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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쟁 시대] 미·유럽 vs 중·러로 갈린 新냉전, 각자도생으로 전례 없는 대혼돈
입력 : 2022.11.10 14: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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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에너지 대란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각국의 안보까지 뒤흔들며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이번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 석유파동과는 성격이 달라 그 파장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탈탄소 시대를 준비하는 세계 각국은 그동안 지구촌 성장동력이었지만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석탄·석유·가스 등 기존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를 대체재로 발전시켜 가자는 합의 속에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 시대를 준비해왔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을 향해 전통 화석연료인 ‘가스’를 무기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 러시아의 대체재가 없었던 상황에서 유럽을 뒤흔드는 러시아의 도발은 유럽을 사실상 패닉에 빠트렸다. 유럽 역시 친환경 기조를 앞세워 넷제로 정책을 선제적으로 주도해왔다.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하고 친환경·재생에너지의 기치를 드높이려 했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 속에 유럽 국가들은 나라별로 사분오열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을 감당하기 힘든 나라들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다시 러시아와 손을 잡고 에너지 동맹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독일의 경우 천연가스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탈원전 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은 유럽 최고 선진국이자 친환경 에너지 정책 주도국이다. 독일마저 이러한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온 현실 속에서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정책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유럽이 에너지 위기 속에 전력이 부족하자 각국은 ‘미래’보다 ‘현실’을 직면하게 됐다. 유럽은 부족한 현실 연료를 확보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고, 연쇄작용으로 미국과 아시아도 자국의 에너지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한정된 자원의 글로벌 분배 메커니즘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여기에 돌연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주요 산유국협의체(OPEC+)가 원유 감산을 전격적으로 단행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문제는 더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독자노선을 걷는 독일과 달리 튀르키예는 결국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러시아는 튀르키예를 천연가스의 지역 중심지로 만들고 국제 가스 허브를 설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중재지로 자리매김하며 돌파구 마련에 애쓰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유럽조차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채 제각기 살길을 도모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역시 복잡한 셈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유럽 vs 중·러로 갈린 신냉전의 구도가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가운데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가 글로벌 패권 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친환경 시대 새롭게 떠오른 핵심 자원들을 향한 각국의 확보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지구촌의 에너지 혼란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서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 크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외 에너지 의존도는 90%를 넘는다. 중국 등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비율도 높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에너지 안보 수준은 상당히 심각한 셈이다.
[김병수·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