세제 개혁을 통해 불합리한 공제와 환급을 줄이고 세율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 절실한데 지금이 그를 위한 적기라 보는 시각이 많다.

    최근 시행중인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조치에 대한 평가와 3차 양적완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대공황 연구로 잘 알려진 학자 중 하나이다. 그는 이미 1930년대에 연준이 저질렀던 긴축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두 차례의 양적 완화를 비롯해 국채 듀레이션 변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본다. 한 번 더 양적 완화를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김명수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mskim@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4호(2011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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