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폴트옵션 시대 내 퇴직연금 전략은] 각광받는 ‘TDF ETF’ 연금시장 게임체인저 될지 주목

    입력 : 2022.08.01 14:49:27

  • 국내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온 지 올해로 20년이 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ETF 시장에는 600종에 가까운 ETF가 상장돼있고 순자산규모도 73조원이 훌쩍 넘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 6월 국내 ETF 시장에는 전례 없는 상품이 등장했다. 노후대비를 위한 1순위 연금상품으로 꼽히는 TDF(타깃데이트펀드)에 ETF라는 플랫폼을 처음으로 접목한 것이다.

    TDF ETF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출시된 적이 없었던 상품이라 투자자들의 이목이 더욱 쏠린다. 특히 TDF는 올해 7월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도입되면서 핵심 투자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시점이 다가올수록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위험 및 안전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TDF ETF는 어떤 자산에 투자되고 있는지 투자 내역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거래 편리성은 물론 자산 내역이 투명하다는 것을 강점으로 장기적으로 연금투자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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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10종 TDF ETF 동시 출격 지난 6월 30일 국내 대표 운용사인 삼성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이 총 10종의 TDF ETF를 동시에 상장했다. 모두 지수 대비 초과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액티브 상품이다. 액티브 ETF는 비교지수를 90% 이상 따라가는 패시브 ETF와 달리 70%만 비교지수를 추종하고 나머지는 펀드매니저가 재량으로 운용한다. 지수 추종 수익률을 기대하는 이들은 액티브 ETF를 투자자산으로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 운용사는 공통적으로 목표 은퇴시점이 2030·2040·2050년인 TDF ETF를 출시했다. 한화자산운용은 추가로 은퇴시점이 2060인 TDF ETF를 내놨다. TDF에서 상품명에 따라붙는 숫자는 은퇴를 예상하는 연도를 의미한다. 통상 출생 연도에 60을 더하면 자신에게 맞는 은퇴시점의 상품을 고를 수 있다.

    TDF ETF의 장점은 무엇보다 수수료(총보수)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연금상품에 장기투자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의 경우 투자 기간이 10년 이상으로 길게 잡는 경우가 많은 만큼 총보수는 투자상품 선택을 위한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ETF는 펀드 판매사가 가져가는 수수료 등이 없어 더욱 비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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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TDF ETF는 기존 공모형 TDF 대비 보수가 약 5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낮은 비용으로 은퇴 이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출시되는 TDF ETF 총보수는 한화자산운용이 가장 낮고 삼성운용, 키움운용 순이다. 가령 은퇴시기를 2050년으로 잡은 한화자산운용의 아리랑(ARIRANG) TDF액티브2050 ETF의 경우 총보수를 0.18%로 정했다.

    은퇴시점이 같은 삼성운용 코덱스(KODEX) TDF 2050액티브 ETF는 총보수가 0.3%이고, 키움운용 키움 히어로즈 TDF2050액티브 ETF는 0.38%다. 은퇴시점이 다가올수록 수수료가 떨어진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가령 KODEX TDF2040액티브 ETF는 총보수가 0.25%지만, 2031년 0.2%로 낮아진다. 은퇴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채권 비중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펀드 운용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은퇴시점까지 기간이 많이 남은 TDF ETF 2060은 주식 투자 비중이 약 80%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김성훈 한화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2060 TDF ETF는 은퇴시점이 많이 남은 20·30대뿐만 아니라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최대 1만 개 이상 종목 분산효과 TDF ETF는 선진국과 신흥국 주식·채권형 ETF를 집중적으로 편입해 분산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례로 2050년 은퇴를 목표로 하는 한화자산운용의 TDF ETF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7월 14일 기준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내놓은 선진국 주식을 주로 담는 ETF(아이셰어즈 MSCI월드) 비중이 약 20.1% 수준이다. 또한 10년물 국채에 투자하는 ARIRANG 국채선물10년 ETF 역시 19.1%의 비중으로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 국채, 신흥국 주식·국채에 투자하는 ETF를 통해 다양한 자산군을 나눠 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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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각 운용사가 선보인 TDF의 설계도와 같은 글라이드패스(Glide Path)는 운용의 핵심척도로 평가받는다. 글라이드패스에 따라 은퇴시점에 맞춰 주식·채권 비중을 조절하게 된다. 한화자산운용은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와 손잡고 글라이드패스를 개발했다. 총 5개 지수를 추종해 1만 개 이상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자산운용과 키움자산운용은 S&P의 글라이드 패스를 사용한다. 임태혁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TDF는 글라이드 패스를 통해 만기시점까지 예측 가능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TDF ETF의 상장 이후 성적표도 양호하다. 6월 30일 상장 이후 7월 14일까지 약 보름간 ARIRANG TDF2030액티브 ETF는 1.4% 수익률을 기록했다. KODEX TDF 2030액티브 ETF 1.3%, 히어로즈 TDF2040액티브 ETF는 0.5%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0.4%가량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ETF의 매매가 용이해 단기 투자를 위한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두희 한화자산운용 대표는 TDF ETF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ETF는 단순히 단기매매를 위한 상품이 아닌 장기투자를 위한 투자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TDF ETF는 장기 보유할 경우 내 자산이 어디에 투자되는지 확인 가능하고 투자가 편리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ETF가 단기매매만을 위한 투자수단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애주기에 따라 자산배분 비중이 바뀌기 때문에 ETF에 투자할 경우 잦은 매매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해인 대신증권 연구원도 “TDF는 은퇴시점까지 투자자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강점”며 “단기간에 매도하지 않고 꾸준히 납입해야 TDF ETF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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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서 메기효과 나타날까 TDF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운용사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TDF ETF가 쏟아져 나오면서 기존 TDF 시장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펀드 정보 제공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14일 기준 TDF 설정액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3조4181억원으로 선두를 지키고 있다. 삼성자산운용(1조6618억원), KB자산운용(8591억원), 한국투자신탁운용(8295억원) 순이다.

    업계 선두인 미래에셋운용의 경우 TDF 시장에서 견고한 지위를 구축해놓은 만큼 TDF ETF 시장 진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존 TDF 점유율을 깎아먹는 자기잠식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점유율을 빼앗기보다는 신규고객 창출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고객들이 장기 성과로 증명된 TDF 상품 위주로 선택하고 있지만 향후 유연한 투자를 지향하는 고객들은 TDF ETF를 활용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며 “TDF ETF는 그런 면에서 특화된 상품으로 상호 보완재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TDF ETF를 출시하지 않았던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도 향후 TDF ETF를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KB자산운용 관계자는 “이르면 8월 말 상장을 목표로 현재 준비 중인 단계”라며 “2030, 2040, 2050 TDF ETF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보수 수준이 크게 낮은 TDF ETF가 등장하면서 기존 TDF 수수료 인하 경쟁도 펼쳐지는 등 시장이 활성화되는 일종의 메기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KB자산운용은 최근 대표 상품인 온국민 TDF의 총보수를 연 0.36~0.61%로 낮춰 업계 최저 수준으로 책정했다. 기존 TDF의 장기 수익률도 우수한 편이다. 14일 기준 최근 2년 누적 수익률은 KB온국민TDF2055 20.5%, 한국투자TDF알아서2050 14.4%, 미래에셋자산배분TDF2045 13%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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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폴트옵션 도입 앞두고 각광 TDF는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도입을 앞두고 연금투자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TDF는 생애주기에 따른 자산배분 전략을 실행하기 때문에 퇴직연금 자금 운용 목적과 가장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디폴트옵션 상품의 투자 한도 역시 100%로 늘어나 디폴트옵션 상품만으로도 계좌 운용을 할 수 있게 됐다. 펀드 등 위험자산 비중을 70%로 묶는 제한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다양한 투자자산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제도 도입에 따라 국내 TDF 시장 확대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TDF 운용 구조가 디폴트옵션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매일경제가 국내 운용사 펀드매니저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2%가 디폴트옵션 도입 시 가장 유망한 투자 상품으로 TDF를 꼽기도 했다. 특히 TDF ETF는 주식 비중이 높더라도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에서 100% 투자 가능하다는 것도 차별화된 점이다. IRP는 주식 비중이 높은 위험자산 투자한도가 70%로 제한돼있지만 TDF ETF는 그 같은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다.

    향후 정부는 퇴직연금 가입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양질의 상품이 나올 수 있도록 운용 현황, 수익률 등을 분기별로 공시할 예정이라 더 나은 상품을 내놓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디폴트옵션 제도 시행으로 TDF 수요도 늘 것”이라며 “TDF 성장은 향후 국내 ETF 시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범 매일경제 증권부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3호 (2022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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