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데이터 분석으로 본 뜨는 상권 vs 지는 상권] 서울·수도권 상권 ‘핫플’ 용리단길·청와대·동탄 신도시가 이끌었다

    입력 : 2022.10.12 14:29:37

  • 상권(商圈)은 떴다가 죽는다. 죽는 이유 중 하나는 이미 뜬 상권의 높은 임차료를 버티지 못한 이들이 새로운 상권을 찾아 떠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확보한 고객을 유지하기 위해 가까운 거리에 새롭게 둥지를 튼다. 그래서 뜬 상권 옆에 새로운 상권이 생기기 마련이다. 신촌에서 홍대로, 홍대에서 다시 연남동으로 이동한 상권이 다시금 신촌과 홍대를 넘보기 시작한 건 이러한 흐름의 영향이 크다. 그랬던 상권의 일반적인 공식이 한동안 팬데믹으로 무너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막힌 하늘 길에 유동인구가 뜸해지자 문을 닫는 매장이 속출했다. 한때 대한민국 소비 1번지라 불리던 서울 명동거리는 여전히 한 집 건너 한 집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선명하다.

    그럼에도 1년 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다시금 불을 밝힌 상권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교수가 분석한 ‘외식소비의도(인터넷 검색량) 기준 상권분석 순위’를 살펴보면 서울은 이른바 ‘용리단길’이라 불리는 ‘용산·이태원 상권’과 일반인에게 개방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청와대·경복궁·서촌 상권’, MZ세대의 놀이터가 된 ‘성수동 상권’, 롯데월드타워 등 랜드마크가 확실한 ‘잠실 상권’이 이른바 확 뜬 상권으로 분류됐다.

    서울 용산 한남동 일대.
    서울 용산 한남동 일대.
    ▶청와대 개방 효과 톡톡, 용리단길도 훈풍 우선 올 5월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화제를 모은 용산 지역은 이태원, 한남동, 서울남산타워를 아우르며 폭발적인 검색량을 쏟아냈다. 네이버 검색창을 통해 집계한 상권분석 순위(Part1 표 참조)를 살펴보면 ‘용산공원’ ‘리움미술관’ ‘한강진역 블루스퀘어’ ‘용산 삼각지’ ‘이태원 해방촌’ ‘서울남산타워’ 상권에 대한 검색량이 도드라진다. 사실 용산·이태원·한남동 지역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소식이 전해지기 훨씬 전부터 주목받던 상권이다.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MZ세대가 찾는 핫플레이스가 곳곳에 자리하며 상권 활성화를 이끌었다.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2019년 4월 56억4300여만원이었던 신용산역 일대 상가들의 매출액은 올 4월 72억4200여만원으로 약 30% 늘었다. 매출액에 비해 점포 수(2019년 118개→2022년 116개)의 변화는 거의 없어 유동인구 증가가 원인으로 풀이됐다.

    가장 붐비는 지역은 용리단길이다.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삼각지까지 이어지는 골목길로 작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곳곳에 산재한 MZ세대 여성들의 SNS 핫플레이스다. 김영갑 교수는 “돈을 쓰는 것과 돈을 많이 가진 건 전혀 다르다”며 “예전엔 상권을 살리는 업종이 유통, 의류였다면 지금은 맛집이 살아야 상권이 산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맛집을 즐기는 이들이 바로 MZ세대”라며 “그중에서도 2030 여성 고객이 와야 상권이 뜬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대통령실 이전이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용리단길 주변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전으로 상권이 떴다기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게 큰 소득”이라며 “일부러 찾는 이들도 있어 주변 가게나 편의점 매출은 확실히 늘었는데, 그 수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확장할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용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책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오 시장은 2007년부터 용산철도 정비창 부지에 대규모 복합시설 개발을 추진할 만큼 용산에 대한 애착이 크다. 당시 구상은 31조원이란 대규모 자금 조달 실패로 무산됐지만 개발 기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용리단길
    용리단길
    ‘청와대 근처 상권’ ‘서울 경복궁 상권’ ‘서울 서촌 상권’ ‘서울 삼청동 상권’ 등이 검색어에 오른 ‘청와대·경복궁·서촌 상권’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전문가들은 “전국에서 대형 버스가 찾는 유원지형 상권이 됐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청와대를 개방한 5월 10일부터 30일까지 인근 편의점의 매출을 살펴보면 유원지와 비슷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 효자동점의 주요 품목 매출은 전년 대비 최대 230%까지 높아졌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차 음료가 232.6%, 아이스드링크 164.5%, 디저트 124.1%, 얼음 129.1% 등 나들이객들이 즐기는 음료 부문 매출이 크게 늘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는 같은 기간 빙과류가 101%, 얼음이 78.1%, 음료가 51.1% 증가했다. 이마트24도 청와대 인근 점포 2곳의 매출이 빙과류 341%, 컵얼음 272%, 생수 225%, 탄산음료 203%를 중심으로 늘었다. 청와대를 개방하기 전 청운동과 효자동은 음식점과 주점이 중심인 상권이었다. 소상공인상권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이곳의 유동인구는 주중 비율이 73.6%, 주말이 26.4%로 주로 평일 청와대 관계자를 대상으로 영업했던 곳이다.

    하지만 5월 이후에는 매출 흐름이 전혀 달라졌다. 효자동에 자리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서너 달 전부터 카페 공간을 알아보는 예비 창업자들이 몰리고 있다”며 “북촌, 서촌, 삼청동을 찾는 MZ세대들을 효자동, 청운동 쪽으로 이끌기 위한 프랜차이즈점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영갑 교수는 “전국에서 청와대를 찾는 5060세대들이 북촌이나 서촌으로 활동 지역을 넓히고, 이 지역이 주 무대이던 MZ세대들이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상권이 넓어지고 있다”며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종로까지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청와대 인근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종로구 익선동은 이미 청수당, 온천집, 살라댕방콕 같은 맛집들이 들어서며 데이트 명소가 됐다”며 “이렇듯 상권을 빠르게 살릴 수 있는 힙한 창업자 혹은 브랜드가 들어서야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블루보틀 성수동 1호점.
    블루보틀 성수동 1호점.
    ▶맛집 즐비한 성수동·대형쇼핑몰이 이끄는 잠실 그런가 하면 서울 ‘성수동 상권’과 ‘잠실 상권’은 앞서 나열한 ‘맛집’ ‘2030 여성’ ‘MZ세대’ 등이 이끄는 교과서적인 상권이다. 성수동 상권은 ‘서울숲디타워’ ‘서울성수’ ‘성수동’ 등의 검색어가 주로 검색 대상이 됐다. 이곳은 ‘공실률을 모르는 동네’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성수동 일대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9년 4분기에 3.7%, 지난해 4분기엔 1.5%로 낮아졌다. 소규모 상가로 넘어가면 그야말로 제로, 0%대다. 상가를 찾는 이는 많은데 빈 곳이 없다보니 임대료도 올랐다. 6평 소규모 매장의 경우 1~2년 전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120만~130만원이던 임대료가 150만~160만원까지 올랐다.

    성수동 상권에서 가장 핫한 거리는 ‘연무장길 카페거리’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단독매장부터 무신사 스튜디오, 까페 센느, 도치피자, 보이어, 이태리차차차, 큐씨오, 오와리 등 MZ세대들의 놀이터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맛집과 의류매장, 카페 등이 자리한 거리 주변엔 대형업무지구도 들어섰다. 성수동엔 올 1월 기준 총 85개의 지식산업센터가 자리했다. 서울에선 금천구 가산동(133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다. 패스트파이브, 헤이그라운드 등 공유오피스도 많다. KT&G가 운영하는 공유오피스 ‘상상플래닛’, 아주그룹이 투자한 ‘스파크플러스’도 성수동에 있다.

    송리단길
    송리단길
    강남과 판교 등지에 있던 스타트업과 IT 기업이 대거 이곳으로 이주했다. 저렴한 임대료에 넓은 사무실을 쓸 수 있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강남에 닿아 새로운 대규모 업무지구로 떠올랐다. 낡은 공장 지대에서 스타트업의 산실이 된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과 비교해 ‘한국의 브루클린’이란 별칭도 생겼다. 이미 SM엔터엔터테인먼트와 차량 공유업체 쏘카는 성수동 D타워에 입주했고,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IT 기업 크래프톤은 지난해 연면적 9만9000㎡의 이마트 성수동 본사 건물을 1조1000억원 이상에 매입해 사옥을 포함한 복합빌딩으로 개발하고 있다.

    패션 기업인 무신사와 젠틀몬스터도 각각 3300㎡, 1만8000㎡ 규모의 부지를 매입해 현재 사옥을 올리고 있다. 국내 명품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크리스챤 디올의 단독매장이 생기면서 명품 업계가 성수동을 특별한 상권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인근 서울숲 주변에 아크로포레스트, 트리마제 등 초고층 주거 시설이 들어서며 신흥 부촌이 생긴 것도 상권의 고급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을 전했다.

    ‘잠실롯데타워몰’과 ‘서울석촌호수’ 등의 검색어가 주를 이룬 잠실 상권은 롯데백화점과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등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한 롯데그룹의 마케팅 역량이 영향을 미치는 상권이다. 특히 올 들어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매출 성과가 도드라진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매출(거래액)은 218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세계 1위로 평가받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2200억원)의 매출액을 근소하게 뒤쫓는 기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를 비롯한 화려한 명품 라인업을 갖추고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하며 잠실 상권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지난해 루이비통, 구찌, 디올 등 남성 전문 매장에 주력하며 고객군을 넓힌 전략도 주효했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
    롯데백화점 동탄점
    ▶수도권 상권 중엔 동탄 신도시 도드라져 수도권 지역에선 동탄신도시의 상권이 주목받았다. 이 지역의 주요 검색어는 ‘동탄롯백’ ‘동탄역롯데백화점’ ‘동탄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동탄’ 등이 주를 이뤘다. 지난해 8월 20일 개장한 롯데백화점 동탄점이 랜드마크 구실을 톡톡히 한 셈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자리한 동탄 신도시는 경기 남부의 신흥 상권이다. 현재 동탄 신도시의 인구수는 올 6월 기준 38만7000명, 화성시 인구의 43%에 해당하며 2026년까지 약 6만 세대가 입주가 예정돼 있다. 내년에는 동탄 1도시와 2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신설이, 2024년에는 GTX-A 신설, 2026년에는 인덕원 지하철 개통 등이 계획돼 있어 동탄 지역 외의 유동인구 유입도 기대된다. 롯데백화점 측은 “현재 동탄점을 방문한 고객은 월평균 80만 명에 이른다”며 “개장 1년 동안 약 1000만 명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롯데 측이 분석한 주 고객층은 MZ세대다. 여기엔 미취학 자녀를 둔 밀레니얼 세대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동탄점의 3040세대 매출 구성비는 전체 매출의 72%로 이는 서울권 백화점의 3040세대 평균 매출 구성비보다 약 20%나 높은 수준”이라며 “3040세대 평균 나이는 40세로 롯데백화점 평균인 46세보다 낮고 특히 동탄점 MVG 고객의 평균 나이는 43세로 타 백화점과 비교해 약 5살가량 낮을 만큼 젊은 층이 핵심고객으로 자리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롯데백화점 동탄점의 키즈 관련 콘텐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5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동탄점 문화센터는 회원 수 전국 1위다. 특히 키즈 강좌 접수율은 90%가 넘을 만큼 관심이 높다.

    김영갑 교수는 “민간기업이 상권을 이끄는 경우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등 다양한 방면에서 빠른 지원이 가능하다”며 “공단 등 정부기관이나 지자체가 이끄는 상권보다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해 빠른 집객효과와 상권 형성, 또 성과를 이어가는 추진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5호 (202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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