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유니콘 성공시대] K유니콘 혁신 생태계 걸림돌 없나?

    입력 : 2021.08.31 14:03:29

  •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와 인력이 몰려들면서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장 유니콘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잇속은 외국 투자자들이 챙긴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유니콘 기업 중 상당수는 해외에서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면서 유니콘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실제 야놀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2로부터 2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소프트뱅크비전펀드는 2대 주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야놀자는 2019년에도 미국 부킹홀딩스와 싱가포르투자청(GIC)에서 투자를 유치했다. 마켓컬리도 주요 투자자가 외국계다. 전체 지분 증 60% 이상이 외국계로 추정된다. 이 밖에 크래프톤과 무신사는 중국 텐센트와 미국 세콰이어캐피탈 등 외국계 자본이 주요 투자자다. 앞서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은 소프트뱅크비전펀드와 세콰이어캐피탈 등이 주요 주주다.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지분 87%를 매각한 바 있다. 업계에선 국내 유니콘이 유치한 투자자금 중 90% 이상이 외국계로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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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니콘 대규모 해외 자본 의존 많아 이에 대해 VC업계에선 국내 자본은 초기 투자부터 자금 회수, 시장 활성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커버하기 힘든 만큼, 이 틈을 외국계 자본이 파고든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외국 자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유니콘의 일자리 창출과 산업 활성화 등 경제 효과가 국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쿠팡의 경우, 지난해 기준 13조원이 넘는 매출을 국내에서 올렸지만, 국내 자본 시장과는 무관해졌다. 일반 투자자는 물론 국내 증시 측면에서 우량 기업을 유치해 시장 규모를 키울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우아한형제들 역시 비슷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면서 결과적으로 국내 자영업자에게 받는 수수료로 돈을 번 뒤 외국계 시장에 통째로 넘겼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 VC 관계자는 “국내 유니콘은 플랫폼 기업이 많은데, 대부분 독과점적 지위에 있다. 시장 1위 사업자가 외국계라면 결국 시장 주도권을 뺏기는 만큼, 이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토스, 컬리, 무신사의 경우 국내 코스닥과 해외 증시를 놓고 다각도로 검토하며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스의 경우 코스닥과 홍콩 증시 상장을 고민하고, 컬리와 무신사는 국내가 유력하지만 미국 증시 상장까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증시를 통한 IPO 성공 확률은 더 낮지만 기업가치 평가와 투자자 수익률 등을 고려했을 때 해외 증시 매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국내 벤처캐피털 시장의 한계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국내 VC의 규모가 작고 시장 규제 등으로 유망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VC의 기업당 투자금액은 지난 4년간 평균 20억~60억원에 그쳤다.

    특히 국내 벤처투자는 상대적으로 자금 부담이 적은 초기 스타트업 발굴과 육성에 집중돼 수백억~수천억원 단위를 붓는 ‘리드 투자자(투자 비중 30% 이상의 최우선 투자자)’가 극히 제한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증시 상장이 쉽지 않고, 유니콘 기업의 자본을 거액을 들여 살 만한 국내 기업도 흔치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유니콘 기업이 해외 매각이나 사장을 선택하게 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박태근 벤처기업협회 팀장은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 단계에서 중견 단계로 퀀텀점프하는 시기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할 국내 벤처투자 인프라가 열악하다”며 “정부 주도의 벤처투자 확대 노력이 있긴 하지만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요 이상으로 자금 쏠리며 ‘거품’ 논란도 한쪽에서는 국내 스타트업 몸값에 지나치게 거품이 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투자 수요는 넘치는데,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은 적다 보니 일부 스타트업에 투자가 필요 이상으로 몰리며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기존 계획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투자받는 경우가 잇따른다. 얼마 전 배달대행 플랫폼 ‘바로고’도 500억원 투자 유치 계획을 800억원 규모로 키웠다.

    실제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3조730억원)와 펀드(2조7433억원) 결성 규모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투자 건수와 피투자 기업 수는 각각 2367건과 1166개사로 나타났다. 건당 투자금액은 평균 13억원, 기업당 투자금액은 평균 26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투자금액과 투자 건수, 피투자 기업 수는 2017년 상반기 대비 각각 3.1배와 2.3배, 2배 늘어난 수준이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일단 투자를 해야 하니 제대로 된 심의를 거치지 않거나 C·D 등 단계에 투자하던 곳들이 초기 단계로 내려와 싹쓸이 투자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면서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결국 과거 닷컴버블 때처럼 벤처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VC업계에서도 우려를 나타낸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VC 한 관계자는 “유동성이 풍부해지다 보니 일부 스타트업에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요구하고, 이게 시장에서 수용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향후 IPO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경우 자금 회수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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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52시간 등 규제 장벽도 여전 도전과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문제도 여전하다. 최근 규제 샌드박스 등 규제 완화 정책이 상당 부분 도입되기는 했지만 업계는 여전히 ‘규제가 심각하다’고 하소연한다. 주 52시간제가 벤처·스타트업 초기 성장의 발목을 잡아 제2 벤처붐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최근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16개 중소 혁신형 단체가 모인 혁신벤처단체협의회(이하 혁단협)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면제근로자)’, 영국의 ‘옵팅아웃’ 등과 같은 특화된 임금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춰 검토해서 정부에 제안하기로 했다.

    혁단협은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단기간 집중 업무처리로 고성장을 이루는 업계 특성을 고려해 미국의 노동 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면제근로자 제도에 주목하고 있다. 면제근로자 제도의 경우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임금과 직무를 고려해 임원, 행정직, 전문직에 대해 주당 근무시간 규제를 예외적으로 적용받지 않도록 해 준다. 특히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법에서는 컴퓨터직 근로자에 대해 연방법 이상의 화이트칼라 면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탄력근로제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스타트업 대부분이 소수 인원으로 직무가 각기 다른 상황인 데다 회사와 협상해서 근무시간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노동조합도 없어 현실적으로 적용이 쉽지 않다.

    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는 “투자 유치와 서비스 론칭 등으로 밤샘 작업이 많은 상황에서 주 52시간제를 지키다 보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소수 인원이 빡빡하게 일하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관련 논의가 기존 산업이나 이해관계자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점도 문제다.

    당장 플랫폼의 경우 사회적 파급력이 커지면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었던 ‘타다’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정부와 국회는 스타트업업계보다는 택시 조합 등 기존 산업 종사자 요구 사항에만 집중했다.

    일부 플랫폼 기업들은 기존 직역단체와 갈등을 빚고 있다.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대립하고 있다. 변협이 올 5월 변협의 광고 규정을 개정해 로톡을 통한 변호사 알선 및 광고를 원천 차단했기 때문이다. 성형 정보 앱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는 대한의사협회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업체 직방은 공인중개사협회의 반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스타트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법률과 공공 등 우리 사회 심판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주문한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스타트업을 일방적으로 편들거나 법을 유리하게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고소·고발을 빌미로 법률가에게 시장경제 대리전을 시키지 않고, 공정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의 전체 판을 만드는 역할에 집중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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