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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기 글로벌세아 그룹 회장 | 의류제조에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최초 도입한 혁신 기업인 “衣·食·住 아우르는 생활문화기업 될 것”
입력 : 2022.12.05 10: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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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한 이후 용기 있는 도전이 꿈과 희망을 현실로 만든다는 것을 깊이 새기고 있으며,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겠습니다. 앞으로 글로벌세아는 회사의 발전뿐 아니라 글로벌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나눔과 상생경영 실천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의류 수출업체에서 일하다 지난 1986년 18평짜리 사무실에서 3명의 임직원으로 의류회사 세아상역을 창업할 당시 김웅기 글로벌세아 그룹 회장(71)이 꿈꾸던 미래가 현실이 됐다.
2022년 세아상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넘버원 의류 제조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업계 최초로 의류 단일품목으로 1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해엔 20억달러 수출을 바탕으로 그룹 전체 매출 4조2500억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의류 사업은 김웅기 회장의 어릴 적 경험과 관련이 깊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고교 재학 시절 어머니 옆에서 배운 재봉틀로 옷을 만들고 고쳐 입으면서 자연스럽게 의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 전공을 섬유공학으로 택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김웅기 글로벌세아 그룹 회장 대학 졸업 이후 본격적인 사업의 꿈을 키웠던 김 회장은 부모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당시 인기를 끌던 건축업을 시작했다. 오래된 시골집을 보수해 되파는 방식으로 사세를 키워갔다. 하지만 평소 꿈꾸던 의류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의류 수출업체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마침내 본인 회사인 세아상역을 설립했다.
이후 김 회장의 행보는 한국 의류산업의 성장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시만 해도 한국 의류 제조 분야의 주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었다. 하지만 과잉경쟁을 통한 고객사에 대한 종속과 낮은 수익구조 등 또한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에 김 회장이 착안한 혁신이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의 도입이었다.
OEM은 고객사가 요구한 디자인대로 주문을 받아 의류를 제작하는 방식인 데 비해, ODM은 디자인과 개발, 생산까지 도맡는다. 자체 개발한 디자인을 고객사에 역제안하는 만큼 디자인한 의류의 지식재산권, 독점생산권을 확보할 수 있다. 김 회장이 주도한 ODM의 성공으로 세아상역은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의류 제조기업으로 성장했다. 니트와 재킷 등을 연간 7억 장 이상 생산해 미국과 유럽의 대형 유통체인에 판매한다. 주요 고객사는 월마트(Walmart)와 콜스(Kohl’s), 갭(Gap), 카하트(Carhartt) 등이다.
ODM으로 자신감을 얻은 김 회장이 다음으로 주목한 혁신은 해외 생산기지 구축과 수직계열화였다. 1995년 사이판을 시작으로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속도를 냈다.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확보해 원사, 원단, 봉제 등의 수직계열화를 차례차례 진행했다.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원단 생산 회사 윈텍스타일, 코스타리카 원사기업 세아스피닝을 설립한 게 대표적 사례. 이를 통해 고품질 의류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선보일 수 있었다.
세아상역의 해외 생산법인들은 ‘현지화’와 ‘자동화’를 모토로 운영되고 있다. 자동으로 재단을 하고 주머니를 다는 기계 설비와 원단 자동화 창고(Smart warehouse)를 비롯한 자동화 시스템, 생산 관리 시스템(MES)을 도입해 끊임없이 제조 혁신에 도전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 역량 강화와 보다 전문적인 인력 양성을 위해 버추얼 테크니컬 디자인(Virtual Technical Design)팀을 꾸려 디지털화를 선도하고 있다. 본사뿐 아니라 베트남 현지 법인에서도 전문 인력을 양성해 현재 업무를 진행 중이며,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꾸준히 3D 트레이닝을 진행하고 퀄리티 향상을 위한 자격 획득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2006년에는 의류 브랜드 ‘조이너스’ ‘꼼빠니아’ ‘트루젠’ 브랜드를 보유한 인디에프를 인수해 의류 제조에서 유통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김 회장의 혁신과 노력으로 세아상역은 연 7억 벌 의류 생산능력을 보유한 세계 최대 의류 제조기업으로 우뚝 섰는가 하면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이라크, 중남미 등 10여 개국에 법인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했다.
김 회장은 세아상역이 의류 제조업계 정상에 올라서자 곧바로 인수합병으로 사업 영역 확대에 나섰다. 먼저 2018년 STX중공업의 플랜트 사업부문(현 세아STX엔테크)을 인수해 플랜트, 건설업에 본격 진출했다. 세아STX엔테크는 국내외 환경시설, 발전소 등 플랜트와 인프라 사업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아이티 세아학교 S&H School 개교식에 참석한 김웅기 회장. 이종(異種)산업 진출로 지속성장 기반2020년에는 국내 1위 골판지 상자 제조사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을 품에 안았다. 의류 생산·유통, 건설·플랜트뿐 아니라 골판지·포장까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 초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는 발맥스 기술도 품에 안았다.
지난 10월 14일엔 쌍용건설 최대주주였던 두바이투자청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글로벌세아가 쌍용건설 인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김 회장의 의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회장은 세아상역 등 섬유·패션 사업을 주력으로 한 세아그룹이 건설, 제지·포장, F&B(식음료)·문화, 예술 분야를 모두 아우르며 업계 정상으로 올라서기 위해선 쌍용건설과의 시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쌍용건설은 쌍용그룹 부도 이후 수차례 주인이 바뀌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중동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해외 랜드마크 공사 수주를 잇달아 따내며 탄탄한 해외 사업 경험을 쌓아왔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두바이 에미리트타워스호텔, 두바이 로열 아틀란티스 호텔&레지던스 등 주요 랜드마크 공사를 줄줄이 성공시켰다. 전 세계 21개국에서 총 167개 프로젝트, 130억달러를 수주한 해외 고급 건축 전문 업체로 손꼽힌다.
글로벌세아 그룹 입장에서는 세아STX엔테크의 주력 사업이 해외 플랜트라 해외 사업 경험이 풍부한 쌍용건설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발맥스 기술 역시 친환경에너지 사업을 해온 만큼 에쓰오일 온산 프로젝트 EPC(설계·조달·시공) 경험을 보유한 쌍용건설과 협업해 성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아상역이 진출한 중남미 국가에서 철도, 도로, 발전 등 SOC(사회간접자본) 인프라, 도시개발사업 수주도 기대해볼 만하다.
최근에는 파인 레스토랑 ‘르쏠’ 오픈을 시작으로 외식업에도 진출했다. 르쏠의 ‘쏠(SOL)’은 프랑스어로는 땅, 스페인어로는 태양과 불, 한국어로는 소나무의 솔을 의미한다. 르쏠의 이름처럼 숯과 나무를 활용해 숙성한 다양한 요리들을 고객에게 선보이겠다는 철학이 담겼다.
외식산업 진출 역시 본업인 의류 제조 사업을 넘어선 사업 다각화의 일환이다. 글로벌 외식 시장은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파인 다이닝, 고급 레스토랑에도 지갑을 여는 MZ세대의 소비 성향에 따라 외식 시장 성장에는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세아상역을 중심으로 식음료 사업까지 진출하면서 의식주를 아우르는 생활문화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게 김 회장의 복안이다. 글로벌세아 그룹 측은 “2025년까지 섬유, 패션, 건설 등을 주축으로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1조원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회사의 성장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업계 최초로 전담부서(Compliance팀, Sustainability팀, ESG팀)를 운영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 글로벌세아는 진출한 국가와 지역에서 의류산업을 통한 대규모의 일자리 창출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활성화되고 경제가 발전하는 데 큰 기여를 해오고 있다. 2011년부터 미국 국무부, 미주개발은행(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IDB), 아이티 정부와 카라콜 산업단지(Caracol Industrial Park) 건설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세아를 입을수록 세아는 나눕니다’라는 슬로건하에 ‘세아재단’을 설립, 국내외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공헌(CSR)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북중미 아이티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설립한 ‘세아학교’는 개교 6년 만에 아이티를 대표하는 교육시설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등 글로벌세아 그룹이 진출한 각 해외법인에선 학교, 병원, 탁아소, 복지시설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위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도 활발히 전개해오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도 앞장서고 있다. 글로벌세아 그룹의 친환경 EPC 전문기업, 세아STX엔테크와 협업을 통해 세아상역이 진출한 동남아시아, 중남미 지역 법인 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김웅기 글로벌세아 그룹 회장이 설립한 S2A갤러리에서 열린 김환기 전시회. ▶세계 200대 컬렉터 선정
김웅기 회장은 예술 분야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세계 200대 컬렉터에 한국인으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함께 김 회장이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김환기의 ‘우주’를 약 132억원에 낙찰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회사 측에서도 문화예술 사업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타워 1층에는 지난 7월 개관한 글로벌세아 그룹의 갤러리 S2A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옥 1층의 924㎡ 규모 공간에서 구사마 야요이 작품을 모은 개관전으로 주목받았다. 20년가량 현대미술 컬렉터로 경험을 쌓아온 김 회장은 좋은 작품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공간을 열었고 앞으로 신진 작가 홍보와 판로를 여는 데 적극 나설 계획이다. 글로벌세아 측은 S타워를 문화 예술과 미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조성 중이다. 앞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르쏠’ 사업도 그 일환이다.
▶He is
충북 보은 출생인 김웅기 회장은 1986년 의류 제조·수출 기업 세아상역을 창업 연매출 4조원이 넘는 그룹으로 키워냈다. 잇단 사업다각화를 통해 ‘의류생산·유통’ ‘플랜트 설비’ ‘골판지 사업’의 핵심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지속가능경영에 도전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사람으로, 올해 미술전문지 <아트뉴스>가 ‘세계 200대 컬렉터’에 선정하기도 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